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0228 후기 + 0307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7-03-01 16:16
조회
517
후기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누군가에게 지금이라도 연락을 할까 하다가… 걍 제가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하하;;

일단 지난 시간에 끝낸 <신통기>부터 짧게 복기해볼까요.
신통기는 제목 그대로 신들의 계보지요. 이전까지 난삽하게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신화를 헤시오도스가 나름 구조화하고 정리한 결과물이 이 서사시인데, 우리 모두 성토한 것처럼 기둥 줄거리랄까 하는 게 없어 현대 독자들이 많이 난감해 할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를 그냥 요약본이나 정리표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헤시오도스는 여러 신들과 사건을 통해 다름 아니라 바로 이곳, 자신이 살고 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 자연과 인간사를 이해하고자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기억하시다시피 첫 번째 주에 우리는 카오스-가이아-에로스의 만남에 의한 우주의 생성을 접했고요, 마지막 주에는 드디어 신의 물건이 인간의 문명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제우스가 그렇게 진노하는데도 불구하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달하지요. 헤시오도스는 그것을 인간세의 화근으로 보는 듯^^

다들 그러실 텐데, 지금까지 이렇게 저렇게 접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은 참으로 인간적이었지요. 인간처럼 애욕으로 들끓고 질투하고 화를 내는 등 그 어떤 다른 신들보다 다이내믹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신들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하니 그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그러니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신들은 언제나 인간사에 딱 들러붙어 있습니다. 필멸하기 때문에 언제나 아등바등하면서 소중한 것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전쟁과 모험을 통해 신들은 즐거움을 누리는 듯 보이지요.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속 신들에게서는 그런 즐거움을 찾기는 힘든 대신, 엄청난 교합(!)을 보게 되지요.
제우스는 그야말로 왕, 다산의 왕!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무엇에든 들러붙어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제우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많은 신들이 그들이 페이지 내내 왕성하게 생성중입니다.(-_-) 교합하기도 하고, 서로 싸움으로써 인간이 두려워할 만한 온갖 자연현상을 만들어내거나 산천초목을 이동시키고 일그러뜨리기도 하지요. 이처럼 헤시오도스의 신들은 우주의 생성과 운동을 이끄는 힘이랄 수 있겠습니다.

우주의 법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으로 지난 시간에 본 ‘청동 문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곳은 청동 문턱으로 경계가 지워져 있으니 그 경계를 통해 존재는 무와 구분됩니다. 존재와 비존재, 밤과 낮, 빛과 어둠, 생과 사 등 자연은 언제나 두 대립적 힘이 존재함으로써 운동하면서 동시에 유지되지요.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한탄하지만, 청동 문턱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인간의 한계야말로 공허와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존재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응집하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한계에 있지요. 그 한계를 벗어났을 때 인간은 다시 경계 바깥으로 나가 인사하면서 우주와 합일합니다. “밤과 낮이 거대한 / 청동 문턱을 넘을 때 서로 다가가 인사하는 곳”.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신들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이를 보여주는 것이 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로 이어지는 신들 간 세대교체지요.
영원히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전 세대는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에 의해 처단될 운명에 처합니다. 그리스에서는 유독 아비가 아들의 잔혹함에 희생되는 게 흥미롭네요. 아빠 남근을 자르는 아들내미라니… -_-;
그런데 세대 간 문제만이 아니라 제우스와 티탄족 간의 10년 전쟁은 다른 면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 충분합니다. 제우스가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니라 티탄족의 야만적 힘 — 헤카톤케이레스와 퀴클롭스였습니다.
제우스가 다른 신족과 자연과 인간 등등의 지배자로 군림하기 위해 야수(?)의 폭력은 필수 조건인 듯합니다. 제아무리 법과 문명의 이름으로 싸운다 해도 말이죠. 폭력을 통해 법은 지배권을 갖고, 그런 법을 통해 폭력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목동(무사 여신은 “밥통”이라 부르지요)에서 시인이 된 헤시오도스에 대해. 무사 여신의 인도에 의해, 일상에서 먹고 사는 일만 알던 세속의 인간이 세계를 조망하고 우주 창조를 그리는 시인이 됩니다. 헤시오도스에게 시인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신을 그림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신의 곁에 서게 되는 인간. 시인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생각은 다른 데서도 발견됩니다.
“제우스께서 돌보시는 왕들 가운데 누구든 위대한 제우스의 따님들이 / 명예를 높여주시고 그가 태어날 때 눈길을 주시면, / 그분들은 그의 혀 위에 감미로운 이슬을 떨어뜨리시고, 그러면 그의 입에서는 달콤한 말이 흘러나온다. / 그러면 그가 곧은 판결로 시비를 가릴 때 / 만백성이 그를 우러러 본다. 그는 동요함 없이 말하고, / 큰 분쟁도 능숙하게 금세 해결한다. / 현명한 왕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백성들이 거래에서 / 손해를 보았을 때 그들이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여 / 힘들이지 않고 이들에게 손해배상이 이루어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38)
“불사신들 사이에 분쟁과 말다툼이 벌어지거나 / 올륌포스의 집들에 사는 신들 중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 제우스께서는 이리스를 보내 신들의 위대한 맹세를, / 높고 가파른 바위에서 떨어지는 저 유명한 찬물을 / 멀리서 황금 주전자에 담아 가져오게 하신다.” (81)
인간 사회에서 왕이란 제우스로부터 유래한 권력을 소유한 존재. 그런 왕이 말을 통해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듯 시인 또한 말을 통해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지요. 둘 모두가 다름 아닌 '무사 여신'에 의해 달콤한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다음 주에는 이에 이어 <일과 날> 전체 읽고 만납니다. 각자 재미있었던 부분 가져오셔서 들려주셔요. 시험 준비도 잘하시고^^ (주요 신들에 한해서 문제 출제하겠습니다~)

자, 숨을 좀 고르고.

이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을 짧게 정리해볼까요.
채운 쌤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만, 역시 2권에서 핵심은 페리클레스 및 아테네 민주정이죠.
저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읽으면서 내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채운 쌤 평가를 가져오면 저는 말에 호도된 대중이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대중이 호도될 수 있는 것은 그 말이 대중의 욕망의 어느 지점을 건드리기 때문이기도 하죠. 페리클레스가 그노메(이성)로 무장하고 현실과 동떨어진(역병과 기근, 두려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은, 동시에 그것이 당시 대중의 어떤 정서적 코드에 부합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끌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페리클레스가 가져온 것, 그것은 보셨다시피 ‘폴리스 / 전체’였죠.

채운 쌤 설명에 의하면 그 시대의 아테네 정체의 기틀을 확립한 것은 솔론(BC 630~)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신체와 결부된 채무 관계를 금지하고, 신분제를 재편하고, 또 법전을 편찬했다지요. 그럼으로써 지금의 아테네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그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제우스/노모스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사회, 동시에 개개인의 고유한 아레테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
채운 쌤께서는 이러한 폴리스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웅변은 청자들의 욕망과 감정을 파고드는 연설이라 하셨는데, 바로 이 점을 플라톤은 비판하고 있답니다.
<국가>에서 볼 수 있듯 플라톤은 ‘올바름’을 숙지해 그로부터 테크네를 발휘하는 철인이 도시를 통치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페리클레스는 오직 대중을 설득하는 말의 기술을 익혀 파토스를 고양시키는 것에만 능했다는 사실.(채운 쌤께서는, 플라톤은 페리클레스를 일종의 소피스트로 간주하셨다고 설명하셨죠)

가만 보면 2권에서 투키디데스가 가장 예의주시하는 것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아니라 대중의 요동치는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전쟁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감정'입니다. 바로 감정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소국은 제국과의 전쟁을 불사합니다. 감정 때문에, 분노 때문에 병사들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상대를 향해 돌진합니다. 감정 때문에, 역병 앞에서 사람들은 페리클레스에게 항의하고, 다시 페리클레스의 말에 수긍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아테나이인들에게 분개했는데, 더러는 아테나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더러는 아테나이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148)
“전쟁은 예측할 수 없고, 공격은 대개 분노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오. 또한 안전에 위협을 느낀 소수의 군대가 지나친 자신감에서 준비를 소홀히 한 대군을 물리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오.” (149)
대중의 욕망과 정치, 감정과 합리적 판단... 이 같은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대중과 지도자, 도시(국가)와 개인, 용기와 지식, 병과 두려움, 돈과 국가… 개인적으로, 이번에 읽은 2권에서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보여 지난번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까요? 부디 즐독, 즐공하시길.

다음 시간에는 <펠로폰네소스> 3권 읽으시되 각각의 연설이 드러내는 상이한 관점에 주목하시라는 게 채운 쌤 당부셨습니다.
숙제는 나눠드린 복사물에서 드러난, 페리클레스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평가를 정리하기^^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전체 1

  • 2017-03-01 21:02
    오옷.... 마침 이렇게 재밌고 풍부한 얘기가 나눠지니 빠진 게 많이 아쉽네요 ㅠㅜ <신들의 계보>가 이런 식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니, 무성의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청동 문턱 얘기와 폭력 얘기를 염두에 두면서 다시 보면 또 새롭게 보일 것 같네요...! (그럴리는 없지만 왠지 그런 착각이 듭니다.) / 이번에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돋보인 것 같아서 투퀴디데스도 페리클레스의 팬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ㅋㅋㅋ 2권에서는 투퀴디데스가 대중이 어떻게 연설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군요. 바로 저 같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말에 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홀라당 넘어가는 저 같은 사람들 ㅋㅋㅋ 어째 빠진 날은 다른 날보다 더 내용이 풍부하고 재밌어 보일까요? (기분탓이려나?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