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수정)절차탁마Q 6월 14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11 22:07
조회
192
안녕하세요. 스피노자와 만난 지 4주가 지났네요. (그리고 이번 주 수요일에는 영화도 재미있게 봤죠. ㅎㅎ) 채운쌤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혁명적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윤리를 전혀 다르게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윤리를 떠올리면 무엇을 따라야 할 선으로 두고, 따르지 말아야 할 악으로 구분하는 가치규준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초월적 인격체로서의 신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신을 포함한 정신과 신체의 관계 등등을 다르게 사유함으로써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리 자체를 문제시합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란 기독교의 신과 달리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는 자연의 장 그 자체입니다. 각각의 사물은 다른 사물들과 구별되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스피노자의 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운동-정지라는 활동을 통해 그 존재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항상 신 안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조건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이미 다른 수많은 타자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어떤 것도 선이나 악을 그 본성으로 가지지 않습니다. 무엇도 선과 악을 본성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항상 번뇌에 휩싸이는 걸까요? 여기서 스피노자로부터 새로운 윤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하거나 악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때 구성된 나의 조건이 사물과 그렇게 변용했을 뿐입니다. 채운쌤은 어떻게 느끼는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자와 동일한 방식으로만 변용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문제를 느끼고 있고 그 문제를 돌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타자 이전에 자신의 변용방식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해서 나와 변용하는 타자를 계속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용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든 우리는 항상 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 기억에 남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주관이나 객관은 구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나의 생각을 주관이라 하고, 그에 비해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성질을 객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나’조차도 다른 것과의 변용으로 일어난 관념에 불과하고, 내가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변용을 겪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신체라는 양태를 매개로 항상 관념에서 관념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인간은 부적합한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피노자가 문제시한 것은 사람들이 지성을 위대한 것으로 믿는 것이지 부적합한 인식 그 자체가 아닙니다. 스피노자는 ‘관념에 대한 관념’이야기를 가져옴으로써 인간이 관념에 의해 한계를 가지지만 동시에 관념으로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식은 유한하기 때문에 ‘나’를 만들기 위해 일어난 수많은 변용들을 모두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번뇌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일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런 조건들을 모두 파악하자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만이 가능한 일이겠죠.) 물론 파악하려는 사유 자체는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이 부적합한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조별토론에서는 인과를 정립하는 물리법칙 같은 것을 세우는 것이 그에 부합하는 사유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이미 ‘나’는 다른 수많은 사물과의 관계 속에 존재함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변용을 파악하지 않아도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집착한다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일은 수많은 조건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유한한 신체를 가지고도 적합한 인식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부 정리18의 주석에서 스피노자는 기억이 인간에게 매우 실재적인 힘으로 작동함을 밝힙니다. 그리고 보조정리5에서는 각자 고유한 비율로 자기존재를 유지함을 밝히는데, 이것은 곧 각자 자기만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정리에서는 채운쌤의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만, 스피노자에 따르면 기억이란 원래 이렇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군요.)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어입니다. 채운쌤은 여기서 스피노자의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유체계, 언어의 사용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또한 존재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존재 자체로 상대방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무마시키지 않고 차이 자체를 사유할 때 기존 정치와는 다르게 정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락드리긴 했지만, 내일까지 이번에 쓰신 공통과제를 수정해서 올려주세요. ‘적합한 인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그리고 댓글을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수요일 끝나고 건화형의 주도 하에 간단한 개념 정리가 있을 예정입니다. 저처럼 개념이 아리까리하신 분들은 모두 참여해주세요~

다음 주 간식과 후기는 호정쌤과 봉선쌤입니다.

+ 하하 중요한 걸 빼먹었네요.;; 2부 끝까지 읽으시면 되고, '인식의 세 가지 유형'을 정리해 오시면 됩니다. 스피노자가 얼마 안 남았네요. 스피노자의 난해함을 끝까지 같이 버텨내요 ㅋㅋㅋ
전체 1

  • 2017-06-11 22:24
    지난번 과제는 적합한 인식이 아니라 '부적합한 인식'이었죠. 그걸 다시 정리해서 올리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