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3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나영
작성일
2020-10-13 00:28
조회
172
에세이 코멘트는 민호샘 후기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저는 선생님들 에세이를 읽고 느낀 소회를 남겨볼까 합니다.

우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대 편안하라>는 제목의 난희샘 에세이를 보고, 난희샘은 제목학원에 다니셨나 싶었어요. 전에 <너 자신의 폐허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난희샘 에세이를 읽은 적 있는데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제목만 봤는데 어떤 글인지 궁금해지는 겁니다. 저는 난희샘이 어떤 글을 써 오실지 매주 기다려집니다. 10주차 에세이 발표 때는 더더욱이요. 샘의 마지막 학기 에세이 발표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기쁘고요, 단톡방에 올려주신 난희샘다운 문제제기 방식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샘이 이렇게까지 니체를 어려워하시는 줄 몰랐는데요. (죄송하지만) 그게 또 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더라고요. 난희샘한테도 이렇게 어려운데, 나에게 어려운 것은 너무 당연하구나 싶어서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답니다. 그쵸. 어렵죠. 철학도 어렵고 니체도 어렵고. 근데 확실히 이 어려움에서 나오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는 거의 느낄 수 없고 아주 가끔 뭐가 지나갔나 싶게 느껴서 문제지만요. 아무튼 4학기에는 한층 더 가벼워진 샘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에피소드 여왕 율샘의 <잘 살고 있다는 거짓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잘 살고 계신 것 같았는데요. 제목이 이러니깐 완전 뻥쟁이 같잖아요. 자신의 에피소드를 가져와서 니체의 문제의식과 엮어내는 율샘의 글은 늘 흥미진진합니다. 그냥 재미만 있어서가 아니라 솔직함과 용기까지 더해져서요. 이제 에피소드도 바닥났다고 하셔서 저를 잠시 절망케 하셨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요. “내가 나를 가장 먼저 소외시키는 일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에세이 마지막 단락의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율샘을 소외시키지 않는 공부와 글쓰기, 계속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제 등산은 일요일에만 가시고 토요일은 꼭 연구실에 나오세요. 매번 달콤새콤한 호두강정 챙겨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호두강정 덕분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

민호샘은 <우상화의 메커니즘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온통 원한 타령으로 채우셨어요. 저는 민호샘이 존재 자체로 감동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요. 민호샘이 삐지거나 원한을 갖는 것도 충분히 이해돼요. 솔직히 이 정도 마음씀씀이면 삐지더라도 주변에서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계속 원한을 가져온 글을 읽게 되어 그러지 마시라고,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에세이 발표 때 전하고 싶었는데 저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나 모르겠네요. 민호샘의 감동은 에세이 준비 때 특히 진가를 발휘합니다. 귀한 경험을 하실 다음 학기 조원분들 미리 축하드려요. 결론으로 니체가 말하는 ‘예술가의 이상화’에 대해 쓰셨는데, 사실 저도 이거를 결론으로 가져올까 하다가 이해하기 어려워 못 썼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화의 메커니즘과 다른 예술가의 이상화로 마무리를 한 것에 대해 은옥샘이 특히 짱짱!!이었다고 하십니다요. 저는 지금 느끼는 감정 뒤에 어떤 행위가 오는가, 우상이 주는 기쁨이 다음 순간의 기쁨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질문과 “우상화의 기쁨이 결여하고 있는 두 번째 기쁨이다”라는 해석이 인상적이었어요. 민호샘도 지금의  원한 감정이 다음 순간에 어떤 행위를 가져오는지 잘 관찰해보시고, 지금의 감정을 뒷문이자 샛길로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 전합니다.

<가치의 오류> 은옥샘은 부자에 대한 우상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시면서 정주영과 간디를 비교하셨어요. 저는 이 둘의 비교가 너무 신박하다고 생각해서 공통점이 뭐가 있나 싶어 네이버에 검색해봤잖아요. 2006년에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 영웅’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더라고요. 이어지는 끈이 있기는 있네요. 영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은옥샘은 이번 에세이는 개념을 훅 건너뛰고 쓴 글이라는 코멘트를 받았는데 저번 학기 에세이는 저에게는 정말 잘 읽히고 좋았거든요. 글이 매번 리드미컬해서 이번에는 어떤 글일까 기다려지는 점이 있어요. 계속 침체기인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지난 학기에 은옥샘 글에 감동받아서 몇 번 좋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분 너어어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호프를 쏘셨어요. 스승님의 칭찬도 아닌 도반의 칭찬에도 그리 기뻐하시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이제서야 후기로 전합니다.

내영샘은 <분별로 인한 아상>을 쓰셨어요. 내영샘 보면서 뭔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만화를 많이 보고 그렸다는 글 보고 이해가 되었어요. “종이, 연필, 지우개만 있으면 어디서든 상상하는 것,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냈다”고 하셨는데 이거 진짜 엄청난 재주 아닌가요? 전에 슈퍼마리오에 나오는 쿠파왕 캐릭터 그리는 것 보고 우와~ 했었는데. 내영샘은 숨은 재주가 많은 것 같아요. 그걸 좀 드러내면 좋겠고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영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을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일에 연구실에 와서 하는 소통 말고 토요일에 니체 세미나에서의 적극적인 소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보, 백치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쓰신 현주샘. 저도 비슷한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는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서구의 경제력이며 도덕의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요. 유럽에 있는 한국 사람들 다 귀국하고 싶어하던데 코로나 관련된 뉴스 보면서 어떠셨는지 문득 궁금하고요. 샘이 에세이 마지막에 “나의 관념을 몰락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진보다”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기존의 관념을 몰락시키실지 궁금합니다. 이게 진짜 어렵잖아요. 현주샘은 정아샘 카톡 프로필 보면서 단정하다며 성향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저는 현주샘 걸음걸이, 앉아있는 자세에서도 성향이 보이던걸요? 왠지 산책도 시간 맞춰서 하실 것 같아요. ‘여자 칸트’가 있다면 현주샘이 아닐까? 이런 느낌적 느낌.

경희샘이 <싸움에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이행>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비장함이 넘쳐서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셨나 떨리는 가슴으로 읽었는데, 이것은 너무나 점잖은 슨생님들의 업무협의였던 것입니다. 점잖은, 너무나 점잖은 싸움. 경희샘 글 내용과는 다르지만 문득 니체가 말하는 싸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에 경희샘께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학창 시절 좋은 선생님들을 정말 많이 만난 경험 덕분에 아직도 공교육에서만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희샘의 이런저런 고민이 담겨 있는 글을 볼 때마다 우와 이렇게 고민하는 선생님이 있다니 싶어 뭉클해지기도 해요. 세미나 끝나고 새벽 네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곤하다는 말이 쏙 들어갔답니다. 늘 멀리서 생각할 거리 한아름 들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승연샘의 <일상의 삶이 공부다>를 읽으면서 직장인 신분으로 글쓰기를 하나의 도주선으로 만들었던 카프카가 계속 떠올랐어요. 하지만 우리는 자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나 분위기도 공부하는 곳과 같기를 바라게 되죠. 카프카처럼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나만의 도주선은 분명 필요하다고 봅니다. 승연샘 직장 특성상 연구실에서 나누는 이야기와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으니, 직장에서의 대화는 겉돈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만도 않거든요. 승연샘 따라 세미나 참여하셨던 분들 보면 승연샘이 공부로 느끼는 기쁨과 그 밖의 긍정적인 기운들이 충분히 전달되고 직장에서도 충분히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직장 상사와 주말 세미나를 함께 한다? 이거는 진짜 어마무시하게 힘든 일이거든요. 제가 저의 직장 상사에게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니체 아니라 니체 할아버지여도 거절했을 거예요. 이런 점이 승연샘만의 힘이라고 저는 매번 느껴요. 그리고 직장 윤리에 대한 글을 쓰실 때마다 저는 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 이런 팀장님과 같은 팀에서 일하면 진짜 일할 맛 나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큰 프로젝트 하나 같이 하면 진짜 신날 것 같아요. 근데 끝나면 같이 쓰러지고...

<흥분에서 기쁨으로:강렬함이라는 우상을 넘어서>를 쓰신 건화샘은 또 온통 무기력 타령을 하셨지요. 2년 가까이의 침체기+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구구절절 고백하시다니, 이 무슨 팬들 가슴 찢어지는 소리를? 제가 건화샘을 봐온 모든 시간이 침체기였음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답니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는 구상 시인의 시구를 전해드립니다. 공부와 연구실 생활에 대한 건화샘의 욕망이 달라지고 있다니, 어떤 비전을 가지고 가실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동안의 공부는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 등등의 외부 힘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니, 외부 조건 없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기에 부디 정진하시고, 저는 그럼 침체기 없는 응원, 끊김 없는 응원을 약속하겠습니다.

인영샘은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낭만적인 제목의 에세이를 쓰셨어요. 인영샘의 글은 저에게 물기 많은 수채화 같은 느낌이에요. 흐릿한데 또 뭔가 보이기도 하는. 인영샘이 사고의 과정을  하나하나 쓰시진 않았지만, 저는 그간 나눈 대화와 함께 한 시간이 배경이 되어서 글이 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게 대화를 할 때에는 진짜 이해가 쏙쏙 되는데, 글에 그걸 다 싣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다음번에는 더 꼼꼼한 변론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미 사랑은 차고 넘치시는 것 같고 이미 실천적 사랑도 뿜어내고 계신 것 같은데. 조시마 장로는 대체 왜 이렇게 인영샘 어깨에 짐을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인영샘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도 열심히 공부 중인데 앞으로 더 많은 생색을 낼 수 있도록 다들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나 스스로 모델이 되는 삶>이라는 글을 썼어요. 공부하기 전까지 써왔던 매끄러운 글을 에세이 인트로로 썼습니다. 혹시 매끄러운 글을 썼을 때의 코멘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코멘트 두려우면 죽어야져ㅠ 이 험한 세상 그게 두려우면 어찌 살겠어요. 저는 제가 논리 없는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논리가 없는 게 아니라 계속 같은 논리 아니냐는 건화샘 코멘트에 아,,그랬구나... 논리가 없는 게 아니었구나..있긴 있는데 계속 똑같았구나...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라도 있으니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빵과 영예를 제공해온 생존 조건이었기 때문에 옳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게 저한테는 니체 만능 치트키였는데 이번에 지적을 받아서 더는 써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치트키 몇 개 더 있으니 갈아타야겠네요.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겠냐는 니체의 질문에 답을 더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파도, 새로운 중심 잡기>로 반듯함과 매끈함을 문제삼은 정아샘의 에세이는 이번에도 따라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글이었어요. 감정이 늘 흘러넘치는 인영샘과 저는 정아샘의 단호함도 부러웠고요. 자연적인 삶의 방식을 설명하시면서 니체가 삶, 생명, 생성, 운동, 관계, 차이, 전체 이런 단어를 자연과 동의어로 사용한다는 설명하신 글을 읽으니 이해가 쏙쏙. 팀 잉골드 강연에서 “모든 존재가 구름과도 같다”를 나무, 사람, 균류 등을 예로 들며 들며 “사람도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일 뿐이다”라고 쓰신 것도 이해가 쏙쏙. 정아샘 글은 왜 이렇게 이해가 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풀어지고 푼수가 될 필요가 있다는 코멘트를 받으셨는데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인영샘과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이쪽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유튜브 중독에서 발견한 안정된 삶이라는 우상>을 쓰신 희진샘. 유튜브 중독도 아니고 사실 알고 보니 예능을 좋아하는 것뿐이었던 희진샘. 황치열과 쏘니를 좋아하는 희진샘. 요즘 우리 쏘니 힘든 시기 보내고 있으니 응원 많이 해주시고요. 희진샘 매번 무기력하고 피곤하다고 하시지만 네트워킹을 위한 모임, 등산, 농촌 일손 돕기 등등 누구보다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것 같아요. 이러고도 청소와 설거지 안 귀찮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요? 희진샘 글 읽으면서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냥 모든 인간은 징징거리고 생색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나이나 사회적 지위를 떠나 여기서 개개인만의 귀여움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에세이 발표도 우리는 막 엄청 진지하게 써왔지만 까놓고 보면 징징거림과 생색내고픈 마음, 모순 투성이에 앞뒤 하나도 안 맞고 근데 나름 논리는 있어서 뭐라뭐라 설명을 한단 말이죠.  욕먹고 울고 때려친다 어쩐다 그러다가도 꾸역꾸역 다시 나와서 공부하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에세이 발표는 숨겨두었던 각자의 귀여움을 발산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걸 귀여움 말고는 뭐라고 설명할지 저는 모르겠더라고요.

이번 에세이 발표를 통해 각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찾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왜’를 찾으면 ‘어떻게’는 어렵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함께 공부하는 이 시간이 우리의 ‘어떻게’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설샘과 고은샘은 다음 학기에는 꼭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2

  • 2020-10-13 12:17
    마지막까지 에세이를 완성하신 우리 샘들! 모두 고생하셨어요. 에세이는 안썼는데 제가 왜 이렇게 뿌듯한가요. 나영샘 후기만 읽어도 모두 한 발짝씩 성큼 내딛으신 것같이 느껴집니다. 거기서는 또 이 가을 광경이 좀 달리 보이겠죠? 제자리 보전하느라 머물러 있는 설이지만 마음은 규문에 가 있네요. 얼른 정리하고 합류할께요.

  • 2020-10-14 09:30
    나영샘~ 애정이 담뿍 담긴 깨알같은 후기 감사합니다ㅋㅋㅋ
    "에세이 발표는 숨겨두었던 각자의 귀여움을 발산하는 시간"이라니 역시 상상을 초월하시는군요....
    후기를 읽으며 에세이 발표에서 귀여움을 발견하시는 샘의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