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에티카 6강 후기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17-06-19 13:35
조회
184
벌써 스피노자의 「에티카」 공부도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기본 개념은 헷갈리고, 이번 강의도 후기를 쓰려니 맥락을 잡기가 힘이 듭니다. 그나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은 건화가 공지에서 다 써버렸네요. 첨 공지를 읽고 느꼈던 그 당황스러움이란. 헉. 한 발 늦었군. 뭐 이런 느낌적인 느낌? 흠. 그러면서 자세한 후기를 부탁하다니. 자세한 후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이해한 정신의 메커니즘과 지난 수업과 보충 세미나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간은 변용된 신체를 통해서만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내 신체와 외부 물체가 마주쳤을 때 외부 물체가 내 신체에 남긴 흔적인 이미지는 외부 물체의 현행적 실존과는 상관없이 내 정신의 관념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한 번 형성된 관념은 다른 변용에 의해 신체가 변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변용을 통해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는 것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입니다. 태양의 실제 크기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태양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러한 상상적 인식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토대로,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적합한 인식을 못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면? 수많은 인과관계의 연쇄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신체가 다양한 실재들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변용해야 합니다. 관념은 신체의 변용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재성의 확대를 통해 수많은 인과관계의 연쇄에 대한 이해에 가까워지게 되고, 이것이 바로 원인으로부터 사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적합한 인식을 위해서는 결국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거. 여기서 공동체는 건화가 공지에서 말한 대로 ‘모여 있음’ 정도로 느슨하게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정신은 그 신체가 다른 물체들과 더 많은 것을 공통으로 지닐수록 더 많은 것을 적합하게 지각할 수 있다(2부 정리 39 따름정리)’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물체로 이루어진 복합체인 내 신체는 계속 변하고 있고, 외부 물체도 마찬가지겠지요? 따라서, 이러한 신체의 변용을 대상으로 한 인식은 결국 인식 활동인 것입니다. ‘알았다’로 끝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체가 계속 변하니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이해한 인간 정신의 메커니즘입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이란 존재는 부적합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타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서 적합한 인식을 구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겠죠. 여기서 ‘공통관념’이 중요한 것 같은데, 아직은 잘 안 잡힙니다. 수업을 더 들으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수업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느낌을 덧붙이자면, 저는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원하는 건, 그것이 좋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지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고 괴로워 하는데, 사실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는 것이지요. 내 행동은, 내가 지금 사는 방식은 ‘내가 좋다고 이해한 만큼’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내가 다르게 변용할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이것이 ‘긍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긍정’은 제가 지난 보충 세미나에서 얻은 큰 수확인데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 ‘긍정’이라는 것입니다. 긍정과 부정은 장점과 단점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존재 즉 ‘있음’이 그 자체로 ‘긍정’이라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명료하고 간단하죠. 그리고, 그 ‘있음’은 ‘없음’을 전제하고 있고요. ‘있음’이 있으면 ‘없음’도 당연히 있겠죠? 존재에 대한 무한 긍정? 저는 그렇게 느껴졌고, 그래서 가슴이 좀 벅찼습니다. 또한, 인식과 관련해서는 ‘부적합한 인식’이라는 실재가 있는 게 아니라, ‘적합한 인식’의 결여가 ‘부적합한 인식’이라는 것도.

수업 내용이 정리가 잘 안 되니까, 후기 쓰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어려우니까 더 하기 싫어지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가방 싸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신체를 변용시키니, 암튼 다 썼네요. 저처럼 고생하는 학인 여러부~~운. 시원한 데 찾아가서 책을 펼치세요. 우리에겐 하루 반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 저도 이제부터 다음 수업 준비하러 슈~웅.
전체 2

  • 2017-06-19 16:59
    그렇게 늦게까지 토론을 했는데도 헷갈리는 스피노자ㅠㅠ 한번 형성된 관념이 더 쎈 녀석이 오기 전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스피노자의 물리학만 붙잡고 이리저리 헤쳐 가야 겠습니다.

  • 2017-06-20 11:12
    다양한 실재들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변용한다는 말이 좋네요. 변용하는 만큼이 존재의 역량이라고 했던 스피노자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지금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고 기대하는 망상을 품게 되네요. 스피노자 참 어렵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