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탁S 3학기 5주차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20-09-01 05:56
조회
98
절탁s 3학기 5주차 후기

벌써 3학기도 5주차로 접어들었네요. 코로나로 선생님들을 많이 못 뵈어서인지 3학기는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코로나가 진정되어 2주 후에는 완전체로 만나뵙길 기대해봅니다. 이번 주는 <맹자>의 이루장과 <스피노자의 표현의 문제> 7,8장을 읽었습니다. 표현의 문제를 읽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그래서인지 샘께서 먼저 쭉 읽고 9주차에 전체 맥을 잡아 한 번에 정리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이번 주는 맹자만 정리했는데요, 맹자를 읽으면서 스피노자의 정치학이 많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과제를 하다 보면 언어로 딱 떨어지게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뭔가 자유롭지 않은 느낌입니다, 전 특히 스피노자의 논지를 붙이는데 아주 소심해지네요;; 맹자를 읽으면서 정치 관련 개념들을 각 장마다 정리해 놓으라는 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역량

맹자와 스피노자는 시대의 정치적 담론을 재구성한 인물들입니다. 맹자는 흐트러진 시대의 질서를 주나라를 중심으로 周이전으로 거슬러 가 요순문무주공의 계열을 만들어 그들을 정치의 모델로 세움으로써 인한 정치의 표본을 제시했습니다. 스피노자도 홉스의 사회계약론으로 말해지는 주권 정치에 맞서 법과 질서, 국가의 중요성을 개체의 입장에서 새로이 정립하는 정치론을 주장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정치론이 지향하는 공통점은 기쁨입니다. 스피노자가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기쁨으로 촉발하는 마주침을 구성할지 고민했다면, 맹자는 어떻게 백성과 함께 즐기는 정치(與民同樂)를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악인 건 없습니다. 그건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억압적이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는 언제나 대립할 수밖에 없지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보다, 개체라는 부분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와 관계를 구성할 것인가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샘은 그 출발점에 권리를 역량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고 하셨어요. 스피노자 철학에서 권리는 역량입니다. 그리고 그 역량이 실존하지요. 바이블처럼 외우지만, 쉬운 개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에서 권리가 역량이란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선은 ‘어떤 개체도 자신이 펼쳐내고 있는 것 이외에 다른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 ‘권리는 현행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다.’ ‘권리는 추상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스피노자 정치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흔히 권력자가 자기의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권력자가 그런 방식으로 역량을 발휘할 때 보아야 하는 것은, 그 역량의 발휘와 함께 작동하고 있는 다른 개체들의 역량이, 어떻게 발휘되면서 생산되고 있는가입니다. 아무리 험난한 시대여도 군주 혼자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군주의 권력 행사조차도 ‘힘 관계의 배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정치론의 핵심이지요. 법과 질서는 이 힘 관계 안에서 개체들이 스스로 더 안전하고 기쁨을 구성하는데 요청되는 것이 됩니다.

맹자는 권력이 천심에서 나온다고 하며, 천심은 곧 민심이라고 합니다. 군주가 그 권력을 행사할 대상은 백성이고, 백성은 군주에겐 존립의 근거가 됩니다. 군주가 백성들을 살게 해주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원할 때만이 군주의 권력이 유지 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는 스피노자가 살던 근대 사회가 아니니까 백성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유덕자 왕을 원합니다.  왕이 덕이 있다는 것은, 인의예지를 구현하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에게 선이 내재되어 있고, ‘인의예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내면의 선이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삶을 살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게 왕의 덕이죠. 여기서 맹자가 중요하게 본 것이 ‘항산’입니다. 백성들이 인의예지를 실현하는 항심을 가질려고 하면, 일단 항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군주를 떠나 다른 군주를 찾아가게 되겠지요. 인간에게 내재하는 선함, 인의예지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기쁨으로 촉발할 수 있는 관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군주의 통치 즉 왕도 정치입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하고 살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교화를 통한 자발적 복종(心服)

맹자는 백성들을 가르쳐 교화 시키는 것을 인정의 주요 요소로 꼽습니다. 백성을 교화시킨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위계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교화(敎化)는 공통 기반이 없이는 형성되지 않아서이죠. 化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내재된 것들의 변화를 의미하지요. 백성에게도 이미 인의예지가 내재되어 있다는 전제가 아니라면 백성을 교화하기 어렵겠지요. 법가처럼 법률에 맡기거나, 묵가처럼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방식이 될것입니다. 맹자는 ‘사람과 금수는 다르지 않다, 군자는 仁을 지켰다.’고 했고, 또 보통 사람도 성인과 다를 바가 없다, 모두 같은 사람인데 인의예지를 품어 먼저 깨달은 자가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서 먼저 깨달은 자가 이끌어주고, 백성을 이해하게끔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심복을 위해서라도, 백성과 더불어 즐기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선을 기르는 (養善)일 이었네요 .

그런데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해 더 요구되는 것이 통치 그룹의 수양(修養)과 수신(修身)입니다. 통치 그룹이란 왕을 비롯한 士계급을 일컫습니다. 왕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군주가 인한 마음을 가지고 덕을 펼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현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논지이기도 하구요. 이걸 왕에게만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군주의 지위는 고정되어 있고, 역량도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왕에게 바른 말을 하고 인정을 베풀어 왕도정치로 이끌어 갈 의무가 사 계급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 자신들의 수신을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수신은 내면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가들은 자기가 덕을 가지고 있으면 그 덕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자기로부터 인의예지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 수신입니다.

이 실천을 통해 '내면을 기른다'고 할 때에도, 관념적인 내면이 아닙니다. 이는 통찰력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주의 운동성을 사유하지 못하는 자가, 자기를 수신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천지의 운동, 천시, 지리, 다음에 인간이라는 전체성 속에서 인간을 사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백성이 이것을 스스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이런 면에서 맹자는 사계급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부심은 계급적 행위자로의 사계급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꿰고 있는 존재로서 인식 역량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입니다. 一治一亂의 역사적 흐름을 읽고, 역사와 우주와 인간 사이에 흐르는 연속성, 우주와 인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한 존재가  士계급인 까닭입니다.

이 수신修身이 전제된 한에서 심복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건 권력을 쓰는 문제가 아니지요. 내재적인 차원에서 백성의 역량과 동등한 지평에서 통치를 사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입니다. 맹자의 심복도 백성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해서 따르는 것입니다. 저에겐 이 해석이 아주 좋았는데요, 관념적이던 심복이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 하기에 폭군 걸왕을 정벌하러 온 무왕을 걸왕의 백성들이 반긴 것이겠지요. 자신을 더 잘 보존해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을 향해선 마음으로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군주의 역량입니다. 무력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복종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심복은 역량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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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1 10:36
    개념을 이해하는 게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외울 수 있다고 개념을 이해한 것이 아님을 올해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동양의 정치학들이 스피노자의 정치학과 접속하거나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들이 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말로 안 나와요. ㅋㅋ 그만큼 스피노자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겠죠.... 끙. 그래도 스피노자의 개념들과 접속하면서 조금씩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맹자의 개념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말은 쉽지만, 참 쉽지 않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