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헨리 데이비드 소로

철학의 높은 언덕 위에 선 이에게는 인간과 인간의 일이 남김없이 시야 밑으로 가라앉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인간이 연구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라고 시인은 말하나, 차라리 나는 그 모든 것을 잊는 연구를 하라고 말하겠다. 우주라는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자. 그런 건 인간 종족의 이기주의일 뿐이다. 대체로 출판업자들에게 맡겨져 있는, 사교 모임의 잡담 같이 유치한 우리의 문학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제도나 상식, 널리 공표된 의견 따위에는 편협과 기만이 들어있다. 박애와 자선의 미덕을 지나치게 부풀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속성인 양 여기게 되는 까닭은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간의 연약함에 뿌리를 둔 박애와 종교에 머지않아 진저리를 치게 될 것이다. 내 영혼의 양육을 박애와 종교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그러니 그릇된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득불 인간을 멀리하고, 개개의 인간이 다만 사막의 모래알 하나에 불과해지는 우주를 보려 한다. 내 생각 가운데 사회와의 관계에서 생겨났거나, 소위 거기에 들어맞는 생각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자비롭더라도 가장 지혜롭고 폭넓고 보편적인 생각일 수는 없다.(…)
나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제도가 우주에서 아주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가 그런 인간적인 영역에 가장 많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다. 인간은 단지 내가 서 있는 자리일 뿐이다. 내 앞에 펼쳐진 전망은 무한하다. 이 전망은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된 방이 아니다. 나를 비추면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가 보인다. 인간은 철학적으로 지나간 현상에 불과하다. 우주는 인간의 거주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큰 존재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 하고, 우리 대부분이 밤에는 늘 집 안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야외에서 밤을 새우는 이는 드물다. 게다가 인간 세상을 넘어서는 곳까지 가서도 인간의 제도를 길가에 돋아난 독버섯처럼 여길 이는 더더욱 드물다. -<소로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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