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 로베르트 발저

농부들의 삶의 방식엔 그 자체로 뭔가 깊이 종교적인 데가 있거든. 도시에서는 종교가 무슨 기계 비슷해. 좀 흉한 노릇이지. 반면 시골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번창하는 곡식밭과 마찬가지 혹은 쭉 뻗은 풍성한 초원과 마찬가지인 걸로 느끼지. 혹은 곡선 완만한 언덕이 매혹적으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꼭대기에는 명상을 벗 삼아 지내는 차분한 사람들이 있는 집이 한 채 숨어 있는 언덕 말이지. 글쎄 왠지, 내 느낌엔 마치, 도시에선 목사가 주식 투기꾼들이랑 신앙 없는 예술가들 옆에 너무 바싹 붙어 사는 것 같다고. 도시에선 신에 대한 신앙에 마땅히 있어야 할 거리가 결여되어 있어. 이런 데서 종교는 천상은 너무 멀고 지상의 냄새도 너무 안 나. 뭐라고 말을 잘 못하겠군, 그게 또 대체 무슨 상관이겠어.
종교는 내 경험에 의하면 삶에 대한 사랑, 지상에 대한 간절한 집착, 순간에 대한 기쁨, 아름다움에 대한 신뢰, 사람들에 대한 믿음, 친구들과 먹고 마실 때의 태평함, 생각에 침잠하고픈 욕구, 불행한 일이 있을 때 내 책임이 아니라는 감정, 임종 때의 미소, 삶이 제공하는 온갖 유의 일을 대하는 용기야. 결국 인간이 가진 마음속 깊은 바른 자세가 종교가 된 거야. 사람들이 서로서로 앞에서 바른 자세를 지킨다면 신 앞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고. 신이 뭘 더 원할까? 마음과 예리한 감성이 함께해서 바른 자세를 만들 수 있고 그게 신으로선 몽매하고 광신적인 신앙보다 좋을 거야. 이런 신앙은 분명 하늘에 계신 그분조차도 헷갈리게 만들어서 그분이 결국엔 더 이상 어떤 기도도 자기가 있는 구름 위까지 쩌렁쩌렁 들리는 걸 원치 않을 거라고. 그분이 마치 청각장애라도 있다는 양 그런 식으로 외람되고 졸렬하게 들이밀고 올라오는 우리네 기도가 그분한테 대수겠어? 그분을 도무지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거라면 고도로 예리한 청각을 지닌 분으로 상상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분께 설교와 오르간 소리가 정말 기분 좋을까? 그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께? 그래, 그분은 여전히 참 몽매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 그냥 빙긋 웃음짓고는 우리에게 그를 좀 더 가만히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언젠가는 떠올랐으면 하고 바라겠지.
-<타너가의 남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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