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2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현정
작성일
2020-07-17 21:35
조회
118
한 도반의 말처럼 에세이 발표 자리는 마치 축제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저는 이제 에세이 발표 자리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글에 만족스럽든 후회스럽든 그만큼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글들을 읽고 들으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를 넓혀갑니다. 그러니 이 시간이 어찌 소중하고 감사하며 기쁘지 아니 하겠습니까.^^ 에세이 발표 자리만 되면 없던 힘도 생기시며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생기와 체력이 더 회복되시는 우리 샘^^과 치열한 울 도반들 덕분에 많이 웃고 즐거웠습니다. 의리를 과시하며 자리를 함께 해준 두 명의 스페셜 게스트(정옥샘, 선영샘)들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보냅니다.^^

이번 학기는 스피노자의 화신 마트롱을 통해 정념과 이성에 대한 한층 풍부한 이해에 접근해 나갔던 시간이자 개체와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정념과 정치’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각자 자신의 정념을 마주하고 분석하며 공동체 내에서 그것의 작동방식, 문제지점, 역량의 변이, 이런 것들을 글로 풀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에세이를 쓰고 코멘트들을 교환하고 나면, 자신이 여전히 어디에서 주춤하고 있는지, 뭘 더 보려고 하지 않는지, 어디는 덜고 어디는 더 자세하게 썼어야 했는지, 감은 잡았지만 선명해지지 않던 부분들, 쓰면서도 어렴풋하게 느꼈던 지점들 등, 미처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이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글쓰기야말로 실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싫증나지 않고 매번 마~치 처음 만나는 그대처럼^^ 새롭고 낯선 게 또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수만 개의 새로움을 가지고 저에게 다가오는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정념, 아! 정념이여~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정념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일은 역시나 지난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대면해보려고,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용을 쓴 글도 있고, 매학기 변용 역량의 증대를 보여주며 모두를 기쁘게 한 글도 있으며, 죽자 사자 자신의 두려움을 회피해서 우리를 슬프게 한 글도 있지만, 그렇게 다들 다른 듯 비슷한 마음으로 자신과 마주한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스피노자주의자가 되기 위해, 즉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이 지난한 과정, 드물고 어렵기에 고귀한 이 길을 왜 계속 걸어가야 하는지 또는 왜 안 걸어가려고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새기는 시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길에 스승님과 도반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큰 힘을 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입니다.

제가 좀 극화되게 쓴 점이 있지만 우리 토론 자리가 그렇게 전쟁터는 아닙니다.^^ 우정과 신뢰가 흐릅니다. 따뜻하지만 냉철하게,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그러나 샘 말씀처럼 티벳 불교의 박사과정 시험인 게쉐에서 행해지는 토론의 자리처럼 되려면 많은 실험과 훈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득 그런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말에 끄달리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는 맥락 속에서 자기의 공부가 얼마나 충분히 녹아들어 가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있는가에 주목하는 그런 자리가 된다면, 그런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명철하게 지적해준 상대방에게 진정어린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배움의 향연일까요. 인식하려는 욕망과 인식시키려는 욕망으로 가득차서 웃음이 흘러 넘치는~ 그런 이성의 장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정념에 휩싸이는 그런 형태의 토론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분석으로 서로를 단련시키는 그런 과정으로서의 토론, 정념이 발생하겠지만 거기에 종속되지 않고 다르게 겪을 수 있는 역량으로 변이되는 신체의 장, 그런 토론을 절탁S에서 부단히 실험해 나가야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윤리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공통의 비전을 공유한다면 이 문제도 어렵지 않게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전을 구체적으로 논해본 적은 없지만 이미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공부라는 공통의 지반, 스피노자주의적 삶에 대한 지향,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 이러한 유사성으로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에서 적합한 관념으로 이행해가는 공통관념의 형성과정을 부단히 실험해갑니다. 공동체 안에서 공통관념의 연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관념과 정념으로부터 솔직하게 출발할 수 있느냐,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내면의 밑바닥까지 얼마만큼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논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해 나가는 것도 서로에게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느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자신만의 뉘앙스를 불어넣는 일은 아직까지는 요원하지만, 기존의 정치를 완전히 다르게 사유하는 데 이르는 것이 우리가 이번 학기 내내 고민해왔던 지점이며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야 할 과제입니다. 공부하는 자로서 어떻게 우리의 공부를 정치적 실천으로 만들 것인가? 공부는 왜 정치적 실천인가? 지금의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왜 공부일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을 더 깊고 풍부하게 풀어가는 것이 저에게도 남겨진 숙제입니다.

스피노자에게서 느껴지는 숭고함 겸허함, 자신의 철학적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종교성, 그것이야말로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신에 대한 인식 속에서 사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존조건 속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가, 이 문제가 영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 시대 가장 영적인 것은 철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수샘이 제기해주신 ‘정치와 영성’의 문제는 우리가 정치를 다시 사유하는 데 귀한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철학자의 기질은 어디까지 발현될 수 있을까? 철학자의 기질은 이성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기질은 무엇일까? 혹시 정념^^ 그러나 모두에게 더군다나 스피노자 철학을 사유해가는 우리에게는 철학자의 기질이 내재해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얼마나 모색하고 실험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발현하는 양상들이 달라지겠지요. ‘지성을 따르는 질서에 의거하여 신체 변용을 질서 짓고 연쇄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하는 자의 지성적인 삶이 영적인 삶과 다를 리 없다고 생각됩니다.

에세이 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저는 여전히 능동적 개입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 하면 저의 말이 도반들의 마음에 순연하게 가닿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리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위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실천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방식과 태도로 드러날지는 해봐야 알 것 같지만, 그런 시도가 저의 변용 역량의 증대이자 공동체 역량의 증대임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모색해갈 생각입니다. 〇〇되기 동참해주실 거죠 同志들~

너무나 이른 시간에 끝나서~ 환한 낮에 에세이가 끝나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러므로 더 많아진 뒷풀이 시간을 여유있게 즐기면서 전우애를 다졌습니다.^^ 이런 우정의 연대가 궁금하지 않으실까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절탁S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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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8 11:47
    현정샘의 후기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신이다'를 느낄 수 있는 절탁S로 go~ go~의 외침이 들립니다.^^ 저는 스피노자를 함께 배우고 말하고 쓰고 나누고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새삼 에세이 발표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3학기에는스피노자주의를 들뢰즈와 맹자를 기쁘게 탐구하며 실천해 봅시다.

  • 2020-07-18 15:57
    ㅋㅋㅋ 능동적 개입자를 응원합니다! 확실히 절탁S 선생님들 덕분에 에세이를 즐기게 됐습니다. 쓰는 과정까지 '즐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평소 토론하는 시간, 에세이를 발표하는 자리들 모두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