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2. 21 주역 수업 후기 - 왜 주역인가?

작성자
고원
작성일
2021-02-23 22:28
조회
158
1. 왜 주역인가?
쌤은 요즘 인터넷에서 핫하다는 한국형 역대 최고 가성비로 이만한 SF영화는 없을 거라는 그 영화에 몹시도 분개하셨지요.  아마 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쯧쯧하셨을 겁니다. 감독은 “좋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여행기”를 하고 싶었대요.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한 항해로 착한 것들을 부지런히 수집했다나요. 보나마나 착한 것들이 모인 유토피아 건설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런지요. 샘은 영화를 보면서 ‘철학이 있느냐, 대체 어떤 철학이냐, 그가 어떤 사유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했어요. 영화 안에는 환경을 살리고 가족도 이야기하고 착하고 좋은 것들로 술술 넘어가는데 그 바탕에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근대인의 사고방식이 뭐길래요, 우리는 무얼 내면화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쌤은 푸코를 빌어 와 근대에 가장 영향을 미쳤다는 프랑스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 가진 사고의 기본구조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바로 ‘대대적인 사고’로 나는 善이자 정의로 상정하고 상대를 끌어내리는 형식인거죠.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유토피아를 의심하지 않으며 악으로 상정한 대상을 제거하고 불행 끝 행복시작의 논리가 지금까지 내면화 되어 온 것입니다. 하다 이제는 인간이 완벽한 개체 자립을 꿈꾸고 있더라 했지요. 대대적인 사고 구조에서는 내 자신의 선이 절대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개체가 종교화가 되는 수준까지 아주 갈 때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원자력의 문제도 체르노빌이니 후쿠시마니 문제가 지금도 진행중인데 태양의 무상 증여에 대한 인간의 에너지 독립을 꿈꾸기 때문에 종교화된 수준의 무한신뢰로 느낀다는 겁니다. 우리는 점점 개체의 완전성을 꿈꾼다는 말에 정말이지 공감을 했드랬습니다. 샘은 우리가 주역을 공부하는 이유는 이런 ‘나라는 개체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개체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나를 둘러싼 환경은 외부 대상으로 있는 걸까? 등등’에 대하여 질문하는 거라고요. 그렇다면 주역의 사유는 뭐길래요?

주역에서 핵심은 ‘位’입니다. 주역은 대성괘 6효 중 인간의 자리를 3,4효로 중간에 둡니다. 1,2효는 땅을,  5,6효는 하늘이라 하여 인간을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 천지에 영향을 미치면서 영향을 중간에서 고스란히 받는 존재로 위치해 둡니다. 그래서 인간이 모범으로 두어야 할 것은 천지자연입니다.
대성괘 6효는 각각의 자리로 상정되는데, 연령대와 사회적 직위와 사건의 국면 등으로 여러 가지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6개 각각의 位가 다른 대상과 관계했을 때의 위치라는 겁니다. 당연히 나의 자리란 시공간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종교화 될 정도로 개체의 완전성을 꿈꾼다는 건 주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존재기반이 1,2효인 땅과 5,6효인 하늘이고 다른 효들이니까요. 주역에서는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관계에 민감합니다. 하여 應이니 比니 中이니 正, 不正이니를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네가 위치한 그 자리에서 자~알 있기 위한 부단한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주역이 인간에게 주는 큰 숙제인거죠.

2. 동서양의 우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천지가 혼돈하여,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다.’ 동서양이 이구동성으로 ‘혼돈’이라는데 이렇게 다른 사유로 펼쳐졌다는 게 너무도 흥미로웠어요. 이때 혼돈은 질서의 가능성을 응축한 미분화 상태, 힘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신들의 계보>는 철기문명 확산과 더불어 생산량과 인구가 증가하고 폴리스가 생기기 시작하자 새로운 질서를 정립할 필요를 느끼고,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기술한 노래라고 합니다. 고대 중국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고 했지요. 하/은/주가 부족단위로 공존했던 시대에서 청동기와 철기문명을 거치면서 부족사회에서 벗어나 주나라에서 국가권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역은 복희씨가 음양 짝대기를 긋고 선천팔괘를 만들었고, 주 문왕이 유리에 갇혀 있을 때 복희씨의 선천팔괘를 근거로 후천팔괘(문왕팔괘)와 육십사괘의 괘명과 괘사를 짓고, 문왕의 아들인 주공이 효사를 붙였다고 합니다. 핵심은 권력의 형성 단계에서 성인들이 나타나서 질서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특히 문왕이 감옥에 갇혔을 때 했던 고민이 헤시오도스의 질문과 비슷할 거라 했습니다. ‘인간은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우주의 탄생 신화는 권력이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탄생을 묘사한 것이 너무도 다릅니다. <계사전>에서는 세계를 음양의 상관적 관계로 해석하는 반면 헤시오도스는 세계를 대립물의 공존으로 해석하는 것이 흥미롭다 했지요. 당연히 그 밑바탕에 깔린 인간의 정서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립으로부터 출발하는 사유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내재하는 반면, 동양 사유에서 공포나 두려움이라고 하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었지 실존 자체에 대한 불안은 아니었습니다. 동양에서 불안은 성인처럼 편안하지 못하다는 어떤 윤리적인 수신으로써 불안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글쓰기 보조자료 겨우 3쪽까지 읽었는데 앞으로 어떤 차이를 발견하게 될까요?

* 새로운 학인들이 오셔서 그런가요, 이렇게 꽉 찬 분위기를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요. 첫날 막상 보니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되고 했는데 저는 헐렁하게 왔다가 진땀을 뺐어요. 죽비를 크게 한방 제대로 먹었습니다. 전날 저 때문에 애간장 탔을 학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전체 2

  • 2021-02-24 14:39
    고원? 혹시, 한때 초료라는 이름으로 통하시던 분?^^ 그렇담 저도 바꿔보지요 ㅋㅋ
    1년여의 공백이 있었던 터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없지 않았는데요, 신구 학인들이 적절히 조합돼 있어 여느 때 못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래왔듯이 이번 여행도 쉽진 않겠지만은, 끝까지 상마, 상탕하면서 주역적 사고를 체화해가도록 해 보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 2021-02-24 20:17
    ↑↑↑황리 선생님은 한때 지산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시던 그분인가요? ㅎㅎ
    그리스 신화가 말하는 드라마틱한 천지의 시작과 다짜고짜 알에서 시작해 점점 서로를 길러나가는 동양의 신화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던 첫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둘 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에서 시작했을텐데 말이죠. <신들의 계보>와 함께 읽는 <주역>은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