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 윌리엄 모리스

새로운 사회질서에서 어느 만큼의 공동생활이 필요할지 혹은 바람직할지라는 문제는 사회생활과 관련된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겁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인지 모르겠어요. 귀중한 책이나 그림, 주변환경을 꾸밀 약간의 고급스러운 물건 같은 것은 대체로 모두가 추렴하여 마련하는 게 좋을 것이구요.
부자들이 베이스워터(런던 근교의 전통적인 부촌)나 다른 이곳저곳에 고급주택이라고 지어대는 미련하고 우둔한 토끼사육장에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지요. 그때마다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들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에 구현된 과거의 이상과 우리 시대의 가장 고상한 방안을 잘 버무려, 자재를 아끼지 않고 훌륭한 장식도 풍부히 넣어 지은 미래의 고상한 마을회관을 그려보는 일이 내게 큰 위안이 된다는 말은 꼭 하고 싶네요.
사적 용도로 짓는 건축물은 아름다움과 적합함이라는 면에서 그런 건물의 근처에도 오지 못합니다. 오직 함께 생각하고 함께 생활할 때만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 생겨나고, 그것을 실제로 이뤄낼 기술과 여유도 생기기 때문이죠. 나라면 이런 공동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게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그에 반해 어디를 보나 그 안에서 살면 정신 수준이 떨어지고 신체적 능력도 저하되는, 밖에는 치장 벽토를 바르고 안에는 혐오스러운 가구들이 잔뜩 들어찬 천박한 집이라도 그저 내  것이고 내 집이라면 그게 잘사는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요.
흔히 하는 말이지만 강조 삼아 되풀이하자면, 집이란 내가 공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자, 이것은 중산계급으로서의 내 의견입니다. 노동계급의 경우 형편없는 방구석이라도 내 소유라면 내가 방금 그려 보인 궁전 같은 공동주택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그건 그들의 의견에 맡겨야겠지요. 공간과 안락함이 절대 부족한 비좁은 노동자의 주거 환경을, 빨래하는 날 바깥에 널린 빨래를 보듯이 가끔 떠올릴 수밖에 없는 중산계급의 경우에는 그들의 상상력에 맡기고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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