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사실 삶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행위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바, 사람들 사이에 최고선으로 평가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추려진다. 부, 명예, 정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로 인해 정신은 다른 어떤 선도 전혀 사유할 수 없을 만큼 흐트러진다.
사실 정욕으로 말하자면, 마음은 마치 어떤 善 안에 안식하고 있는 양 거기에 매달리게 되어, 가히 다른 어떤 것도 사유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그러나 정욕을 채우고 난 후에는 최고의 슬픔이 뒤따르며, 이 슬픔은 정신을 멈추게 하진 않더라도 교란하고 얼빠지게 한다. 정신은 또한 명성과 부의 추구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흐트러진다. 특히 부가 오직 그 자체로 추구될 때 그러한데, 그 경우에 그것이 최고선이라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은 명예로 인해 훨씬 더 많이 흐트러진다. 왜냐하면 명예는 그 자체로 좋은 것, 그리고 만사의 궁극 목적으로 가정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것들에서는 정욕에서와 같은 후회가 없고, 두 경우 모두 더 많이 소유할수록 기쁨은 더 늘어나며, 그 결과 우리는 이것들을 늘리도록 더욱 더 추동된다. 하지만 어쩌다가 희망이 꺾이기라도 하면 최고의 슬픔이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춰서 삶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즉 사람들이 통상 피하는 것을 피하고 통상 추구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명예는 큰 구속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삶의 어떤 새로운 짜임을 궁구하는 데 장애가 되고 심지어 반대되는 나머지, 양편 가운데 어느 하나는 반드시 멀리해야 할 형편임을 깨달았기에, 나는 부득불 무엇이 나에게 더 유용할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 꾸준히 성찰한 결과, 나는 결국 만일 내가 철저하게 숙고할 수만 있다면, 확실한 선을 위해 확실한 악들을 포기하는 셈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내가 최고의 위험에 빠져 있음을, 그리고 설령 불확실할지라도 부득불 온 힘을 다해 치유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치명적인 병으로 고통받는 병자가 치유책을 쓰지 않을 경우 확실한 죽음이 예견될 때, 그의 모든 희망이 이 치유책에 놓여 있기에, 설령 불확실할지라도 부득불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찾아볼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그런데  世人이 좇는 모든 것은 우리 존재의 보존을 위한 어떤 치유책도 가져다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 존재 보존을 방해하여,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는 자주 파별의 원인이 되고 그것에 소유당한 자에게는 항상 파멸의 원인이 된다.  -<지성교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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