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차탁마 NY 1차 에세이 발표(12.19)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12-16 16:24
조회
266
이제 드디어 1차 에세이 발표를 앞두고 있네요! 지난 시간에는 채운샘의 마지막 전체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몇 가지를 강조하셨는데, 에세이를 쓰고 또 마무리하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제가 다시 한 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크든 작든 남들처럼, 그리고 기존에 우리 자신이 살던 방식대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에세이를 쓸 때에도 이러한 비전에 입각하여 질문이 제기되어야 합니다. 저는 간혹 글을 쓰다보면, 제가 허공에다가 대고 불특정한 청자들을 무분별하게 의식하며 누군가를 설득시키려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글을 쓸 때에도 우리 자신이 놓인 구체적 맥락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게끔 인도한 마주침들과 거기에 반응한 우리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우리의 글이 나오는 것이죠. 우리는 제 3자로서 어떤 문제를 투명하게 입증하거나 니체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나’에 머물러서 우리의 사적인 기억이나 감정들을 배설하고자 글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니체의 철학도, 개념에 대한 해설도, 자신의 경험도 ‘어디를 향해 삶을 이끌어갈 것인가?’라는 물음 아래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니체가 철학을 통해 구하고자 한 비전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마도 그것은 ‘자기 구원’일 겁니다. 주어진 가치, 상식, 의식의 전제들에 의존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삶에 부여된 목적이나 의미를 철썩 같이 믿어버리기를 거부하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출현하는 조건을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조건으로서의 삶과 생성을 긍정하는 것. 지나치게 간추리긴 했지만, 이것이 니체가 보여주는 철학적 자기 구원이 아닐까합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갈 때, 의식의 차원에 머무르며 조건지어진 것을 조건과 혼동할 때, 다시 말해 삶의 운동 속에서 출현한 것을 삶의 의미나 목적으로 둔갑시킬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에 삶을 저당잡히게 됩니다. 삶에 부여된 가치나 목적(과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삶에 속하는 여러 국면들을 부정하도록 하고 그로 인해 늘 불안이나 불만, 공허감에 시달리도록 하는 것이죠. 들뢰즈가 말하듯, 철학은 오류나 악이나 무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의미의 지혜의 결여, 우리를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어리석음과 싸웁니다.

우리도 니체를 따라서 ‘자기 구원’이라는 비전 속에서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 것이 채운샘의 당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당 잡힌 삶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물론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는 자기 전제에 질문을 던져야겠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만큼이 긍정이라고, 채운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모호하고 알 수 없고 위험스러운 지점까지 우리의 의식을 몰아가야 한다고요. 저는 에세이를 쓸 때마다 언제쯤 제가 에세이 쓰기를 좀 허덕이지 않고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쾌적한 에세이 쓰기에 대한 꿈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시작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에세이를 쓰는 중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라거나 ‘도대체 내가 뭘 고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벙찌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계신다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에세이 쓰기 자체는 알고 있던 것 위에 새로 알게 된 것을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다고 믿고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니까요.

채운샘의 또 다른 당부는 각자 택한 텍스트의 고유한 문제들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니체를 읽으면서 확인한 것처럼, 니체의 책들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 다릅니다. 각 텍스트마다 니체가 대면하고 대결하려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리듬이 책마다 다른 것이겠죠. 왜 이 텍스트를 선택했는지, 왜 다른 책이 아닌 이 책에 끌렸는지를 생각하면서 그 책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과 우리의 문제의식을 매칭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에세이 발표까지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어떻게 될지 또 모르겠지만, 일단 기존의 원칙은 모든 분들이 오프라인으로 참석하시는 것입니다. 26일 발표는 예정에 없던 것이니 그날 다른 일정이 있으셨던 분들께서는 줌으로 참여하시거나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1, 2차 발표 모두 참석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들 건승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토요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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