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탁Q 6.21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6-16 02:16
조회
211
채운샘은 스피노자가 부적합한 인식에 관해서 아주 길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깨달음(3종의 인식)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부적합한 관념인 1종의 인식에서 2종의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이셨죠. 스피노자의 철학이 실천적인 것은 그가 인식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실천적 지침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채운샘은 스피노자가 분류해 놓은 1,2,3종의 인식이 말 그대로 서로 다른 3가지 종류의 인식이지, 인식의 절대적인 위계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식의 발생조건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스피노자는 ‘적합한 인식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주기보다는 인간의 관념이 발생하는 조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인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채운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가장 래디컬한 동시에 가장 실천적인 방식이 아닐까요? 우리의 정신이 그 자체로 역량을 지니고 실재하는 양태라면, ‘적합한 관념’의 정의를 갖는 것보다는 우리 정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실천적인 사유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리의 문제를 사유하려면 도덕규범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이 발생하는 조건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상상으로부터 이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채운샘은 원인으로부터의 인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에 읽은 것처럼, 사실 신 안에서 거짓이나 오류라고 할 수 있는 실정적인 것은 무엇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념을 오류라거나 부적합한 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 정신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전제 없는 결과처럼 주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어진 관념을 원인으로부터 사유하기보다는, 반대로 신체 변용의 관념으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의 원인을 상상하고 자의적인 인과를 덧붙여 관념들의 계열을 만듭니다. 이것은 이해라기보다는 무지로의 도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인으로부터 사유하는 것은 이러한 선형적인 인과의 계열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실체 안에서 모든 것들은 내재적 인과의 연쇄에 있습니다. 들뢰즈·가타리는 다양체로서의 모든 존재는 다른 것들과 맺고 있는 ‘상대적으로 나뉠 수 없는 거리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실체 안에 있는 모든 독특한 실재들의 존재양태에 대한 설명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양태는 스스로를 생산하고 있는 내재적 원인으로서의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거리)를 그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도, 신체도 마찬가지겠죠. 그렇다면 원인으로부터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타동적 원인을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인과들을 설정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2부 정리 29의 주석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수의 실재를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정신이 동시에 다수의 실재들에 대한 관념을 동원할 수 있을 때, 연장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더 많은 것들에 의해서 더 많은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을 때 원인으로부터 사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운샘은 이러한 맥락에서 ‘모여 있음’은 적합한 관념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합한 인식이란 어떤 도달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구성해나갈 것을 촉구하는 개념입니다. 이번에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복사물에서 들뢰즈는 적합한 관념이 진리로서 어떤 표상하는 것은 “그 관념이 그 형식의 자율적 질서와 그 물질성의 자동적인 연결들을 사유 속성 안에서 전개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용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전개시킨다’는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념이 어떤 사물을 적합하게 설명해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다른 관념들과는 달리 무언가 참된 것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유 속성 안에서 질서들을 활동적으로 전개 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도로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적합한 인식은 어떤 도달해야 할 목표점도 아니고, 우리가 소유해서 정신의 서랍장 안에 모셔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때의 인식이란 계속해서 구성해나가는 활동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여 있음’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 신체들은 우리를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변용시켜줄 것이니까요.

지난 보충 세미나에서 모여 있음의 위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스피노자에 대해 토론하고 강의 듣고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선생님들의 지적욕구에 감탄했습니다(ㅠㅠ). 먼저 퇴근하신 채운샘은 잘 모르시겠지만(^^) 엄청난 열기였죠…. 강의 중에 채운샘은 스피노자의 <지성 개선론>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보다 쉽게 읽히고,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이렇게 쓴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인식은 활동이다’라는 명제를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숙고해보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호정샘과 봉선샘께 부탁드리고 저는 이만 공지하겠습니다.

1. 『에티카』 3부 전체를 읽고, 스피노자가 정서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공통과제로 써 오시면 됩니다. 채운샘의 당부는 스피노자가 설명하는 여러 정서들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정서들의 기본이 되는 기쁨과 슬픔을 중심으로 해서 과제를 써 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2. 간식은 유주샘과 영옥샘이 맡아주셨습니다.

3.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3

  • 2017-06-16 10:10
    어케들, 지난번 난상토론(?)으로 샘들의 폭발적이고 야성적인 지적욕구가 좀 충족되셨는지욤?ㅋㅋ 저는 몇 분정도 남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안 가시고... 대단하십니다! 처음엔 제가 발의했지만, 남은 기간 이러저런 형식들의 보충토론회를 능동적으로 제안해주시길! 건투를 빕니다.^^

  • 2017-06-16 11:49
    죙일 시달린 신체와 정신이 에티카보다 더 너덜너덜해진 금란쌤을 비롯한 소영미영혜가현희쌤들... 설마! 했는데, 기어이 끝을 보고 떠났다는..... '으이구.. 독한이들 가트니!
    정수쌤, 지연쌤, 거놔가 이끌어 준 나머지 공부에서 저도 몇 개 건졌습죠... ㅋㅋ
    글구, 오늘 거놔쌤 후기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단어들! '전개하다!' , '구성하다!' 존재는 역량이고 정신은 활동이라는 사실을 자꾸 까먹어서 스피노자의 사유를 놓치게 되는 거 같아요.
    지금 이순간에도 쉴 새없이 변용되는 이 신체의 운동과 정지, 정신의 활동! 크게 써놓고 잊지 말아야쥐!!

  • 2017-06-20 22:06
    이렇게 공지 확인 전까지 또 다시 저도 '그 와중에'님처럼 "어떤 상태"로 복귀합니다....전개하고 구성하는 시간은 이렇게 전 시간 후기를 읽고서야 다시 가능해지네요...이래서 같이 하는 공부여야 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