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7월 19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7-13 18:19
조회
109
아침 토론부터 시작해서 저녁 팀별 세미나까지 정신없이 지나가는 목요일 소-생 프로젝트입니다. 오늘은 채운쌤이 지방에 가셨기 때문에 강의(+시험)가 없었고 대신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를 봤죠. 간단히 느낌을 말하자면, 아마드와 어른들의 시선, 말이 엇갈리는 게 가장 재밌었습니다. 아마드는 친구 네마짜데에게 공책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집이 어디인지 계속 묻죠. 그러나 어른들은 아마드를 의무와 어른에 대한 순종이라는 사회적 코드로 편입시키려고 하죠. 2층에 올라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한다거나 어른이 3번 얘기하기 전에 무조건 말을 들어야한다는 것들은 옛날 우리 사회에 작동했었던 문화적 관습과 비슷해보이기도 했어요. 마지막에 아마드가 네마자데에게 공책을 주는 대신 숙제를 해서 가져다주고 무사히 넘어가는 장면으로 끝나죠. 그것도 꽃 한 송이 끼운 채로. 결국 사회적 코드를 비트는 것은 친구에게 건네는 꽃 한 송이의 우정이라는 걸까요? 껄껄껄... 잘 모르겠어요. 또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집 앞에서 공책을 건네주지 않고 돌풍을 바라보는 것과 밤늦게 집에서 숙제를 하면서 돌풍을 바라보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잘 모르겠어요. 정옥쌤과 혜림쌤이 후기를 정리해서 올려주실 테니 거기에 각자의 생각을 덧붙여주세요~

오전에 했던 토론에서 나왔던 포인트 몇 가지만 정리해볼게요. 저번 시간에 채운쌤이 중동, 아랍계, 이슬람이 지시하는 지역이 모두 다르다고 하셨죠. 카렌 암스트롱은 이슬람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이슬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집니다. 처음에는 어떤 집단이 형성되고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튀어나온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무슬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슬람으로부터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국가, 지역이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이념(종교)으로부터 자신이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국가나 민족 같이 형성된 집단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죠.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이념으로부터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가령, 파키스탄, 이란 같은 나라는 ‘국가’라는 정체성보다 ‘이슬람’이라는 이념을 근본으로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철학으로부터 형성되는 국가, 꾸란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 같지만, 정확히 이게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여러 모로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슬람입니다.

그 다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서구의 근대화에 반응하여 근대화를 이룬 게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근대화를 새롭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서구 열강의 유입은 우리의 전통을 없애고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악 혹은 선으로 생각하죠. 대표적인 경우가 일제 강점기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두고 누구는 조선에서 근대화의 발전이 이뤄진 시기라 하고, 누구는 진행되고 있었던 근대화를 망친 시기라 하죠. 하지만 어떤 주요한 하나의 원인 때문에 근대화가 이뤄졌거나 망쳤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서양의 근대화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이 그랬듯 외부의 자극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질문하며 실험할 것인가죠. 카렌 암스트롱은 이슬람도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근대화는 분명 서양의 근대화와 다를 것이라고 했죠. 이때 이슬람이 이룩하고자 했던 근대화, 이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국가 정치란 무엇이었을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이념을 근본으로 형성된 국가, 정치일 텐데, 역시나 두루뭉술한 말밖에 못하겠네요. 하하

저번 시간 채운쌤이 말씀하신 ‘왜 자본주의는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와 관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했었습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유토피아,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죠. 돈을 펑펑 쓸 수 있다거나 고통 하나 없이 그저 행복하고 평화로운 낙원 등등. 그에 비해 이슬람은 유토피아 같은 것을 상정하지도 않고, 어떻게 알라의 말씀을 실천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있죠. 이것은 결국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기독교나 자본주의는 나와 세상이 분리된 채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이슬람은 ‘나’는 ‘공동체’에 속해있기 때문에 공동체와 나의 문제를 동시에 사유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자유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본이라는 조건을 항상 전제한다면, 이슬람의 자유는 표면적인 말이나 사상보다는 알라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 속에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자본주의와 이슬람의 차이를 얘기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꾸란을 읽은 것도 아니라서 단순히 기독교를 나쁘게 보고, 이슬람을 좋게만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답답했습니다. 이걸 철학팀에서 해준다니 모두들 기대해봐요~

카렌 암스트롱이 이슬람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본주의로 돌파할 수 없는 문제에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다는 말에는 수긍이 갔습니다. 특히 이슬람을 통해 민주주의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주주의의 관건은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안고 갈 수 있는가?’입니다. 이념으로부터 공동체를 형성하고, 다양한 종교와 공존했던 이슬람이라면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슬람 공부를 할수록 점점 더 무슬림이 되어가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다음시간 공지하겠습니다. 이즈쓰 도시히코의 《이슬람》 1, 2장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지영쌤이 맡아주셨어요! (짝짝짝짝) 그리고 이번 주 시험은 다음 주로 미뤄졌습니다. 틀린 문제 하나 당 벌금이 무려 5,000원이니 모두 정신 바짝 차립시다. ^^;; 간식은 혜림쌤과 민호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전체 2

  • 2018-07-14 21:21
    이슬람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단계에서 무조건적인 호감을 갖는 단계에 진입한 것 같습니다ㅋㅋㅋ 어서 뭔가를 이해하는 단계가 오기를ㅎㅎㅎ

  • 2018-07-16 08:45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네마자데의 슬픔과 당황과 걱정과 원망 등이 뭍어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철학팀의 기독교와 이슬람 비교분석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