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그레이엄 그린

문득 감방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놀란 모습, 동시에 어리석고 하찮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망친 마당에 자기만은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하다고 생각했다니, 그 얼마나 멍청한 일이었는가. 나란 인간은 얼마나 구제불능인가, 그는 생각했다. 얼마나 쓸모없는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구나. 나란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구나. 그의 부모는 모두 죽었다. 곧 그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게 될 것이었다. 아마 그 순간 그가 겁낸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통에 대한 공포마저 뒤로 물러섰다. 아무런 일도 한 것 없이 빈손으로 하느님에게 가야 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좌절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 순간, 성인(人)으로 사는 건 꽤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 그건 약간의 자기 절제와 약간의 용기만 갖추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약속 장소에 몇 초 늦게 가서 행복을 놓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는 확실히 알게 됐다.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건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건 바로 성인이 되는 일이었다. -<권력과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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