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1학기 4주차(3.13)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3-08 21:16
조회
137
 

 

벌써 한 달째, 저희는 니체의 유고를 헤매고 있습니다.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 들지만 그런 와중에 뭔가가 꿰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삼 유고를 읽는다는 것이 독특한 체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도 끝도 없고, 논리도 없고, 부연설명도 없는 글귀들을 읽어가는 동안 저희에게는 나름의 실들이 짜입니다. 물론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지만요. 니체를 만난 시기와 경로가 모두 다른 저희지만, 채운 샘 말대로 각자의 출발점으로부터 누군가의 사유의 편린들을 퍼즐 맞추듯 재미있게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어가면 좋겠네요!

이번 주에는 양쪽 조 선생님들 모두 비슷한 구절들을 뽑아오셨습니다. 주로 인식과 학문, 관점주의, 수동과 능동, 강함 등이 핵심 키워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식 역시 충동이며 그 배후에는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환원하려는 안전성의 욕망 및 두려움을 진정시키려는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구절(5[10])은 무릎을 탁 치게 할 정도로 간명했습니다. 학문이나 철학은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욕망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저희의 상식이지만, 니체의 렌즈로 보면 그 역시 여러 힘들의 투쟁과 지배 및 복종 관계의 표현입니다. 또 단편 5[64]에서는 니체가 힘의 유형을 구분하는 시도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능동적인 것이며, 저지당하여 저항하고 반응하는 것이 수동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라는 것이 사실 성장하고자 하고 권력을 갖고자 하지 않는가, 상대적으로 약해서 제압되고 복종된 힘은 다 수동적인 건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즉 힘들은 모두 커지고 지배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은데 반응적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헷갈리지만, 저는 단편 5[82]에서 힌트를 얻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의는 “모두에게 자기 것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하듯이 나도 너에게”라고 말할 뿐이다. 두 권력이 상호 관계에서 가혹한 힘에의 의지를 억제하고 서로에게 동등한 것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서로 동등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지상의 모든 “선한 의지”의 시작이다.”

단순히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과 이질적인 것 등 모든 것이 자신과 같은 것이길 원함. 이것은 나 자신과 다른 것과 맞붙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와 동시에 자기도 다른 무언가가 되는 작업으로서의 생명의 동화과정과는 분명 다른 것 같습니다. 유기체는 다른 물질들을 자기 실존 조건 속에서 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규칙적이지만 매순간 새로운 신체 조건을 만들어 냅니다. 리액티브하다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을 겪지 않고 동화시키지도 동화되지도 않겠다는 움직임입니다. 한 마디로 영향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이 바로 리액티브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세상이 능동적 힘과 수동적 힘으로 말끔하게 이분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니체가 말하는 동화작용이 조금 헷갈렸었는데요. 한편으로는 동화시킨다는 작업이 다른 질료나 힘들을 지배하고 새롭게 질서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것 같다가도,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것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채운샘께서 강의 중에, 모든 힘 속에는 이미 이질적인 힘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려보면 반응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사이에 선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채운샘은 음양의 예를 들어주셨는데요. 서로서로 갈마드는 주변 힘들의 차이 혹은 낙폭에 따라 각각의 힘들이 띠는 양상도 달라집니다. 바로 그러한 양상의 순간적인 경향성 혹은 결이 힘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여전히 헷갈립니다만 ㅜㅜ).

그럼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식한다는 것, 어떤 법칙과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힘에의 의지일까요? 혹은 그런 것을 추구하는 자들(그의 신체를 이루는 힘들의 양상)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혼란스럽게 하고 낯설게 하는 요소들을 이미 알려진 것이자 하나의 불변하는 무언가로 환원하려는 경향은 바로 지금까지의 학문과 철학이 가져온 ‘진리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운샘께선 6[26] 단편에 나오는 ‘<힘에의 의지>에 대한 계획안’을 곰곰 생각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 첫 순서에서부터 니체는 진리를 다룹니다.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한 시도로서의 힘 철학의 첫 번째 상대는 진리입니다. 니체는 진리 자체가 의지를 함축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것이 시공간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땅 위에서 만들어진 생산물임을 밝히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토양은 종교와 도덕과 형이상학이지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진리 아닌 것이 아니라 진리를 원할까요? 니체에 따르면 진리에의 의지는 지친 자들의 특징입니다. 단편 6[26]에 따르면 “공포, 나태, 육욕, 지배욕, 탐욕― / 그리고 그 변형들. 질병, 나이, 피로―”와 동의어입니다. 즉 허무주의의 징후지요. 허무주의는 두 유형이 있습니다. 저 우월한 것들에 비해 여기는 무가치하다는 식의 삶의 비방으로 전개되는 것과, 그 어느 것도 가치가 없고 이상조차 없어서 무를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진리에의 의지는 전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허무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서 ‘영원회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니체의 계획안에 대한 추측입니다. 힘에의 의지라는 제목 아래 그동안 주워들었던 어마무시한 개념들의 콕콕 박혀있는 것을 보면, 힘에의 의지는 정말 니체 말년의 야심찬 기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니체가 몇 년 더 작업해 출간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공상도 해보지만 그건 니체의 일이었을 테고 저로서는 지금 이 조각들로부터 제 가치 전도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두서도 없이 너무 주절주절 쓰다 보니 무척 길어졌네요. 2교시 <백년의 고독> 토론에서는 아마란따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를 지배한 힘들은 무엇일까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영샘 조는 아르까디오와 우르술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 모양인데 지안샘 후기에서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서둘로 공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 <유고> 19권 끝까지 읽고 전처럼 10개 문장을 뽑아옵니다. 뽑은 이유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주세요.

  2. <백년의 고독>2권 15장(“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로 끝나는 장)까지 읽고 세 구절을 선정해 옵니다.

  3. 자기주도학습 발표가 있습니다. 뾰족한 주제는 안 잡히더라도 이번 학기 니체를 공부해갈 방향을 잡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니체로 오기까지 나의 문제의식과 고민과 삶에서의 질문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서 출발해, 니체의 어떤 매력이 나를 끌었는지를 고민해봅니다. 힘에의 의지 개념에서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끌렸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아니라 끌린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초점은 니체에 대한 연구도 아니고 니체가 쓴 철학에 대한 연구도 아닙니다. 그것은 연구자들이 할 일이고, 저희에게 중요한 점은 나 자신에게 니체와의 만남이 어떤 의미인가입니다. 여기서 출발해 그의 시대든, 평전이든, 편지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책 한두 권을 고르고 읽은 만큼을 정리하여 공유해봅니다. 한 페이지 정도 적어오시면 좋겠네요! (*혼자 주도하는 것이 어려우면, 관련 텍스트를 삼삼오오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간이 세미나를 해도 좋을 것 같구요. 저 같은 경우는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을 읽으려 하는데요, 함께 읽으실 의향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간식은 수연샘과 주영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3

  • 2021-03-09 19:07
    오오 힘의지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구절들을 읽고 있군요. 살짝 부럽네요ㅎㅎ
    영향 받을 수 없음이 약함이고 반응적인 힘의 표현이라는 니체의 통찰은 늘 놀랍지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을 갖고 다른 것들을 동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얼마 전에 읽은 이반 일리치 인터뷰집에서 일리치가 어떤 전통이나 역사성 안에 뿌리내리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타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관계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고것이 떠오르는군요.

    • 2021-03-11 00:42
      참내 공부를 같이하면 될 것을 뭘 남의 세미나를 부러워하고 그러시죠. 건화샘은 간접체험 금지. 직접체험만 가능.

  • 2021-03-11 00:44
    저도 요즘 힘 개념을 공부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얼마나 외부의 힘에 열려있느냐의 문제가 곧 감수성이고 힘의지라는 점에서 마꼰도의 고립과 그로 인한 멸망이 다 이어지더라구요. 백년의 고독과 니체의 힘을 어떻게 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타자와의 접속, 고독, 영향력, 힘의지...이런 문제들이 아직은 거칠지만 점점 연결이 되는 것 같아서 재미있는 지점이에요. 니체 공부는 실로 구슬 꿰는 빡센 작업 같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