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2 두번째 시간( 8/20)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8-15 14:05
조회
189
최근 채운샘이 꽂히신 책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밥벌이》라는 책인데요, 저자인 곤도 고타로는 ‘생존’을 자본에 저당 잡히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하루 한 시간 노동으로 직접 먹고 살 ‘쌀’을 재배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하는 ‘실험’을 벌였습니다. 이 책은 그 실험의 기록입니다.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부양하는 것도,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럴수록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은 커지고, 불안과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관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생존 투쟁에 노출시키는 것, 이것은 자유주의·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우리를 길들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제 어떤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곤도 고타로에 따르면 IS에 가담한 한 일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른 ‘픽션(fiction)’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일본에서 생존경쟁으로 스스로를 소진하며 점진적인 자살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지하드 전사가 되어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 적어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가난해도 먹고살 수는 있다는 겁니다.

이 와중에 곤도 고타로는 혁명이나 대안을 부르짖는 대신에 ‘벗어나기’를 실험합니다. 또 다른 (더 강력한 혹은 더 정의로운) 권력을 요청하거나 또 다른 이상을 만들어내는 대신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배치를,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욕망과 인식이 어떤 방식으로 인도되고 있는지를 신중히 살피며 다른 방식의 주체화와 다른 삶의 양식을 시도하는 것. 곤도 고타로가 한 실험은,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자본의 부품이 되어가고 생존이라는 굴레에 갇혀 자신의 글을 교환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하는 주어진 현실로부터 일단 한 발짝 벗어나보는 것이었습니다(책을 읽다보면 곤도상의 ‘대책 없음’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와 더불어 그는 ‘생존’과 ‘관계’와 ‘돈’ 등등에 대해 다른 감각과 다른 앎을 갖게 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푸코와 일리치가 고민한 것도 이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대안’을 말하는 ‘전문가’들을 ‘극혐’했다는 점입니다. 일리치는 전문적 지식을 독점하고 우리에게 필요를 세뇌시키는 ‘전문가들의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썼고, 푸코는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해결책’ 따위를 무화시킬 수 있도록 문제를 최대한 어렵게 제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둘 모두는 “살아가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보다 우상을 부숨으로써 살아갈 공간을 마련해주려고 한”(데이비드 케일리·이반 일리치,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65쪽)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한 시즌 동안 우리는 푸코와 일리치를 가이드 삼아서, 우리는 무엇과 싸우며 어떻게 내 문제를 실험해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읽게 될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이 책에서 푸코가 분석하고 있는 것은 생명권력,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입니다(중간부터는 딴 길로 새서 ‘통치성’에 대한 연구로 넘어간다고는 합니다만). 근대 이전의 주권권력의 핵심은 ‘생살여탈권’이었습니다. 삶의 구석구석 촘촘히 개입하기보다는 ‘허가와 금지라는 이항분할’을 설정한 뒤 금지된 것을 행하는 자들의 자유나 목숨을 빼앗는 권력. 이에 비해 (권력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근대권력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간을 특정하게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번에 푸코가 다루고 있는 ‘생명권력’은 인구의 비율과 통계에 작용하는 권력입니다. ‘인구’로 하여금 출생부터 사망까지 일생의 모든 순간을 자본의 회로에 따라 흘러가도록 하는 권력.

이러한 권력의 생리는 앞으로 책을 읽으며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저는 얼마 전에 연구실에 놀러온 해완이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쿠바에 살면서 해완이는 자신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완전히 제1세계 시민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인프라’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과 또 그 운행정보를 알려주는 어플과 다이소와 쇼핑몰과 당일배송이 가능한 택배 시스템 등등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죠. 물욕이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자본주의를 옹호하건 비판하건 간에 우리는 ‘문제’나 ‘필요’가 생기면 곧바로 그것을 이미 완비되어 있는 ‘인프라’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에 비해 쿠바에서는 이웃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우리 삶에서 생겨나는 온갖 문제들을 사회적 인프라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고, 그런 한에서 우리의 ‘문제’도 ‘해결’도 모두 자본의 흐름 안으로 포섭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푸코가 제기하는 ‘생명권력’의 문제도 이 언저리에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함께 고민해보도록 합니다^^

다음 주에는 《안전, 영토, 인구》의 3, 4, 5강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한역이 형이 3강, 민호가 4강, 제가 5강을 맡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책을 읽으시면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 질문이 생긴 지점, 우리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함께 나누어보고 싶은 이야기 등등을 메모해오시면 되겠습니다. 간식은 이미현샘과 이진아샘이 맡아주셨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전체 2

  • 2019-08-16 12:59
    드디어 부천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어요!! 와. 기쁩니다. '벗어나기'라는 문제의식이 세미나 안에서 어떻게 토론될지도 궁금합니다. 화이팅! ^^

  • 2019-08-17 15:52
    "문제의식만큼 책은 읽힌다." 강의 첫 시작에 채운샘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공부하다보니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과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은 같은 말인것 같거든요. 이번 비기너스의 공부는 [관리되는 삶에서 자존하는 삶으로] 가기 위한 세미나입니다. 자존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난 무엇을 세밀히 살펴봐야 할까? 나에게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인프라에 의존하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나의 행위를 새롭게 살펴보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선민샘, 부천에서 카프카 강의를 하시더군요. 선민샘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