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11.14 셈나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11-09 15:06
조회
3610
지난 시간에는 채운쌤과 함께 간략한 수업 정리 및 과제 합평 진행했습니다.
글쓰기를 하면서 각자 매번 부닥치는 문제를 또 한 번 만나게 되었지요. 습관 하나 버리고 새 습관 들이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공부하면서 참 많이 느끼게 되지요^^
모쪼록 지치지 말고, 꾸역꾸역 해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습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개미처럼 성실하게! ㅎㅎ

채운쌤께서 그런 말씀 하셨죠. 우리가 평시에 느끼는 건 다만 我에 기반한 스트레스가 아니냐고.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짜증나고 우울하고 화나는 거죠.
그런데 억겁의 인연에 의해 붓다와 만나 경전에 출연할 기회를 얻은 저 바라문들이 겪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가 아니라 번뇌라지요.
습관과 양식으로 유지되던 일상에 균열이 일어 내 생각과 말들이 공격받게 되는 순간 그 앞에서 숨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그것을 제대로 겪어낼 때 겨우 번뇌로울 수 있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는 번뇌를 겪을 능력도  없는 존재도 참 많은 거지요.
음...공부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죽어도 안 넘어가는 지점이 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을 때, 그 앞에서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는 게 아니라 차라리 조는 걸 택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책읽다 말고 딴짓하고 딴생각하기 일쑤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래 힘겹고 익숙치 않은 사유를 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만 '소중한' 번뇌의 기회를 발로 뻥 차버립니다. 그리곤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욕심, 집착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의식만 낳는 거죠.
공부가 오히려 자아를 뚱뚱하게 키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이 때문입니다.

채운쌤께서는 공부란 곧 전제를 깨는 일이라 설명하셨습니다.
매번 내 전제를 확인하는 일, 이게 공부의 과정이고, 사실상 공부란 과정뿐임을 우리도 이미 모르지 않지요.
붓다가 말하는 깨달음이 어떤 지고의 '상태'를 지칭하는 게 아닌 것처럼, 공부 또한 어떤 목적지를 위한 게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일상에서 내가 어떤 전제를 가지고 다른 것들을 해석하는지 바로보는 작업, 그게 바로 공부랍니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 제대로 번뇌를 겪는 것, 그게 공부랍니다. 그게, 수행처럼 공부하는 것이랍니다.

채운쌤의 조언에 의하면 <디가니까야>를 읽을 때 유의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 가령 바라문이 붓다에게 하는 질문, 붓다가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당시 인도 사회의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습니다.
둘, 1품에서는 계, 정, 혜가 붓다에 의해 반복되는데, 붓다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온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매 경을 독해해야겠지요.

불교 경전으로 '남들에게 할 내 말'을 늘린다고 생각했다가는 정말 스트레스만 받고 아상만 키우기 십상일 것 같아요.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각자 뱉은 말을 의심하고 점검하는 시간으로 삼는 게 나을 듯합니다.
내가 무심코 따라적은 말, 별 의문 없이 내놓는 결론, 이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방식이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요.
우리 모두 부디 정진합시다^^

다음 시간에는 11, 12경 함께 읽고 공통과제와 함께 만납니다.
간식은 은남쌤께 부탁드려요. 이번 주 후기는 은하쌤~!
그럼 담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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