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NY 4학기 4주차(11.7)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11-06 10:29
조회
155
“행동을 가두는 사유나 사유를 가두는 행동은 아주 유용한 자동운동automatisme을 따른다. 이 자동운동은 안전을 보장한다. 실제로 이런 임시 상태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모든 사유는 피로감을 드러낸다. 이에 반해서 내부나 외부의 사건에서 출발하여 문제 제기에 전력을 다하는 모든 사유는 재시작recommencement의 능력을 보여준다. 사유는 한쪽으로 물러서거나, 또는 도중에 행해진 발언들을 무시한다. 니체가 과거의 철학자들에 대하여 평가를 내린 것은 이러한 피로감 · 재시작의 능력 · 물러섬 · 넘어감에 의해서이다.”(클로소프스키, 《니체와 악순환》, 그린비, 23쪽)

클로소프스키는 니체에게서 ‘재시작의 능력’을 주목합니다. 니체의 과감함은 “교육하는 철학자라는 태도를 무조건 거부”(같은 책, 24쪽)한다는 데 있습니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진리에의 의지’에 질문을 던지면서 “철학자는 충동이 마침내 한 번 말하도록 하는 일종의 계기이자 기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자의 인식의 배후에 있는 것은 진리에의 의지가 아니라 그에게서 지배적인 충동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철학자도 자신의 신체를 벗어나서, 자신이 놓인 구체적인 조건들 바깥에서 삶이나 세계를 논평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하는 철학자’가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고 그로부터 보편적 윤리를 정초하고자 하지만 실상 그는 자기 자신의 충동과 가치평가를 보편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육하는 철학자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자기 조건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렇다면 ‘진리에의 의지’를 회의한 니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상가들의 모순과 기만에 대한 인식은 그의 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제 인식을 폐기하고 직접행동에 나서는 수밖에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니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는 ‘파괴’입니다. 새로운 우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 매우 안전하게 주어진 조건을 재생산하고 있는 사유와 행동의 자동운동을 훼방 놓는 것. 클로소프스키는 묻습니다. “철학자의 사유와 체험이 그가 태어난 사회를 보증하는 역할을 할 때 그 사유와 체험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24쪽) 이때의 우상파괴란 자기 인식이자 자기 극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상들에 대해서도 바깥에서 비평할 수 있는 자의 위치를 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서구문화가 전제하고 있는 가치판단, 그리고 거기에 깃들어 있는 삶의 유형을 가치평가하고 결산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획득한 지식·관습·풍습·습관에서 출발하여 아직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로 나는 이 관습의 수혜자인가 아니면 희생자나 피해자인가?”(25쪽)

제게 인상 깊었던 것은 ‘재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비판과 파괴의 시도 속에서 니체는 무엇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니체는 부정과 투쟁을 새로운 종합이나 화해에 종속시키지 않습니다. 니체는 “부수고 나간 우리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우”(26쪽)가 아닙니다. 니체의 놀라움은, 그리고 난해함은 파괴를 그 자체로 창조로 부정을 그 자체로 긍정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기존의 가치를 부수고 더 선하고 더 합리적인 가치를 새우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니체는 더 완벽한 체계를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파괴와 부정 자체가 ‘재시작의 능력’을 무한히 실현하며 자신의 가벼움을 구성해가는 과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사유와 행동의 자동운동과 싸우며 가볍게 춤추는 자로서 삶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 우리가 힘들게 꾸역꾸역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일이 아닐까 합니다.

공지가 너무 늦었네요. 그럼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가져오셔야 할 과제는 글 전체 방향이 담긴 문제의식을 작성해오시고, 글감을 모아오시고, 각자 안 풀리는 문제들을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팀별 작업 공유 시간에는 1, 3조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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