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오노레 드 발자크

옛날에는 ‘논객Publiciste’이라는 명칭을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보댕, 몽테스키외, 블랙스톤, 벤담, 마블리, 사마리, 스미스, 루소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했지만, 지금은 정치나 하는 엉터리 삼류작가에게 부여하고 있다. 과거에는 숭고한 보편적 원리를 제시하는 자나 예언자, 사상적 지도자를 논객이라 했는데, 지금은 강물에 떠다니는 작은 막대기처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바쁜 사내를 논객이라 한다. 만약 정치라는 피부에 종기라도 나면, 이 논객은 그 부분을 자꾸 긁어서 피가 나게 만든다. 그 다음에는 무얼 하는가 하면, 바로 책 한 권을 써내는 것이다. 사실 이는 집단 기만에 가까운 것이다. 예전에는 논객의 평론이 하나의 구심점 있는 큰 거울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이 거울을 산산조각 내 그 가운데 조각만으로 이것이 전체인 양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 (…)
다른 이들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논객인데, 신문기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논객으로 직함 네 개, 즉 얼굴 네 개를 지녔다. 이 가운데 하나를 소유주, 상인, 투자가에게 제공하며 이들로부터 뭔가를 얻어낸다. 그 무엇도 본인 소유가 아니지만, 모든 게 자기 것인 양한다. 이 야심 많은 자를 거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실상 편집부 기자들이다. 영광스러운 문지기, 투기의 나팔수, 유권자의 코르크 마개 부표 정도로 머물로도 좋으련만 이런 감각이 무디어져 갈 때면 지사나 국정 자문 위원, 아니면 어떤 기관의 장급, 아니면 극장주라도 되길 원하며, 때로는 정말 되기도 한다. 이 자는 마음만 먹으면 기사를 빼버리거나 원고를 인쇄기 조판대에 걸어놓고 상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기꺼이 밀어주기도 하고, 사람이나 사업도 밀어줄 수 있다. 아니면 상황에 따라 책도, 사람도, 사업도 다 망칠 수 있다. 쥐들 가운데 특히 큰 쥐인 이 자는 자신을 신문의 혼이라 자부하니 정부 내각도 필요하면 그를 만나야 한다.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면 바로 이런 점이다. 편집국 기자들과 수다를 떨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면 무슨 대단한 관점이 있는 양 심각한 표정을 짓고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각을 잡는다.  -<기자 생리학>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