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장자

생명을 보존한다고 하는데, 자네는 능히 한 가지만 잡을 수 있는가? 자네는 능히 자신의 양지(良知)와 자존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자네는 능히 무엇이 길하고 흉한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점을 치러 가지 않을 수 있는가? 자네는 능히 자신의 목적을 잘 알고, 됐다 싶을 때 그만하고 제때에 멈출 수 있는가? 자네는 능히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능히 자유롭게 그리고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가? 능히 다 알고 또 단순하게 살 수 있는가? 능히 갓난아이처럼 생활할 수 있는가? 아기들이 온종일 울어대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스스로 발성과 호흡을 조절해서 적당히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라네. 아기들은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지만 인대가 늘어나지도 않고 손을 펴지도 않지. 아기들이 하는 행동은 억지로 주먹을 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성에 맞기 때문이라네. (…)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때에도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듯이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네. 높고 낮음, 곧고 구부러짐에 구애받지 않고, 파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떠내려가듯 속도며 박자가 모두 어우러진다네. 이것이 바로 생명을 보존하는 일반적인 도라네. -<장자>, ‘경상초’편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