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2학기 에세이 발표 현장(+3학기 첫 시간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7-20 13:48
조회
159
어느새 2학기도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도 선생님들 덕분에 재미나게 글을 쓰고, 발표하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글은 길을 한~창 잘못 들었지만요. ^^;; 덕분에 다음 학기에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소감 정도만 정리해볼게요.

에세이 발표는 공부의 규율을 정하는 자리

‘공부’를 주제로 현정쌤, 윤순쌤, 정수쌤이 글을 쓰셨는데요. 그 중 현정쌤과 윤순쌤의 글은 우리가 함께 공부하는 데 있어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현정쌤은 ‘우리’의 공부를 위해 기꺼이 보살행으로서의 불편한 개입을 시도하겠다고 하셨고, 윤순쌤은 같은 의미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죠.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사실 정해져있진 않죠. 하지만 쌤들의 글을 읽으면서 앞으로 우리의 토론 분위기는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 저는 어떻게 참여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같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합니다. 같이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를 가지고 공통관념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분히 화목한 분위기에 많이 의존했던 것 같아요.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열띠게 토론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규율의 부재 속에서 알게 모르게 불편함이 커지고 있었더군요. 봉선쌤과 현정쌤 사이의 오해가 그랬던 것 같아요. 봉선쌤은 현정쌤이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미리 대화를 차단하셨고, 현정쌤은 그런 봉선쌤이 더 답답해서 계속 개입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공부해나갈지에 대한 규율의 부재가 이런 불편함을 만든 것 같아요.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현정쌤이 후기에 쓰셨듯 스피노자 토론은 매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됩니다. ㅎㅎ 개입한다, 거리를 지킨다, 격려한다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이건 모두 서로에게 어떤 도반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입니다. 이번 에세이 발표 때의 고민들은 우리가 함께 공부하기 위한 규율들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규율을 만든다는 게 ‘이렇게 합시다!’와 같이 성문법을 작성하는 건 아닙니다. 서로가 어떤 태도로 공부하겠다는 것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규율이 세워집니다. 규율은 우리가 정념에 예속되지 않도록 보조해줍니다.

채운쌤은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이 부처가 되는 여정의 기쁨을 압도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셨죠. 함께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복종하는 것은 그만큼 어떤 삶을 살겠다는 확고한 비전[志]을 반증합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물리적으로 같이 있는 게 아니라 왜 더 큰 역량을 구성하는 일인지, 반대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삶인지 알 것 같습니다.

에세이 발표 막바지에 현정쌤은 봉선쌤을 위해 보살행을 기꺼이 행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이러한 과정에서 저희의 토론역량이 길러지는 거겠죠? 정념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 멀리 있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토론은 질문을 구체화하는 기회

이번에 성(性)에 대해 에세이를 쓰면서 ‘갑자기?’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성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다가 갑자기 성을 가지고 글을 쓰니 뜬금없긴 하더군요. ㅋㅋ 선생님들도 제가 그동안 얘기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나오니 해주실 수 있는 말들도 한정적이었던 것 같고요. 함께 공부했던 주제를 가지고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했는데, 뭔가 ‘이건 얘기할 만하다!’ 싶은 주제를 선정해서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도 욕심이 앞섰네요.

저는 아직 주제를 선정해서 공부하고, 구체화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저에게 있어서 토론 은 단순히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토론시간 때 정리해간 주제들은 성의 없었던 게 아닌가... ㅠㅜ 지나고나니 후회됩니다.

이번 에세이 발표는 여러모로 저의 미숙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구체화하는 등 아직도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나눌 수 있는지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토론하는 과정이 매우 귀중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에세이 때 잘 나누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제 고민을 잘 나누고 무르익게 해야 하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의 없이 준비한 만큼 제 스스로 에세이를 망친 게 아닌가 합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보살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특별 함께해주신 선영쌤과 정옥쌤께 감사드립니다~ 선영쌤은 8월에 다시 먼 곳으로 건너가시지만, 정옥쌤은 3학기부터 같이 합류해주시기로 했어요. 또 다른 토론장의 형성을 기대합니다. ^^

다음 학기 간단하게 공지할게요. 이제 《맹자》와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를 읽을 건데요. 일단 맹자를 들어가기 전에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 〈공자에서 맹자까지: 하늘의 품수로서의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도덕성〉, 슈워츠의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 〈유가 신념의 수호〉를 읽으면서 감을 잡을 거고요. 그리고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는 〈서론: 표현의 역할과 중요성〉을 읽으시면 됩니다. 간단하게 나누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 오시면 됩니다. 2주차부터는 따로 주제별 과제가 나갈 거라고 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오랜만에 실력발휘하시는 선영쌤. 정념에 다시 사로잡히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던데... 그럴 때는 스피노자를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요~!

5f151c07473fb1069831.jpg5f151c0744c643231822.jpg

발표하면서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경청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고민, 사소한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웃게 되고, 공부에서의 규율, 보다 적극적으로 토론하기 위한 고민을 푸는 과정에서는 진지해집니다. 저한테는 이 과정들이 모두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연습이자 실천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에세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밥을 먹고 다시 에세이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간식이 어마어마합니다. ㅎㅎ 저 밑에 풀리지 않는 김밥들도 보이시죠? 20명에서 출발한 절차탁마 수요일반이 7명 절차탁마S반이 되기까지 간식의 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공부하는 만큼 먹었습니다. ^^



밥을 먹고는 다시 에세이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영님쌤이 '다른 분들도 전부 이해하지 못했고, 꼭 텍스트와 관련된 말만 하지 않는다. 아무 말 대잔치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확실히 저희 모두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끔(혹은 자주?) 아무 말을 던지긴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또 이해되는 게 하나둘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념과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게 인간이지만, 고귀한 삶을 사는 과정이 생각보다 할 만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다음 학기에도 아무 말 대잔치를 이어 가보죠. ㅋㅋㅋ



한 학기 동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한 주 쉬시고 다음 주 수요일에 뵐게요!
전체 2

  • 2020-07-20 20:44
    제 '보살'이라는 어휘사용을 '보살행'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 울 규창샘~ 감히 보살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능동적 개입에 대한 고민은 진행형 ㅎㅎ
    스스로 미숙하다고 말하지만 날로 날로 깊어지는 규창샘의 모습에 기쁨을 금할 수 없답니다. 성실한 반장님 고맙습니다.~^^

  • 2020-07-23 18:30
    서로에 대한 '애정'어린 고민이 오가던 에세이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자신의 문제를 통해 서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또 그 문제의 마디를 넘어갔는지 함께 점검해주는, 애정이 없다면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관계, 공부하는 자세를 새삼 배울 수 있었어요.
    훨씬 깊어진 선생님들과 남은 학기를 같이하다니.... 그저 성실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