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로마노 과르디니

끝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이는 생이 끝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것이 아니라, 생의 필연적 귀결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점점 확고해진다는 뜻입니다. 삶의 끝도 역시 삶입니다. 끝나가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가치들이 실현됩니다. 끝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어딘지 평온해지고, 실존적 의미에서 우월한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에게 앞으로 한 시간밖에 살 수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특히 더 잘하겠노라고. 바로 이 말에 저  실존의 우월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경지에 이른 인간은 불안해하지도 않고, 남김없이 향유하려는 욕심도 부리지 않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서두르지도 않고, 점점 줄어드는 시간을 온통 채워넣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삶과 나이>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