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세네카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은혜 베푸는 일을 중도에 그만둬서는 절대 안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 늘어난 데에는 베푸는 사람의 책임도 적지 않다. 둘째, 위대한 신들조차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인간들을 항상 관대하게 대해왔다. 신들은 자신의 본성 때문에 만물에게 은혜를 베풀지만, 은혜 입은 사람들 중에는 신들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도 끼어 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신들의 모범적인 행동을 본받아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 은혜는 되돌려 받을 것을 생각하고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베풀기만 해야 한다. 베풀 때 돌려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은혜 입은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더라도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다. “베푼 결과가 좋지 않은데, 그래도 계속 베풀어야 하는가?”
처자식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된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삶은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지키려 한다. 싸움에서 한번 패배했다고 전장에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 한번 배가 좌초되었다고 바다에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천성이다. 돌려받기 위해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돌려받지 못한다고 은혜를 베풀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빌미만 줄 뿐이다.
벌건 대낮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부끄러운 사람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해는 날마다 동쪽에서 떠오른다. 자신이 태어난 사실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새로운 후손은 계속 태어난다. 삶을 자조하던 사람들조차 삶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베푼 은혜를 돌아보기보다 베푸는 일 그 자체에 마음을 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돕는다고 해를 입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을 돕지 못할 이유도 전혀 없다. 미래에 돌려받을 것을 보장받지 못하는 은혜, 받자마자 갚아야겠다고 느끼게 하는 은혜가 바로 덕 있는 은혜다.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베푸는 일을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은혜를 베풀지 않기보다는, 은혜를 입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수 있지만, 애초에 은혜를 베풀려 하지 않는 사람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다. -<베풂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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