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 니콜로 마키아벨리

나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요즘 베어내고 있는 내 소유의 숲으로 가네. 그곳에서 두어 시간 머물면서, 전날은 얼마나 일을 했는지도 살펴보고, 벌목꾼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네. (…) 숲을 나와서는 약수터에 들렀다가 나는 새를 잡는 곳으로 가지. 나는 책을 한 권씩 끼고 다니는데, 단테나 페트라르카, 아니면 그보다는 조금 아래의 시인들일세. 왜 티불루스나 오비디우스 같은 사람들 있잖은가. 난 그들의 감미로운 정념과 사랑을 읽고 느끼지. 그리고 나의 정념과 사랑도 되새겨보지. 한동안은 이러한 달콤한 상념들 속에 잠긴다네. 그 다음에는 길로 나와 술집에 들르지. 그곳에서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말을 나누면서, 그쪽 소식을 묻기도 하고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의 잡다한 풍취와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게 된다네. 그러다 보면 식사할 시간이 오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이 초라한 시골집과 보잘것없는 땅뙈기에서 나오는 소출로 배를 채운다네. 식사를 한 뒤에는 다시 그 술집으로 가지. 그곳에는 나를 반길 사람들이 있지. 보통은 푸주한 한 사람, 방앗간지기 한 사람, 그리고 가마 굽는 일을 하는 사람 둘이 바로 그들이라네. 나는 이들과 아무렇게나 어울려 딱딱 소리를 내며 카드놀이를 하지. 이 와중에 수없이 오가는 말다툼과 욕설들. (…) 이 기생충 같은 인간들 틈에 끼어, 나는 곰팡내 나는 머리를 씻고 내가 처한 이 불운을 잠시나마 잊으려 하지. 운의 여신은 이처럼 짓밟고 있지만, 그래도 여신 스스로는 이를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하는 것으로 자위하면서 말일세.
저녁이 오면 나는 집에 돌아와 서재로 들어가네. 문 앞에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왕궁과 궁중의 의상으로 갈아입지.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는 날 따뜻이 반겨주는 고대인의 옛 궁전으로 들어가, 내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이유이자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맛보면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던가를 물어본다네. 물론 그들도 친절히 답해주지. 이 네 시간 동안만은 나에게 아무런 고민도 없다네.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린다는 말일세. 쪼들리는 생활도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네. 나 자신이 온통 그 시간 속에 빠져 들어가는 셈이지. 하지만 단테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어떤 것을 듣고 이해하더라도 기억 속에 넣어놓지 않으면 지식이 되지 못한다고 말일세. 그래서 나는 그들과의 이야기에서 배운 것을 일일이 써놓았다가 그것으로 <군주론>이란 조그만 책자를 쓰게 되었다네.
–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곽차섭, <마키아벨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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