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에밀 시오랑

# 유혹자 마라가 부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쓸 때, 부처는 이렇게 물었다. “무슨 권리로 너는 인간과 우주를 지배하려 하느냐? 너는 깨닫기 위해 고통을 당한 적이 있느냐?” 이것은 누구에 대해서나, 특히 사상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떠올려보아야 할,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 값을 치른 자들과, 그들에 비해 훨씬 더 수가 많은, 편리하고 무관하고 시련이 없는 지식을 얻은 사람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좋지 않은 비판을 했다는 것을 누군가 우리에게 알려줄 때, 화를 내는 대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했던 모든 나쁜 이야기를 생각해보고,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같은 말을 했다면 그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의 험담을 잘하는 사람들일수록 남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험담에 상처를 더 많이 입고 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는 자신의 결점을 인정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했던 사소한 비판 하나만 들려주어도 그는 자제력을 잃고 흥분해서 있는 대로 짜증을 낸다.

# 광신주의는 대화를 죽인다. 순교하고자 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우리의 이성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사람,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에 승복되지 않을 때 생각을 굽히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딜레탕트들과 소피스트들은 적어도 모든 종류의 이성 안으로 열심히 들어간다.

# “아무도 삶 안에 억지로 붙잡아두지 않으시는 신들에게 감사하자.” 세네카는 본질적인 것에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그가 스토아학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에 매우 야생적인 상태였던 코르시카섬에서 8년간 유형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 시련은 한 경박한 정신의 소유자에게 그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었을 하나의 차원을 부여해주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병과 싸우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태어났음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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