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영화<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후기

작성자
혜림
작성일
2018-07-16 15:17
조회
104
   소생 프로젝트에서는 매달 한 번씩 이란 영화 감독,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는 본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입니다. 영화가 빨리 끝나서 학교 조퇴하는 기분으로 신나게 집에 갔는데 막상 후기를 쓰려고 하니, 짧게라도 영화 감상을 학인들과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쉽네요. 후기가 제가 느낀 단편적인 감상문이 되지 않을까 우려를 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개략적인 줄거리는 영화 제목대로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친구 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드와 네마자데는 초등학교 짝궁입니다. 네마자데는 선생님께 공책이 아닌 다른 종이에 숙제했다고 혼이 납니다. 한 번만 더 숙제를 공책에 해오지 않으면 퇴학이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이 경고를 함께 들은 아마드는 그 공책을 자신이 갖고 왔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친구를 퇴학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아마드는 공책을 전해 주기 위해서 친구의 집을 찾아다닙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답답했습니다. 공책이 뭐라고.. 친구의 주소도 모르고 무작정 친구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아마드가 안쓰러우면서 답답했습니다. 이 영화가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아마드의 상황이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어른의 생각대로(내일 갖다 주면 되지 않을까, 숙제를 대신 해주면 되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기 때문에 내내 답답함이 감돌았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아마드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명령만 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할 때 보통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 아이와 어른의 세계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가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어른의 세계가 아이의 세계를 그들의 방식대로 휘두르려 합니다.

  어른은 아마드의 무모하기도 하고 순수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는 일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니까요. 반면 아마드에게 중요한 것은 선생님에게 혼이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친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요구한 여러 의무를 미뤄두고 친구 집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마드의 마음 한 켠엔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조급합니다. 융통성을 발휘하며 수시로 일관성을 포기한 어른이 만들어 낸 의무는 아이만 꼭 지켜야 하는 당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도 커서 어른이 되겠죠.

  이 영화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늦은 밤 아마드가 만난 전통문을 만들었던 할아버지입니다. 아마드가 길을 물을 때 길을 알려준 것은 아이들인데, 밤길을 느린 걸음으로 동행해 준 것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무 창살 사이로 비추는 빛줄기의 모습과 아마드와 할아버지의 느린 걸음으로 함께 걷는 장면이 인상에 남습니다. 아마드는 할아버지와 함께 걸음 속도를 맞춰서 걷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 어른들이 부여한 의무(심부름,숙제)를 수행해야 하기에 마음이 조급합니다. 이 밤의 장면과 대조적으로 낮에 아마드가 친구의 아빠인 줄 알고 나귀를 타고 가는 어른을 쫓아서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아이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동행해주는 어둠 속의 느린 걸음과 아이의 말을 무시하며 자기의 갈 길을 가는 낮의 빠른 걸음이 시공간적으로 대비됩니다.  어른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어른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아이들은 조급하기만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빨리 좀 찾아라" 하며 조급해하던 제 모습과 아마드의 조급함이 겹쳐집니다.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한 아마드는 밤늦게 돌아와서 최후 결단 내립니다. 처음부터 대신 숙제를 했다면 덜 고생스러웠겠지만요. 아마드는 숙제는 반드시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며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마드는 숙제를 공책에 해야 한다는 형식적인 의무를 수행했습니다.  선생님은 숙제 확인을 할 때 눈치채지 못합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형식만 중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공책 사이에 끼어있는 꽃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드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숙제를 공책에 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조급해 하는 이유가 이 당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체 4

  • 2018-07-16 17:17
    크하~ 꼼꼼한 후기 고마워요! 친구에게 공책을 전해주려고 갈지之자로 된 길을 몇 번이고 뛰어가는 아마드가 왜이리 사랑스럽던지. 어른이 보기엔 무모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네마자데가 퇴학 당할까봐 절실한 마음으로 이웃 동네를 돌아다니던 장면에 코 끝이 시큰 했어요. 오랜만에 너무나 좋은 영화를 만난듯! 다음 영화도 기대 기대됩니다~

  • 2018-07-16 18:31
    다음에는 간소한 뒤풀이 자리라도 마련해야겠군요! 나귀를 타고 가는 아저씨를 쫓아갈 때와 전통문 만드는 할아버지와 같이 걸어갈 때가 대비되는 줄은 몰랐는데,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다면 아마드가 할아버지와 같이 걸어가는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마지막 공책에 끼어있는 꽃은 어떤 의미일런지... 다음 회식 때 못한 영화 얘기도 해봐야겠군요!

  • 2018-07-17 18:52
    아주 오래 전에 영화를 보았었는데, 온갖 골목과 언덕과 집을 돌고 돌며 뛰던 그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모든 지혜와 체력을 친구를 위해! 페르시타 팀의 우정도 짝짝짝!!! ^^

  • 2018-07-18 01:15
    저도 답답 비스므리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아마드가 공책을 들고 뛰기 시작하는 장면 부터였어요. 아마드가 아는 거라곤 달랑 '네마짜데는 포쉐르라는 동네에 산다'는 사실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있는 친구에게 간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갔거든요. 혹시나 하는 실 낱 같은 희망도 있긴 했는데, 아마드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고이접어 나빌레라ㅠㅠ 감동은 쥐뿔...보는 내내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마치 물 위에 뜬 기름 처럼 흘러가는 이미지들 사이를 겉도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샘 후기를 읽다보니 아마드가 왜 달려나갔는지, 왜 나는 기꺼이 그 장면을 이해 못했는지 좀 감이 오는 거 같아요.

    저는 어째서 아마드가 포기 할 법한 순간 앞으로 달려나갔는지 이해가 안되 답답했는데, 가만 보니 아마드의 그런 행동이 '능동성'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보상도, 찾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 불확실함을 뚫고 나아가는 거요. 그냥 할 뿐! 첨부터 숙제를 대신 하는 것도 능동적인 게 아닌가 싶지만, 효율성을 따져본 후에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좀..그렇잖아요? 이 분야는 제가 쫌 잘 알죠..또르르

    애는 썼지만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아이라면 더더욱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밥도 안 먹고 숙제를 하는 아마드는 그냥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힘 없는 아이 같지 않았어요. 오히려 거인 같았달까요. 혹은 어느 골목길 구석진 돌담 아래서 하얀 꽃을 피운 잡초를 닮은 것도 같고요. 암튼 그 와중에 꽃을 넣어두는 여유라니. 아마드 어떻게 자랐을까!?
    뒤늦게 혼자 뭉클뭉클해 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