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4.4 절차탁마 M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3-31 17:28
조회
379
신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신이 지나갔다'고 이야기 했죠. 똑바로 날아오는 화살이 나를 지나친 것도, 평평한 땅에서 느닷없이 넘어진 것도, 어제까지만 해도 싫어 죽겠는 사람이 갑자기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모두 신이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신화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폴 벤느는 신화와 마찬가지로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해독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진실 프로그램'이라고 말했고요.
푸코는 역사란 근대의 인간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이상한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역사는 시간이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상정하고는, 그 깊이를 인간이 시간 밖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데 역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성립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을 벗어날 수 없는데 그걸 초월한 위치에서 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인간학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역사와 정신분석학, 그리고 생물학입니다.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성립된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차라리 인간의 일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마찬가지로 자신이 해석할 수 없는 층위의 신으로 환원하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더 이해가 잘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푸코에 의하면 이러한 '인간학'으로서의 역사는 19세기 말 근대에 성립된 것입니다. 그 이전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근대의 역사와 다른 것입니다. 우선 투퀴디데스의 역사에는 전체적인 틀이 전제되지 않습니다. 8권에 걸쳐 두꺼운 <전쟁사>를 저술했지만 우리는 그가 어떤 통일적인 틀을 가지고 역사를 썼는지 확실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전체적인 틀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한다는 의식은 투퀴디데스에게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그의 낯선 역사를 보고 우리의 역사 개념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사건이 아니라 무수한 연설들입니다. 그 전쟁에 앞서 무수한 사람들이 벌이는 논쟁들, 그 말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로고스로 전투를 평가하는가? 이것을 투퀴디데스는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공을 들여 생생하게 전합니다. 누구도 그 현장을 빠져나와서 말하지 않으며 누구도 초월적 지위를 갖지 않고 각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그 현재적 관점, 현장성은 지금 우리가 보는 역사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사후적으로, 초월적으로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사건의 논리구조가 만들어지는지부터 다루는 것이 투퀴디데스의 역사인 것 같으니까요.
투퀴디데스는 그 전투에 앞서 그렇게 온갖 말이 오가는 것을 전하고 그 다음 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앞에서 그렇게 각축전을 벌였던 논리대로 따라가 주지 않습니다. 투퀴디데스의 역사를 보면서 당황하는 지점 중 하나. 투퀴디데스는 인간사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인과로 서술이 불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정교한 로고스로 사건을 본다고 한들 거기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지점, 우연(티케, 운)이 개입하니까요. 만약 신화의 시대라면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모든 우연적인 것도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 설명할 테니까요. 하지만 투퀴디데스 역사의 인과는 이 우연이 중요하게 드러납니다.
그리스에서는 말과 생각(로고스)를 펼쳐낼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움직여 나를 따르게 하는 설득의 기술이 정치의 전부였지요. 그 설득의 과정에서 가치들이 충돌하는데, 투퀴디데스를 읽다보면 정치가들은 자신이 어떤 가치를 따르는지 확실히 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어떻게 설득해야 하느냐에 따라 내세우는 가치도 달라지지요. 크게 세 가지 충돌지점이 있는데, 노모스(질서)와 퓌지스(본성), 디케(정의)와 이익, 그리고 티케(운)와 그노메(앎)입니다. 우리는 이 로고스들의 충돌지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중요한 국면마다 보이는 티케의 동사형, '마침', '우연히', '그때가' 와 같은 표현들을 보면서 투퀴디데스가 인간사를 굴리는 동력을 뭐라고 파악하는지, 그리고 아테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게 되겠지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의 패배는 '징벌(네메시스)'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은 힘이 강해지면 오만해지는데, 그때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걸 두고 고대인들은 '미망의 신(아테)이 지나갔다'고 말하겠지요. 그리고 재밌게도 미망에 빠진 자는 늘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문제는 더 커집니다. 투퀴디데스도 이런 고대 그리스인의 인식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노메, 인간은 자신의 앎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는 인간의 로고스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속적인 역사에 대해서도 점검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선적인 역사, 인과관계에 의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역사적 인식을 통해 투퀴디데스가 쓴 운이 개입하는 역사, 그래서 인간의 로고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단절의 순간이 늘 있는 역사를 보게 되면 우리의 역사는 매우 낯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낯섦을 구체화해서 주제로 만드는 것이 에세이를 쓰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음 시간 과제
-베르낭 책 4장 읽어옵니다. 발제는 1챕터 윤몽언니 2챕터 정옥쌤, 3챕터 윤순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8권 읽어옵니다.

간식은 누구였는지 안 정했던 것 같아요;; 댓글로 달겠습니다~
전체 2

  • 2017-04-01 19:36
    간식은 윤순샘께 부탁드렸지요^^ 모두 에세이 발표까지 화이팅입니다. 계속해서 메일 등등 보내주시어요~

  • 2017-04-01 20:29
    낯섦을 구체화해서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 첫 발자국이 왜이리 무거운가요...... 진전이 없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