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불투명성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암흑의 패거리나 부패, 뒷거래 같은 것을 떠올렸다면 이 말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 그러나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영국 작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가 <적발되는 것에 관하여>(1861)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불법을 저지른 모든 사람이 적발되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떠올려 보라. 학교에서 자잘한 잘못들까지 모두 적발되어 호되게 매를 맞는 아이들을 떠올려 보라. (…) 전 군의 잘못이 적발되는 바람에 그 책임으로 쇠사슬에 묶인 총사령관을 상상해보라. 어떤 성직자가 자신의 ‘과오’를 털어놓으면 우리는 주교를 붙잡아 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만일 주교의 죄가 밝혀지면 그를 임명한 고위 성직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우리가 저지른 과오가 모두 적발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반복하자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것에 대해 처벌받는 것을 반대한다.” (…)
우리는 아직 남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것을 아는 건 GAFA 같은 기업들뿐이다.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공동생활에는 한없이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아는 타인의 행동 패턴은 남이 아는 우리의 행동 패턴만큼 불완전하고, 그게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각자가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해 모두 알게 될 경우, 우리 사회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 완벽하게 투명한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탈적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
우리는 사회적 삶이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원리하에서야 잘 살 수 있다. 이 불확정성은 결국 우리가 규범 시스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의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의에 기여한다. 규범은 모든 것을 밝히는 강력한 조명을 견디지 못한다. 거기에는 무언가 어스름한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실제 삶은 항상 여러 규범 사이에서 결정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지킨 규범을 다른 누군가는 지키기 않을 수도 있기 떄문이다. 이 상황을 우리는 견뎌내야 한다. 바보들만 내적 갈등이 없다.
-<사냥꾼, 목동,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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