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9월 20일 주역과 글쓰기 후기

작성자
람이
작성일
2020-09-23 13:51
조회
110
저번 주까지 상경을 공부했다면 이제는 하경을 공부합니다. 하경은 함괘와 항괘로 시작합니다. 상경은 자연의 만상을 이야기했다면 하경은 인간 만상을 이야기합니다. 만물이 있고 그 다음에 남녀가 있으니 남녀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함과 항괘입니다.

택산함 크게 양인 간괘가 하괘에 음인 택괘가 상괘에 위치하였습니다. 주역은 재미있게도 양이 위에 위치하고 음이 아래에 위치해 있는 일반적인 자연 모습은 불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괘가 천지비괘가 있습니다. 반대인 음이 위에 위치하고 양이 아래에 위치하면 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천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음이 위에 위치하고 양이 아래에 위치한 함괘 또한 통하는 괘입니다. 택산함은 산 위에 연못이 있는 모습으로, 백두산의 천지와 한라산의 백록담과 같이 양인 큰 산이 음인 연못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택산함은 감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동을 지금의 시대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감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응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되기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affectus, 변용, 힘의 이행의 “느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힘은 어떤 것이 변용을 했을 때만이 힘이 작동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감응이라는 것은 단순히 마음과 마음이 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감응하여 상호 되기입니다. 택산함의 괘사는 형하여 이정하니 취녀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택사함에서는 정한 것은 사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사에서는 군자가 이것을 보고 자기를 비워서 남을 받아들인다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아집이 없습니다. 군자는 매번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매번 다시 질문합니다. 끊임없이 확신에 대해서 회의 하는 것이 군자의 도입니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있는 아상, 분별하는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이를 신심명은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가려서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택산함은 재밌게도 사람의 몸을 빗대어서 감응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초육은 엄지발가락의 감응입니다. 감응한다는 것은 마주침이 쌓이는 것입니다. 처음에 보자마자 감응하는 것은 감응이기 보다는 반응입니다. 감응이라는 것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교집합이 아닌 변용, 상호되기 입니다. 그런데 초육은 마주침이 시작되는 단계로 아직 감응하기에는 조금 이른 단계입니다. 그러니 천천히 경거망동하기 전에 천천히 타인과 자기가 상호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야합니다. 육이는 장딴지에 감응입니다. 장딴지에 감응이니 흉하지만, 자기자리를 지키면 길하다라고 나왔습니다. 이는 육이도 감응하기에는 마주침이 충분히 쌓아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독자적으로 너무 앞서가지 말고 천천히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구삼은 허벅지의 감응입니다. 구삼은 가면 후회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억지를 부려서 상육과 응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초육부터 구삼은 간괘로서 감응의 단계에서 있어서 초기-중기 정도 되니 순리대로 억지 부리지 말고 천천히 순리대로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구사는 동동왕래입니다. 구사는 자리가 중정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하여 종종 걸음으로 돌아다니니 친구만이 알아줄 뿐입니다. 구오는 등살의 감응입니다. 등살은 사심인 심장을 등지고 있으므로 좋아하는 자가 아닌 사람을 감동시키면 천하를 감동시키는 바름을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상육은 광대뼈와 뺨과 혀의 감응입니다. 이는 얼굴과 말빨로 감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흉합니다.

항괘는 항상 되기에 항괘입니다. 습관도 항입니다. 항은 그런 항이 아닌 선을 항상 되게 행하는 항입니다. 그래서 항이 형통 할 수 있는 것은 정정(貞正)하기 때문입니다. 항괘는 항상된 운동성을 이야기하는 괘입니다. 항괘는 때에 따라 변역함이 바로 항상하는 도이다. 항괘는 수시변혁하는 괘이다. 이런 항괘를 보고 군자는 입불역방이라고 하였다. 천지의 운동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다. 수시 변혁하는 것은 일정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항상적으로 변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정고(正固)는 흉합니다. 항의 초육은 준항이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정고하기에 흉하다. 형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한 가지만을 고집하여 힘쓰는 형국이다. 처음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구하고 바라기를 깊이 하니, 이는 떳떳함만 알고 형세를 헤아릴 줄 모름이 심한 것이다. 이 때문에 흉하다. 구이는 뉘우침이 없어지는 항상함이다. 왜냐하면 항하기 위해 최소한 중(中)에 오래하기 때문이다. 구삼은 덕을 항사하지 않으니, 부끄러움이 혹 이를 것이니, 정고하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구삼은 정고하기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역 에세이 개요 발표인데, 저는 택뢰수와 이의 도전괘인 산풍고를 엮어야 하는데, 따르는 기술과 벌레를 어떻게 엮을지 난감하지만, 완구해봐야겠지요. 다음시간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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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5 19:13
    항괘는 정고함도 마냥 좋은 게 아니며,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괘인 것 같습니다. 정고하기에 부끄러운, 습관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자신이 믿는 바를 계속 의심하는 군자의 도와도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