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9월 2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8-28 23:57
조회
103
그동안 규문은 그나마 코로나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정말 사태가 심각한 가봐요. 저희도 평소보다 더 조심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단체 카톡방에도 올렸지만 수업시간을 대폭 줄일 예정입니다. 지금도 시간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은데, 이것 참 큰일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지켜봐야겠죠. 모두들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만나요!

다음 시간에는 《맹자》 〈만장 상·하〉,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2부 끝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과제는 천명(天命)에 근거하는 군주의 권력이 구체적으로 백성의 역량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번 시간 과제와 비슷하지만, 군주의 통치가 백성들의 삶을 어떻게 기쁨으로 인도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는 9주차에 한번에 정리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는 지금 하던 대로 《에티카》 강독과 맞춰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간식은 경숙쌤, 후기는 정옥쌤께 부탁드릴게요~

스피노자와 맹자의 공통점은 기쁨의 정치학을 사유했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공포와 금지에 기반한 정치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신의 자연권을 전적으로 양도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이익보다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기존의 계약을 엎을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점에 근거해서 새롭게 정치를 사유합니다. 그도 홉스와 똑같이 공동체의 지속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구성원들의 삶을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에 의해 가능합니다. 공동체를 지속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법, 제도는 단순히 구성원들을 억압하기보다 그들이 ‘마치 이성에 따라 행동하듯이’ 살아가도록 보조합니다.

맹자의 인정(仁政)도 ‘기쁨’에 의해 촉발되는 정치학입니다. 스피노자가 주권을 구성원들의 삶과 연관 지었듯이, 맹자도 군주의 권력은 백성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통찰했습니다. 맹자가 패도정치를 경계하는 이유는 권력을 백성의 삶과 무관하게 휘두르는 통치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양혜왕 상〉 2장에서 하나라 걸왕의 폭정에 대해 백성이 “이 해는 언제 망할까? 내가 이 해와 함께 망하리(時日害喪, 予及女偕亡)”라고 말한 구절은 맹자가 패도정치를 백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피노자가 정치에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가져왔듯이, 맹자도 정치를 왕의 기쁨이 백성에게까지 전염시키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스피노자와 맹자의 다른 점은 법과 제도에 대한 태도입니다. 스피노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이성화하는 데 있어서 법과 제도의 역할을 중요시 합니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항상 정념에 예속될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이 집합적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하죠. 반면에 맹자는 법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합니다. 물론 스피노자와 맹자가 각각 가리키는 법과 제도는 다릅니다. 맹자에게 법은 형벌을 가하는 기준입니다. 맹자를 비롯한 유가가 법을 거절하는 이유는 ‘형벌을 쓰지 않아도 이미 잘 다스려지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17세기 공화정, 시민이 대두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성원들이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이로운 것을 판단할 이성을 갖추기를 꿈꿨습니다. 반면에 맹자는 기원전 4~3세기 신분, 계급이 분명한 사회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스스로 이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에게서는 스피노자에게서 볼 수 없었던 ‘교육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논어》 〈자로〉편 9장에서도 공자는 정치를 ‘백성을 많게 하는 것’, ‘부유하게 하는 것’을 거쳐 최종적으로 ‘가르치는 것’ 세 단계로 구분했었죠. 그리고 교육은 단순히 주입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심(不動心)을 유지할 수 있는 사(士)가 모범이 되는 것이어야 했죠. 맹자가 ‘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은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군주나 백성 모두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현자와 맹자의 사는 모두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이 미묘하게 다른 것 같아요. 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다른지를 정리하면서, 지금 대중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군요. 하하, 공부할 게 많네요!

*아래는 유가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에서 이뤄지는 보여주는 《논어》 〈자로〉편 9장입니다.

子適衛 冉有僕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에 가실 때에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子曰 庶矣哉

공자(孔子)께서 “백성들이 많기도 하구나.” 하셨다.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염유가 “이미 백성들이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부유(富裕)하게 해주어야 한다.” 하셨다.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이미 부유(富裕)하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가르쳐야 한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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