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2차시 주역과 글쓰기 수업 후기(2.28)

작성자
황리
작성일
2021-03-01 02:30
조회
196
주역 64괘로 놀아보기 대장정의 본격적인 첫발을 뗀 날! 먼저, 계사전 1-3장까지를 고원 매니저님의 리드 아래 도올 선생님의 해석본을 따라가며 강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3장은 계사전 전체의 총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인 만큼, 주역적 세계관의 기저를 이루는 주요 개념들과 키워드들로 빼곡해 한구절이라도 만만하게 넘어갈 대목이 없었던 것 같네요. 때문에 천지,건곤,강유,진퇴,주야,동정,남녀,존비,귀천,길흉,회린,득실과 같은 대대적 어휘쌍들로부터 무구,상마,상탕,변화,역 등에 이르기까지 한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론 그 실질을 이해하는 데 하등 도움이 안되는 주역의 개념어들을 나름대로 이해해보고자 모든 학인들께서 그간 듣고 배워왔던 지식들을 가진 만큼 펼쳐놓았던 시간이기도 했고요. 그 결과, 운동과 변화, 생성을 본질로 하는 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철학인 만큼 개념어들을 이분법적 구도 하에서 접근하거나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를 갖는 실체적인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되고, 상호관계성과 우주적 생명성의 차원에서 역의 세계와 그 개념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그간 유구하게 견지해 온 상식적인 가치 판단에 대해 다시 묻고 새로운 질문을 구성해 낼 수 있어햐 한다는 것까지도요(맞는 거죠? ㅎ).

그리고, 계사전 해석 과정에서 도올 샘께서 끌어들이고 있는 화이트헤드의 개념에 대해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두 철학의 유사성 정도와는 별개로(관심 있는 분들은 각자 공부해 보시길 바라고~), 새삼 동양적 사유의 포괄성과 현대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양철학이 디게 복잡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세계의 운행을 설명하고 있어 더 있어보이기는 한데(실제로 그런 면이 많기도 할테고요), 사고의 스케일이나 깊이, 특히 실천적인 영향력의 측면에서 이쪽 철학에 한참 밀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선 지금 여기의 삶과 사유 속으로 주역을 끌어오는 새로운 해석학적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요. 자, 조만간 주역의 시대가 오리라는 예언을 몸소 실현해 보고 싶지 않으신지요들(^^)!

하나 더, 도올 샘께서 주역이 유기체적이고 전체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서 의문점이 표하신 분이 계셨지요. 들뢰즈의 철학에서는 유기체라는 개념이 ‘기관없는 신체’에 반하는 고정된 조직과 연관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 이런 개념으로 주역이 말하는 이 세계의 상생 상극의 순환성과 상관성 등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맞나?). 많은 분들이 두 철학에서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이 다를 거라고 말하셨고, 또 어떤 이는 아마 천하의 도올이라도 들뢰즈한테까지는 관심을 갖질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무시하고 ‘유기체적 세계관’이란 말을 썼을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네요. 아마 도올께서는 널리 통용되는 차원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혹 여기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하시는 분은 담 시간에 채움 샘께 설명해 달라고 말씁드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상 계사전을 마치고, 괘 풀이 강의 및 토론 시작. 지난 시간에 예고한 대로 상괘에 건괘가 놓이는 괘 중, 중천건과 천화동인, 천뢰무망(정옥 샘께서 못오셔서 천택리 괘는 책에 있는 내용을 함께 읽는 것으로 대체)을 세분의 강의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네요. 먼저 고원 샘께서, 8괘가 결합해 64괘가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시고 나서 중천건 괘를 풀어주셨습니다. 중지곤 괘와 더불어 나머지 62괘를 통어하는 순양의 괘인 중천건은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표상하는 괘로써, ‘원-형-이-정’ 이라는 4개의 역능을 펼침으로써 만물의 ‘생-장-수-장’ 의 변화와 순환을 지속하도록 하는 내적 동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출귀몰의 변화를 거듭하는 용을 대표 이미지로 거느리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도 군자뿐인지라 이 괘의 효사들은 건의 덕을 갖춘 군자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주를 이룹니다. 자신을 감출 줄 알아야 하고, 신중하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함께 할 사람을 만나야 하고, 물러날 때를 알아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아야 하고...물론 이 모든 것들을 시운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후에 등장할 괘들의 베이스를 이루는 대표 괘인만큼 주석의 분량도 압도적이고 새겨야 할 내용들도 아주 많았는데요, 샘 강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구에서 상구까지의 단계를 학자의 공부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왕부지의 해석이었습니다. 지난한 단계를 꾸준히 밟아 나가다 드뎌 확 깨우친 ‘비룡’의 단계에 다다른 학인의 경지라니요, 그간 위압적으로까지 느껴졌던 중천건 괘와의 거리가 확 좁혀지는 느낌이 들었더랍니다. 전 아무래도 왕부지 주석본을 찾아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천화동인’ 괘는 혜원 샘께서 강의해 주셨는데, 두번째 자리에 음 하나가 있는 이 괘해석의 기본 컨셉은 천지가 크게 막혀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낯선 미지의 존재들과 어떻게 만나 소통할 것인가였습니다. 답은, 광장으로 나가서 크게 어울려 만나라는 것, 나아가 이를 대동의 이상과 결합시키라는 것이었죠. 혜원은 이를 8번째 괘인 ‘수지비’괘와 비교해 설명해 주었는데,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를 다루고 있는 비괘와 비교해 볼 때 확실히 동인괘는 사이즈가 커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밖에 여려 효사들을 통해 공적인 만남의 원칙이나 방법 같은 것에 대해서도 팁을 얻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 아래 천둥이 치는 형상을 담은 ‘천뢰무망’ 괘. 중용과 노자 철학의 엑기스가 담뿍 담겨 있다는 이 괘를 풀면서 규창 샘은 지성불식(至誠不息)하는 자연의 역량에 맞춰 살지 못하고 사욕, 사심에 이끌리는 것을 망동의 삶이라 규정하면서 이를 자신의 조급, 과도의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해 주었지요. 대체 나(우리)는 무슨 이유들로 오버하게 되고, 이를 어떻게 넘어서서 무망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규창은 자신의 과도함이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눈앞의 사건들을 반응적으로 해석하는 인식의 무능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그리고 육이효를 풀면서 助長하려는 사심을 개입시키지 않고 일의 당연한 이치를 따르는 데서 無妄의 도를 찾아야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많은 학인들께서 공감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역시 규창답게 주역과 자신의 문제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문제 의식이 좋았는데, 괘와 효의 구도나 배치에 대한 설명없이 직진하는 바람에 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었지요. 각 괘에 대한 강의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 갈지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조별 토론을 했는데 역시 공부의 꽃은 토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년에 하셨던 분들은 그동안 공부해 오신 것들을 유감없이 펼쳐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고, 새로 시작하신 분들은 싱싱한 질문들로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때의 제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의에서 놓쳤던 구체적인 효사들에 대해서도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천택리 괘에 대해 잠깐 언급하면서 확인한 ‘인간의 자리’ 3,4효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놓여 둘을 잇기도 하고 둘의 케어를 받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국에 놓이거나 상괘와 하괘 사이에서 가랑이가 찢어질 수도 있는 자리. 뱀의 꼬리든 호랑이 꼬리든 뭔가를 밟으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거. 주역의 미덕은 이런 인간이 어케든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悔할 것인가, 吝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린 거겠지만요. 다음 시간엔, 채운 샘, 정옥 샘과 함께 더 즐겁고 떠들석하게~~~!!!
전체 3

  • 2021-03-01 09:40
    와아~! 빠르면서도 세미나 당시 나왔던 의문점들을 잘 정리한 컴팩트한 후기!! 제가 궁금한 걸 여기 하나 덧붙이자면 황리샘은 왜 황리샘인가...?(^^) 입니다. 이것까지 포함해 채'움'샘께서 수수께끼를 풀어 주셨으면...^^

    • 2021-03-03 13:09
      뭘 그걸 채움샘한테 물어? ㅋㅋ 꼼짝없이 오십 넘기고 나니 공부는 제대로 해야겠고, 그러자니 흐트러진 몸을 단단히 붙들어맬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개명을 시도해 봤다, 고 말하자니 좀 거창한 거 같고,,,,,, 초료에서 고원으로 갈아타는 거 보고 어이없이 따라하고 싶어서 부랴부랴 주역 책을 뒤졌더니 이거다 싶은게 있어서 써본 거~~ㅎ

  • 2021-03-03 10:59
    황리샘의 후기 고맙습니다. 후기를 보니 공부를 정신차리고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정신이 또 번쩍 드네요. 단순히 한자어로는 알수 없는 주역의 세계를 늘 짧게만 느껴지는 학인들의 토론으로 메꿔갑니다. 조별토론도 밀도가 있어서 좋았구요 다음시간부턴 우리가 헤맨 내용들을 채운샘이 잘 풀어주실겁니다. 아마도 도올이 여러번 강조하는 주역의 유기체적 세계관과 '象'이라는 추상적 사유에 대해선 강의가 있을 줄로 아옵니다. 저는 학인들이 많이 언급한 길흉이 실득지상이라는 것과 변화가 진퇴지상 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