스피노자읽기

03.17 세미나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6-03-18 19:22
조회
642
얼떨결에 청강을 하고 후기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얼떨결’이 아니라 정신 차리고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어제 처음으로 에티카를 접하게 되었는데 한없이 막막하면서도 정말로 낯선 사유를 만난 기분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어제 얘기 나눈 부분은 1부의 ‘부록’, ‘정의’, ‘공리’였습니다. 1부는 신을 정의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요, 재현의 시대인 17세기에 유일하게 형상이 없고 원본이 없는 ‘신’을 철학자들이 돌파구로 삼았다라고 들뢰즈는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도 ‘신’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신의 양태인 인간들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신을 숭배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언뜻 ‘신중심주의’로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중심주의’의 발현이라고 스피노자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부록>에서 신에 인간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신이 완전하다면 신이 외부를 가질 리도 없고 신이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행할 리도 없는데, 그러한 인격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중심적인 목적론 때문에 생기는 오류인 것입니다. ‘보기 위한 눈’, ‘씹기 위한 이’라는 식의 목적론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창조해준 인격적 신이라는 관념을 이끌어냅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의 오류는 어떤 일의 결과와 원인이 따로 떨어져 있다는 생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목적론의 관점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것 바깥의 원인이 있습니다. 자연을 창조한 신이 외재해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똑같은 구조로 바라보는 것이죠. 스피노자는 결과에 내재하며 그것을 산출시키는 것만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낯설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면, 신을 믿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저도 목적론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만이 원인이라면, 적합한 사유는 대상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일치해야 합니다. 사유 자체가 무언가를 산출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순히 대상을 떠올리고 서로 다른 대상의 나열로써 인과를 인식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고, 결과 분리될 수 없는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사유라는 속성을 통해 완전성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먼 옛날에 ‘이브 세미나’에서 읽었던 고대원자론자들의 세계가 의식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자론자들 역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라는 단위의 목적 없는 운동이 우연적으로 만나 보여 지는 양태가 자연이고 인간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의 사물들, 타자들을 이루고 있는 원자의 배열과 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의 조성이 맞아 떨어질 때 지복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양태로서의 인간이 지금의 자신을 산출해낸 타자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완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스피노자가 생각했던 거라면(제가 얼핏 이해한 것이 맞다면), 둘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되지 않은 내용을 정리하려니 쉽지 않네요. 이번 세미나에 책을 읽지 않고 참여해서 그런지 내내 해매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읽고 갔음에도 똑같이 해매이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지만..)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제가 소화하지 못한 관계로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고 저는 에티카를 사러 가보겠습니다. (태욱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전체 2

  • 2016-03-18 21:27
    어~~ㄹ, 스피노자 셈나의 위력이 막강하도다! 태고적 이브셈나의 기억에다 무의식 어딘가에 있던 원자론에 대한 지식까지 불러내다니!!^^ 바라노니, 스피노자 셈나의 송중기가 되어라~~

  • 2016-03-19 07:26
    괴롭게? 앉아있는 것 같아서 공연히 권했나 미안했는데.... 원자롤까지 진짜 멋진 후기네여!^^
    저부터 다 같이 헤매며 가고 있는 길이니, 건화샘처럼 이렇게 각자의 스피노자를 만나고 또 구성해가면 좋겠다는 바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