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차탁마NY 1학기 3주차 후기(2021.3.6)

작성자
지안
작성일
2021-03-09 00:39
조회
188

저희 조(나영샘조)에서 나눈 이야기들 중심으로 3주차 수업 후기 남깁니다.


[1교시]


신기하게도 소설은 그렇지 않은데 니체 텍스트는 각자 선별해 온 문장들이 상당히 많이 겹쳤어요.


인식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 환원하는 거다-두려움으로부터 안정성을 구하는 학문, 이성은 잿빛 개념들의 철학이다, 수동과 능동, 의미를 구하지 말고 집어넣어라, 훌륭한 동물 등이 공통적으로 니체와 만났던 구절이었습니다.


---


이 중 주로 얘기를 나눴던 부분은 우선 훌륭한 동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44쪽 5[34]에서 니체가 우리는 우선 훌륭한 동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흔히 (우리가) 정신과 감각을 대비해서 생각하는 것에 반해 그는 이 구분을 무화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정신적인 사람들이 더 섬세한 여과기와 장치들을 가졌다고 할 때 이는 그들이 보통의 우리보다 훨씬 민감한 감각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세밀한 것들을 포착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들, 좋다고 느끼는 것들은 대개 거기서 거기이지요. 단짠매의 무한순환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우리의 이 공통(?) 감각의 문제가 질과 양의 문제에서 ‘5[36] 우리의 감각들은 특정한 양을 중간으로 갖고 있다는 구절과 연관된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범위가 있는데 우리의 감각은 이 스펙트럼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죠. 반면, 정신적인 사람들은 이 범위를 넘어서는 어떤 힘들의 표현(질)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열배 강화하거나 무디게 한다면 우리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이때의 몰락이, 다른 존재로의 변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예컨대 들뢰즈의 되기개념을 여기에 접목시켜 본다면, 새 되기(?)는 새의 감각을 가지고 새의 방식으로 세계의 힘의 표현들을 포착하게 되는 것일 수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리하면, 이 구절에서 중요한 지점은 정신적인 자들은 가장 감각적인 자들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감각적이라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한 것이기도 하지만 (채운샘께서 강의에서 말씀해 주셨듯이) 무엇보다 감수성의 문제라는 것이고, 감수성은 내 속에 이미 내재한 무수한 이질적인 힘들과 관계 맺는 능력입니다.


---


다음에 얘기한 부분은 296쪽 6[15] 의미를 사물 속에서 구하지 말고: 의미를 집어넣어라!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접하든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찾아야 할 의미가, 어떤 진리가 이미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미를 구하려 드는 것이겠죠. 그런 뜻에서 이 구절은 고정된 진리라는 것은 없으므로 그것을 계속 구하지 말고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라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조에서는 이것이 니체가 염세주의를 비판하는 지점과 연결된다고 보았고 자연스럽게 300쪽 6[25] 종래의 염세주의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얘기하게 되었어요. 니체가 어떤 면에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넘어서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었는데 뭔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인영샘께서 개인 과제로 1일 1쇼펜하우어를 공부하고 계셔서 앞으로 저희의 가려운 부분을 해소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려서 토론을 많이 하진 못해서 저희 조 1교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였습니다.





[2교시]


2교시에 저희는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의 힘 의지에 대해 흥미로운 의견들을 많이 주고 받았는데요. 인물별로 얘기 나눈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르카디오


먼저 아르카디오의 사형 장면(192쪽)에서 그가 보인 감정에 대해 얘기하였습니다. 아르카디오는 사형이 거행되기 전 삶에 대한 향수, 호기심 등을 보이면서도 죽는 순간에는 자유파 만세라고 외칩니다. 이런 아르카디오의 행동은 어떤 힘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아르카디오를 지배하던 전쟁에 대한 맹목적 신념과 그것의 공허함이 자리했고 이는 그가 짧은 순간이나마 삶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태어날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마르케스가 이 부분에 대해, 그가 처음에는 삶에 대한 향수를 나중에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서술한 대목에서 저는 어쩌면 아르카디오는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을 산 적이 없었던 것 아닐까?라고 느꼈습니다. 온통 텅 빈 어떤 신념의 의지에 붙들려서, 그 자신은 한 번도 대지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우응순 선생님의 주역 강의를 들었을 때 선생님께서 절기마다 자연과 만물이 변화하는 것을 함께 느끼고 즐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3주차 수업이 있었던 토요일에 저는 아! 이런 날이 정말 봄날이지라고 느꼈는데 그 이유는 봄은 화사하고 예쁘고 생기 있고 온화하다는 우리의 기대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죠. 우리의 기대, 관념, 믿음은 늘 실제로 일이 벌어지는 삶의 현장에선 가차 없이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환상의 깨짐이 생의 감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아르카디오는 죽는 날에서야 그날의 태양과 젖은 머리의 레베카의 꽃무늬 옷,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의 발소리 등으로 묘사된 일종의 생의 감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죽을 때는 다시 자유파를 외쳤을까? 여기에 대해 아르카디오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의 힘을 벗어나지 못했다란 의견과 후회했지만 그 신념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무로 되돌리는 것이기에 끝까지 그 신념을 붙들고자 하는 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아르카디오보다 더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어떻게 전쟁의 공허함을 깨닫고 돌아설 수 있었을까를 질문하며 자연스럽게 화제가 대령으로, 아니고 ^^; 우르슬라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부엔디아 대령이 결정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된 것은 우르슬라의 영향도 한몫하지 않았을까란 추측에서였죠.


-우르슬라


우르슬라는 마치 번영, 번식, 생명력 등을 보여주는 대지와도 같은 인물, 그리고 가장 어떤 특정한 신념/도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조금 다르게 보신 경우도 있었는데요. 오히려 가장 도덕적이고 집안에서 자신의 중심성을 계속 확보해 가려는 인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동일한 관점에서,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나올 것에 강한 두려움을 가진 우르슬라의 태도에서 그녀가 도덕적인 인물이라고 해석한 의견도 주셨는데요. 이에 대해 금기를 도덕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 또한 제기 되었습니다. 우르슬라가 어떤 중심적인 힘을 조직하고 만들려는 인물로 보인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수습하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 그렇게 된 거지 처음부터 어떤 중심점을 구축 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란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마란따


아마란따에 대해서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있어도 거의 죽은 것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한 채로 지내는 인물로, 그렇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려질 법도? 한데 계속 뜨개질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설정된 것은 어떤 뜻일까? 쉽게 의견이 정리되진 않았지만 저희는 아마란따의 극단적 인내심- 고통과 불행마저도 빨아들이는 그것을 아주 강한 자기애가 아닐까 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극도의 폐쇄적인 힘 의지.


이 밖에도 변화가 오기 이전의 순수한 마꼰도와 같은 결로 읽히는 레메디오스를 인식의 지평을 가지지 않은 날 것의 존재로 해석해보았고, 마르케스가 그리는 마꼰도의 고독은 니체의 고독과 어떻게 다를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이 부분은 향후 좀 더 풍성한 의견들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다음주에도 즐겁게!

전체 10

  • 2021-03-09 19:14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열배 강화하거나 무디게 한다면 우리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은 정말 띠용하네요! 우리의 신체가 일종의 해석의 체계라는 걸 한 마디로 요약해놓은 것 같아요. 우리는 존재하는 방식대로 느끼고 느끼는 방식대로 존재하는 거라는 뜻 같습니다. 정신적 해석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니 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르게 느낀다는 건 다른 존재가 된다는 거겠군요...! 글자도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

    • 2021-03-10 15:07
      잘 보여서 좋죠? ㅎㅎ 니체라는 띠용한 해석 체계가 기존의 우리를 몰락시키고 변신하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아무리 띠용한 문장을 만나도 내 해석 체계가 오작동을 일으키긴 쉽지 않아 - 재빠르게 자동복구시스템이 돌아가죠 - 늘 문제란 생각도 들고요. 니체와 찐하게 만나신 건화샘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

  • 2021-03-09 23:59
    저는 이 ‘몰락’을 인간이 아닌 존재 또는 신체적 죽음으로 이해했는데 지안 샘의 말씀을 읽고 보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머리말 4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나는 사랑하노라. 깨닫기 위해 살아가는 자, 언젠가 위버멘쉬를 출현시키기 위해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를, 그런 자는 그럼으로써 그 자신의 몰락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니.’ 몰락과 파멸을 원하는 것이 다른 존재로의 변신의 가능성을 열고, 무수한 이질적인 힘들과의 관계 속에서 ‘되기’를 시도하는 것! 예전에 수업 중에 들었던 '세계를 느끼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채운 샘의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지안 샘이 ‘의미를 사물 속에서 구하지 말고:의미를 집어넣어라’ 이 부분을 강조해 주시고 나서 [백년의 고독] 인물들 별로 조원들과 나눈 의견들을 정리한 것을 따라가 보니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점이 큽니다. 왜냐하면 제가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 목적을 어떤 정답을 찾고 있었지 않았나...왜 이렇게 딴 생각에 빠져있나 하고요. 그리고 인물들의 힘의지를 해석하는 다양한 조원들의 힘의지를 서로 이해하고 교류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힘의지를 돌아보는 데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샘의 어떤 힘의지가 이런 해석을 하게 하는 걸까?', '나의 어떤 힘의지가 아마란타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가?'라고 질문을 바꿔보기! 인물을 통해 만나는 타인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신없었던 세미나를 꼼꼼하게 정리해 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샘 말씀처럼 이번 주도 즐겁게!!! (^^)

    • 2021-03-10 11:11
      몰락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반성까지! 그런데 정말 소설속 인물들을 이렇다 저렇다 결론내리고 있으면 어느새 또 빠져나가버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희의 긍정/부정, 삶/삶을 산 적 없는 삶(?) / 폐쇄적/개방적의 도식이 너무 빈약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맞대고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늘 재밌는 것 같습니다. 짱짱한 후기와 탄탄한 댓글 잘 읽고 갑니다~~

      • 2021-03-10 15:20
        맞아요. 우리는 결론 사이를 빠져나가는 힘들을 포착해야하는데 매번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길 좋아하고 규정되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책을 함께 읽을 때의 경험이 소중한 듯 합니다. 내 규정을 늘 흐트러뜨려주는 타자들이 있으니까요.

    • 2021-03-10 15:16
      자기주도학습으로 차라투스트라 읽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또 인영샘께서 깨알같이 엮어 주시니 귀가 번쩍 합니다. 감사해요.
      우리가 책과 작가를 자꾸 일대일로 대응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떨치기가 쉽지 않은 듯 해요. 책은 그 자체로 여러 힘들로 얽혀 있는 것인데 말이죠. 순간 든 생각인데,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야말로 가장 다면적인 힘들이 교차되고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feat. 아마란타)

  • 2021-03-10 12:29
    "우리의 감각들은 특정한 양을 중간으로 갖고 있다" 이 문구가 관건인 것 같은데요. 니체에게 양은 항상 질을 동반한 양이라는 것, (채운샘께서 우리는 양과 질을 나눠보는 경향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죠. 이런 경향은 우리의 사고가 변증법적 사고에 익숙한 탓이 아닐까요. 일정한 양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질적변화를 불러온다는 상식말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감각적 세계를 형성하고 그걸 질로 표현하는 게 비슷한 류들을 인간이라고 한다, 니체에게 인간이라는 종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니체에게 '싸움'이라는 의미는 단지 인간의 선악에 대한 관념과의 싸움 뿐만이 아니라 그 너머, 금기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도 해보게 되네요.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열배 강화하거나 무디게 한다면 우리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는 대목과 100년고독에서 "고모하고뿐만 아니라, 자기 어머니하고도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우리가 이렇게 신부들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대목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니체에게 '우리의 몰락'은, 아무튼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존재가 되는 것'일 텐데,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봄볕 속에서 사유가 난분분합니다.

    • 2021-03-10 15:26
      난희샘께서 금기를 이렇게 연결시켜 주시니 또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네요! 니체를 읽으면서 거듭 내가 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언어사전 속 의미들을 먼저 지워보고 새롭게 무언가와 만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2021-03-11 00:28
    저는 요즘 니체를 읽으면서 약간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에요. 갑자기 누굴 막 만나게 되더라구요.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파우스트 구절과 비슷한 문장이 책에서 뿅 나타나는 걸 보면서 니체가 정말 괴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니체가 영향을 받았거나 영향을 준 다른 책들을 같이 읽으면 훨씬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겠구나 싶구요. 그런 점에서 지안샘과 주영샘의 들뢰즈&푸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해요.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차라투스트라는 정말 짱짱!! 강력 추천합니다. 제 인생책이에요.ㅠㅠ 근데 지안샘이 자기주도학습용으로 고른 책이 이미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진짜 최고라서 꼭 읽으셨으면 좋겠고 또 샘이 궁금해하시는 영원회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니까요. 차라투스트라 만세~~ 기승전차라투스트라...

    • 2021-03-12 23:14
      오 나영샘의 인생책이군요! 더욱 궁금한데요? ^^ 차라투스트라! 저 자기주도학습 다른 거 다 빼고 일단 요 책 중심으로 읽으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