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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후기 및 공지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2006)

작성자
노심초사
작성일
2019-04-11 14:37
조회
206


 
세계 각지에서는 폭동과 테러가 비일비재해 지고, 대부분의 국가가 무정부 상태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은 국가 영국에는 불법이민자들이 넘쳐 난다. 한편, 아들이 죽은 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 따위는 모두 잃어버린 남자 ‘테오’ 그의 앞에 20년 만에 나타난 전 부인 ‘줄리안’은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 ‘키’를 그에게 부탁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눈앞에서 마주한 ‘테오’. 그는 ‘키’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인간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만 하는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시놉시스)

이번 시간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봤습니다. 간식을 맡으신 순화 선생님께서 맛있는 팝콘과 과일을 준비해오셨고, 어두운 조명아래 빔 프로젝터를 설치해서 정식으로 관람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니 정말로 재밌더군요. 보고나서는 <칠드런 오브 맨>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문제의식에서 이해해보기 위한 토론시간을 가졌습니다.

‘불임’이 만연한 사회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사회입니다. 새로움이 배태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냉소하거나, 권태에 시달립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음에 절망하는 이들은 자극을 위해 도박에 열을 올리고, 약물에 취합니다. 도박이나 약물에서 얻은 쾌락은 오래가지 못하고, 곳곳에서는 ‘평온한 죽음’에 이르는 처방이 공공연하게 권유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칠드런 오브 맨>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위기와 재난이 일상화된 세계이자, 도처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세계입니다. <칠드런 오브 맨>도 장르적으로 보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SF영화입니다. 당장에 저의 머릿속을 스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8일 후>, <레지던트 이블> ... 하지만 같은 장르의 영화일지라도 <칠드런 오브 맨>은 조금 이상한 영화 같습니다. 영화 속에는 비일비재한 폭동과 테러, 이민자들에 관한 차별과 냉대, 반체제적 운동들이 뒤섞여있습니다. 뭔가 낯설지 않은 풍경들입니다. 21주째 계속되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자 중에 일부만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는 보도들과 겹쳐집니다. 2006년에 개봉되었지만, 지금 보니 ‘리얼’한 공상과학 영화입니다.

마크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 경제 체계일 뿐 아니라 이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널리 퍼져 있는 감각”(《자본주의 리얼리즘》, pp.11-12)으로 진단했습니다. 불임이 유행처럼 번져버린 사태는 미래가 고갈된 세계에 도래한 위기의식을, 시효가 만료되기를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죽음의 문화를 담아냅니다. 영화 속 도처의 광고판에서는 크게 두 가지 구호들이 보입니다. ‘영원한 젊음’과 ‘평온한 죽음’이 그것입니다. ‘영원한 젊음’과 ‘평온한 죽음’은 서로 대조되는 것 같아도, 왠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혜림쌤 말이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모든 생명활동에 위배되는 ‘정체’와 ‘마비’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젊음이라는 구호아래, 과거는 오직 추억하기 위해 인용될 뿐입니다. 장면들마다 옛날 팝송들이 배경으로 삽입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과거는 어째서 추억으로 소환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현재적이고 즉각적인 것만을 지나치게 특권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초반에 발전소를 방문한 테오와 그의 친구가 나눴던 대화처럼 말이죠. 여러 예술품을 보유한 친구에게 테오는 묻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데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친구는 심드렁하게 대답합니다. “난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이렇게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것까지 생각하진 않으려해”)

과거는 한물 간 것, 지난 것에 불과하기에 자극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회고하거나 재현될 뿐입니다. 추억으로 소환되는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시간입니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 어떠한 해석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노스텔지어로 소비되는 과거는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지 못하는 무능”의 일환이자, 이로 인한 “포스트모던적 곤경”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는 피셔의 지적이 기억나는 대목입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pp.101-103) 한편, ‘평온한 죽음’을 광고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저에게 지난 시간에 읽었던 코스모폴리스의 어느 구절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타워들은 최후의 고층 빌딩으로 만들어졌다. 속이 비게 만들어지고,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건축된 것이다. 그러한 타워 무리는 외부 세계의 끝. 그것들은 이곳에 없다, 정확히는. 그것들은 미래에 존재하고 있다. 지리를 넘어선 시간에. 손에 닿을 수 있는 돈과 그것을 쌓아 올리고 계산하는 사람들을 넘어선 시간에.” (《코스모폴리스》, p.59) 아직 제 머릿속에 잘 정리되진 않았지만, 죽음이 권장되고 있는 영화 속 세계는 미래에 관한 상상력을 예측 가능한 단위로 재단하고, 가치의 증식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획일화하는 오늘날 금융자본주의에서의 시간관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문장을 한데 이어보면 기묘한 논리가 성립됩니다. ‘젊은 채로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우리는 한시라도 죽음을 평온히 맞이해야한다’는 명령어로 말이죠. 박제된 과거의 향수, 정체된 현재의 절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세계. <칠드런 오브 맨>은 2027년에 펼쳐질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그 세계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에 설정된 인물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집단(정부군)이나 체제에 반하는 집단(피쉬당, Fishes)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기적처럼 아이를 임신한 흑인이민자 ‘키’는 예외적인 인물이자, 종말론적 기류를 거스르는 희망으로 여겨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집단들의 욕망은 오로지 체제/조직의 목적을 위해서 작동합니다. 정부가 임신한 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 그녀를 독차지해 자국 인구만을 늘리는데 이용할 것은 뻔합니다. 그런 한편, 주인공 ‘테오’는 피쉬당원들도 그녀를 언제까지나 조직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테오는 키를 도와서, 세계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휴먼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선박, ‘미래호’(Tomorrow)가 정박하기로 한 부표로 향합니다. 휴먼 프로젝트가 정말로 실재하고 있는지는 영화 내내 모호하게 제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이나 정부군, 저항군이고 간에, 내전으로 소란스러운 도중에 멀리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이들은 홀린 듯이 테오와 키, 아이에게 길을 터줍니다. 모두가 여전히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지만, 동시에 대안(휴먼 프로젝트)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들의 선택만큼이나 익숙한 연출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만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의 저변에 깔린 속내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저는 예전에 개봉된 <칠드런 오브 맨>에 담긴 시대적 감각과 오늘날 상황을 예지한 것 같은 선취성에 감탄하면서도, 자본주의를 하나씩 공부하면서 이제는 저도 모르게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적 감각 앞에서 고민됩니다. 이 영화를 피셔의 해석에 의존하면서 감상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소회가 잠깐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장(~2.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옵니다.
발제는 건화쌤, 혜림쌤이 맡았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체 3

  • 2019-04-11 16:57
    새로움을 생성하는 'Key'가 미래를 여는 열쇠이군요.
    미래는 없고 과거를 소비하면서 사는 사람들 !! 역사적 인간들 !! 에게는 현재가 없고, 그래서 미래도 없어지고 남은 과거는 한낱 향수일 뿐이군요

  • 2019-04-11 18:46
    후기를 읽으니 이 영화 꼭 봐얄 것 같아요~^^ 토론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 2019-04-14 10:10
    남자주인공 테오가 너무 멋있었다는 게 젤 기억에 남네요,,,
    "박제된 과거의 향수, 정체된 현재의 절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세계" 란 말 멋지네요ㅎㅎ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임펙트도 강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