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4학기 1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10-22 23:28
조회
111
4학기가 시작됐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참 많은 스피노자주의자들을 거쳐 왔네요. 마슈레, 마트롱, 들뢰즈, 워런 몬탁, 내들러 스피노자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철학자들을 거의 읽어왔습니다. 게다가 노자, 한비자, 맹자까지 고대 중국의 정치 텍스트들을 함께 읽었으니 스피노자를 이보다 더 찐하게 만날 수 있나 싶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혁명 속에서 스피노자를 읽은 네그리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네그리의 독특한 독해를 배울 기회겠지만, 스피노자의 사유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 궤도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스피노자주의자들처럼 스피노자를 찐하게 만나며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네요!

다음 주부터는 조금씩 에세이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번 학기는 그동안 저희가 배웠던 것들을 총동원해서 스피노자의 윤리·정치로부터 우리의 삶을 문제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선 어떤 스피노자의 어떤 개념을 풀고 싶은지 문제의식을 써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하신 것처럼 《야만적 별종》 1, 2장 읽고 메모해 오시면 됩니다. 후기는 오랜만에 현정쌤께, 간식은 정옥쌤께 부탁드릴게요.

스피노자의 철학이 혁명적인 지점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비판에 있습니다. 그의 철학이 계속 읽히는 이유도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아이디어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네그리의 독해는 과연 엄밀한 의미에서 스피노자적인지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네그리는 인간의 본질을 ‘노동’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다’라는 식의 규정은 근대적인 발상입니다. 근대 이전에 인간 본질에 대한 이런 규정은 없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의 역량을 내재하고 있다’는 식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마르크스의 규정과 달리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성향’을 설명한 것입니다. 반면에 마르크스의 규정에는 오직 인간은 노동함으로써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오직 노동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네그리는 마르크스의 논의를 이어받아 ‘산 노동’에서 실천적 지점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과연 ‘산 노동’에서 스피노자적 윤리를 모색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읽어가며 확인해봐야겠죠. 다른 책들을 읽을 때는 그들의 해석에 감탄하며 읽었는데 의심하면서 읽는 제가 뭔가 어색합니다. ㅋㅋ

그럼에도 네그리가 스피노자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지점은 스스로 우리의 일상을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이 모두에게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읽을 《야만적 별종》의 원어는 ‘Savage Anamorly’입니다. 여기서 savage란 길들여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네그리는 포테스타스와 포텐샤를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전복적’, ‘야생적’이라 읽은 데에서 그의 파토스가 느껴집니다. 발리바르 같은 경우에 포테스타스와 포텐샤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는 포테스타스가 작동하지 않는 포텐샤에 이르는 것보다 언제나 이미 작동하는 포테스타스에 빈틈을 내기 위한 포텐샤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네그리의 문제의식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가 savage라는 표현을 쓴 것은 어떤 경우에도 수동적으로 겪지만은 않는 인간의 역량을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저한테 이번 네그리와의 만남은 스피노자에 대한 해석보다 스피노자를 만나는 문제의식에 더 주목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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