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4학기 5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11-16 03:23
조회
161
공지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느 4학기도 절반인 5주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절차탁마S를 시작했을 때는 한 주 한 주가 너무 천천히 갔는데, 지금은 정신 차리면 한 학기가 지나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직 에세이 문제제기도 잘 안 되니 걱정입니다. 사실 이런 걱정을 할 바에야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고, 서문을 쓰면 될 텐데 손가락만 빨고 있단 말이죠. 이런 자신을 보면 변한 게 그다지 없는 것 같단 말이죠. ㅠㅠ 어쨌든 선생님들에게 의지하며 이번 학기도 잘 넘겨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야만적 별종》 7~8장, 《전복적 스피노자》 6장 〈"스피노자로 돌아가기" 그리고 코뮨주의의 복귀〉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에세이 서론과 어떤 개념으로 진행할지 간략하게 정리된 본론을 써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영님쌤께 부탁드릴게요!

이번 시간에도 에세이를 위주로 토론과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서바이벌(?)의 생존자는 정수쌤입니다. (매번 미션을 완수하는 서바이벌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ㅋ) 깔끔한 서론을 쓰셨죠. 다만 토론 때 얘기해주신 것과 같이 개념 정리보다는 문제제기들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글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다음 회차 때는 꼭 생존에 성공하죠! 지난번 공지와 같이, 제가 들은 토론+수업 때 코멘트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걸로 공지와 후기를 갈음하겠습니다.

경숙쌤: 신과 양태의 관계, 독특한 실재에서 드러나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중심으로 소유를 문제 삼기.

소유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권리’로 통용됩니다. 하지만 소유를 하나의 권리로 보장해주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스피노자는 양도될 수 없는 자연권을 얘기하는데, 우리가 얘기하는 권리로서의 소유는 자연권과 비슷한 성질일 수 있을까요? 채운쌤은 소유가 역으로 우리를 예속하는 지점도 분명 있다고 하셨습니다. 역량의 차원에서 보면, 소유에서 오는 기쁨은 외부 대상에 의존적입니다. 대상이 사라지면 기쁨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유에 의존하는 기쁨은 그 자체로 허망함을 내정하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소유는 지금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권리이자 욕망입니다. 소유는 정서모방에 의해 견고하게 작동하기도 하는 것이죠. 막연히 소유는 나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어떻게 해롭고 무기력하게 될 수밖에 없는 활동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윤순쌤: 공통개념을 중심으로 자식 세대와 함께하기를 시도하기.

윤순쌤은 자주 자식과 관련된 문제를 가져오셨는데요. 이번 에세이에서는 ‘엄마’라는 규정성에서 조금이라도 덜 예속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지셨습니다. 채운쌤은 자식은 정서적으로 밀착된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랫 세대와 함께하기를 시도할 수 있는 매개적 존재라고도 하셨습니다. 일단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대체로 동일시에 기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갓난아기를 키울 때 겪게 되는 신체 변형은 공통적인 것의 형성이긴 하지만, 들뢰즈를 비롯한 스피노자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엄밀한 의미에서 공통적인 것의 형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번에 자식과 관계 맺는 것 나아가 자식 세대와 함께하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걸로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현정쌤: 그동안 문제를 제기해왔던 공부·앎의 총정리.

지난번에 ‘적합한 관념으로의 이행’을 주제로 받으셨는데요. 스피노자의 적합한 관념으로의 이행이 기쁨으로 오는지 정리하실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공부 즉 현행적 역량〉이란 에세이로 글을 쓰셨었죠. 이번에는 그때의 고민으로부터 또 나아가시는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봉선쌤: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를 통해 매끄러운 관계에 대한 상을 넘어가기.

2주 동안 설왕설래했던 봉선쌤의 문제의식이 잡혔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지배자가 문제였는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문제였는지 알기가 힘들었는데요. 어쩌다 봉선쌤의 가족사를 알게 되기도 했고요. 어쨌든 토론하다가 정리가 됐습니다. ㅋㅋ 봉선쌤은 스스로 관계가 매끄러워지기를 바랐고 거기에 선생님 자신의 욕망이 투영됐다고 하셨죠. 채운쌤은 단순히 문제를 가족 안에 국한시키지 않고 좀 더 사회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가족으로서 겪는 문제도 사회적인 차원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님쌤: 역량에 초점을 맞춰서 증대와 슬픔이 왜 기쁨과 슬픔과 연관되는지 소화하기.

지난번 코멘트와 비슷하게, 영님쌤의 이번 에세이 과제는 스피노자의 개념을 영님쌤의 이야기로 소화시키는 것입니다. 역량은 외부의 평가에 따라 규정되지 않습니다. 실존하는 만큼이 곧 역량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역량과 정서의 이행, 사건을 겪고 작용을 가하는 우리의 방식은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하나로 연결돼있습니다.

규창: 개인의 역량과 공동체의 역량이 왜 따로 규정될 수 없는지 정리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겪는 정념을 문제 삼기.

이번 시간에 코멘트를 받으면서 저는 공동체 안에서 자주 슬픔으로 변용된다는 걸 새삼 알게 됐습니다. 이때 슬픔은 누군가 저를 억압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겪기만 하는 무능력에서 비롯됐습니다. 공동체에서 문제를 겪는 것보다 회피하는 것은 저를 슬픔에 고착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개체의 자연권도 완전히 양도되지 않습니다. 제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그렇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저의 어떤 태도가 이런 수동적인 것에 대한 욕망과 연관되는지 분석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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