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알렉상드르 졸리앵

모든 걸 나무랄 데 없이 해놓고서 그 결과에 초탈한 자세를 보이는 것! 사실 내가 인간이라는 직업을 수행할 때도 정원을 가꾸는 사제처럼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해놓은 일을 ‘망칠’지도 모르는 역풍이 숱하게 불어와도 참을성을 잃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의를 지니고, 방향을 잘 잡고 중간중간에 머무는 기항지도 이롭게 잘 활용하면서, 그렇게 역풍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 활 잘 쏘는 궁수는 과녁을 잘 겨냥한다. 화살을 잘 쏘는 것, 이게 그의 할 일이다. 과녁을 맞히는지 여부는 온전히 그의 일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나는 몽테뉴가 한 멋진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움직이고, 살면서 하게 되는 일들의 가짓수를 늘려가기를 바란다. 내가 밭에 양배추를 심다가 죽음을 맞게 되기를… 그러나 죽음을 맞아도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아직 덜 가꿔진 내 정원에 대해서도 담담한 마음으로, 그렇게 죽을 수 있기를.” 초탈이란 무엇보다도 깊은 기쁨과 관련된 일이거늘, 어째서 항상 그것을 희생, 포기, 결핍과 관련짓는가? (…) 불완전한 나의 뜰 한가운데서, 내 상처와 불만의 깊은 바닥에서, 어쩌면 내가 일생 끌고 다니게 될 그 불완전함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나는 일상의 ‘양배추’를 잘 활용하고 그 기쁨으로 힘을 내어, 뭔가 소유하려는 과도한 의지와 모든 걸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떨치려고 한다. -<벌거벗은 철학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