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뽓따빠다의 경 후기

작성자
현옥
작성일
2016-11-04 13:24
조회
3762
뽓따빠다의 경 후기

 

우리가 무엇을 ‘지각했다(감각하고 의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경쌤의 명쾌한 설명을 따라서 다음의 두 대화 내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찟따;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도 허망한 것이 되고, 물질을 여읜 자아의 획득도 허망한 것입니다. 그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붓다; “찟따여,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고 불리지 않게 되고, 물질을 여읜 자아의 획득이라고 불리지 않게 됩니다. 그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고만 불립니다.”

 

위의 글을 보면, 우선 찟따의 경우에는 지각(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을 진실로 실체화하면서 그 진실(지각) 외의 나머지 것들은 모두 ‘허망한 것’(진실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지각한 것을 사실로 여기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지요. 이에 반해 붓다는 우리가 지각한 것은 내가 믿듯이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다만 그 순간에(그때의 조건들의 일시적인 배치 안에서) 그런 방식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며,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여있는 물건이 때에 따라 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며 내 기분에 따라 같은 사물도 늘 달라 보이지요. 또 아무리 맛있는 것도 연달아 세 번을 먹고 나면 맛이 없어진다는 점 등등 사소한 몇 가지의 경험만 되살려보아도 우리가 어떤 순간에 지각하는 것이 사실이나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요. 게다가 세상의 본질이 空性(모든 것이 그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나 자주, 아니 늘 자신의 지각이 사실이라는 전제 속에서 판단하고 말하고 행위하게 될까요?

수경쌤은 그게 바로 언표작용이 갖는 막대한 힘이라고 지적하셨고, (따지고 보면 같은 얘기가 되겠지만) 저는 자아를 실체라고 여기는 자의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신체가 놓여진 조건에 따라서 그 배치 및 작용의 결과로서 내가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있어서 지각도 하고 변화도 겪는다고 믿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 똑같은 사물이 때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현상조차 ‘내가 다르게 느낀다’고 여기게 되지 ‘매번 그렇게 다르게 느끼는 게 바로 나’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 것이고요. 결국 모든 지각경험을 ‘선험적인 나’로 환원시키는 한에는 우리는 찟따와 같은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이 간단해 보이는 空性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고요.

‘내가 있어서 변화를 겪는게 아니라 변화의 결과가 바로 나’라는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났을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그 ‘변화의 한 조건으로서의 나’를 사유할 수 있게 될 듯하며, 이때의 ‘나’야말로 ‘주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붓다가 말씀하시는 지각과 배움의 문제(배움에 의해 어떤 지각이 생겨나고 또 소멸하기도 한다는)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만 얘기될 수 있을 것 같고.

 

다들 일이 있으셔서 세 분이나 빠지고 너~무 조촐했어요! 담 시간에는 모두모두 만나요!

범회쌤도 돌아오시고요! (우리 모두 반성했어요!^^)
전체 1

  • 2016-11-04 14:32
    ㅋㅋㅋ 반성이라니~ ^^ 모두 월욜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