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8월 5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8-01 16:32
조회
81
매번 실감하지만, 시간이 참 빨리 가네요. ㅋㅋ 어느새 3학기가 시작됐어요. 그리고 3학기 시작과 함께 노명순 선생님과 이진선 선생님이 함께하게 됐습니다. 두 분이 함께하시면서 또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질지 기대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다음 주 공지부터 하겠습니다. 과제는 〈양혜왕〉편을 읽고 인정(仁政)에 대해 쓰시면 됩니다. 들뢰즈의 책은 1부 2장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정옥쌤께 부탁드릴게요~

 

존재가 실존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됩니다. 처음 스피노자를 배울 때는 ‘그래. 신과 양태의 관계를 이해하는 게 출발점이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실존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신, 속성, 무한과 유한, 영원과 지속, 본성, 자유와 예속 등등이 요청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종 인식과 지복(至福)도 다른 게 아니라 결국 지금 내가 여기서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죠.

존재를 운동으로부터 사유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선험적 주체와 세계 혹은 초월적 신을 설정하게 됩니다. 도덕적 선악은 이러한 무지로부터 발생합니다. 이번에 《에티카》 4부 정의3과 정의4가 말하는 ‘우연적인 것들’, ‘가능한 것들’이란 개념은 세계가 운동하는 법칙을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이었죠. 마치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일어나게 됐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봉선쌤이 말씀하셨듯이, 이렇게 사고하는 습관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계속 억울함을 느끼고 누군가를 원망하게 됩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유의 출발점으로서의 의식을 상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의식은 원인들과 법칙들의 질서, 관계들과 그것들의 결합의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의식은 그것들의 결과를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기 때문에, 의식은 자연 전체를 잘못 인식”합니다(40). 그러나 의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한양태로서의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정념의 예속을 겪습니다(E4:4). 동시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에서, 만남들을 조직하고, 자신의 본성과 맞는 것과 통일을 이루며, 결합 가능한 관계들을 자신의 관계와 결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39). 선과 악으로 심판될 수 있는 도덕적 세계가 아니라 좋음과 나쁨으로 느껴지는 윤리적 실천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우리가 악의 범주에 집어넣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소화불량을 가리킨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불행한 자들은 우연하게 나쁜 사건들만을 겪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운에 의존하여 우연한 만남들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만, 운명을 불행하지 않게 구성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생활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운명 그 자체입니다. 20대에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하여 정부를 세웠을 때 짊어진 중압감이 어떠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채운쌤은 달라이 라마가 《입중론》을 비롯한 경전들을 어려서부터 암송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죠. 이런 걸 보면 불행한 세계, 행복한 세계가 어디에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체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이 좋은 날이길 바라는 삶’에서 ‘매일이 좋은 날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카자와 신이치의 《녹색자본론》이란 글이 떠올랐습니다. 그 글에서 신이치는 “‘매일이 크리스마스’야말로 자본주의의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무한정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동력은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입니다. 스피노자 식으로 얘기하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슬픔을 느끼게 만듭니다. 반면에 운문스님도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좋음으로 설정했지만, 운문스님이 얘기하시는 ‘좋은 날’이란 그 자체로의 그날그날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이 듣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입중론》을 외워서 신체에 새겼듯이, 우리의 신체를 변형할 수 있는 만남들을 구성해야 합니다. 신이치는 자본주의의 크리스마스와 대비되게 이슬람의 라마단을 소개했는데, 그것은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을 변형시키는 집단적 수행입니다. 공부는 절대로 혼자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실감하게 됩니다. 같이 여러 경전들을 읽고 외워보죠!



이번에 합류하신 (첫 번째 사진) 노명순 선생님과 (두 번째 사진) 이진성 선생님입니다. 게다가 작년에 스피노자 함께 공부하신 정옥쌤도 돌아오셨네요.



사진으로 보니 확실히 늘어난 부피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만큼 더 밀도 있는 공부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이번 학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전체 1

  • 2020-08-04 20:47
    저도 달라이 라마가 《입중론》을 외워 신체에 새겼던 것이 어려움을 넘게하는 힘이 되었다는 말씀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원칙을 몸에 새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삶을 구성하는 힘이 되는지 말이죠. 그래서 맹자도 선과 불선만 있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으로 읽히네요.
    새로 들어간 수업은 정수샘의 친절한 윤리학 풀이시간도 좋았고, 토론 시간도 좋았고, 새로 오신 선생님들도 좋았고, 뒷풀이 시간도 좋았고.....좋았고! ....좋았고ㅎ 기쁨을 주는 스피노자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