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11월7일 수업 후기

작성자
정은하
작성일
2016-11-11 15:10
조회
3439
지난 시간에는 채운샘이 들어오셔서, 그 동안 저희끼리 공부했던 「디가니까야」 6-9경 정리강의 해주셨습니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외의 부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9경 시작부분에 온갖 가십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뽓따빠다와 그의 제자무리들이, 부처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그들의 대화를 중단하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수행자인 척 하는 웃긴 장면이 나옵니다. 출가하여 나름의 고행을 하는 수행자들이 계속하여 세속적 관심을 놓지 않고 그러한 말초적 자극을 주는 흥밋거리를 계속즐기는 모습이 구도자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아, 당연히 수행자에게는 부끄러운 행위라 생각하면서 지나갔던 장면입니다. 똑같은 연유로 계행에서도 반복해서 그러한 세속적 이야기를 여의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한번도 사람들이 왜 이토록 남의 이야기를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당연히 가십이라는 것이 막장 드라마를 보든 온갖 진귀한 인간군상의 이야기꺼리가 많고 의식주와 같이 일상에서 상시 부딪치는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라 사람들이 관심 갖고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막연히 생각 했었습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이정도의 느낌.

그런데 지난 수업시간에 채운샘이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아가 고착된다고 설명하시는 부분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과 다른 나’라는 방식으로 자아를 정당화 시키는 거라고요. 그렇게 설명을 들으니, 왜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재미보다 더 큰 ‘짜릿함’ 또는 ‘쾌감’을 느끼게 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모든 학인들이 아는 저의 중병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에티카」수업 에서도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정립’시켜주는 행위 또는 대상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배웠었죠. 자신의 존재를 정립시켜주는 능동적 활동을 통해 기쁨을 얻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안될 때 조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수동적 행위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견고하게 고착시켜 주는 활동을 추구하고 즐기게 되어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바렐라가 말했듯이 그야말로 징한 ‘자아 중독’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망망대해안에서 떠다니는 나무토막을 잡는 것과 같이 아무것도 실체화 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과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되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실체화 할 수 없는 이 세계를 두려움 또는 허무함이 아니라, 자유로움의 조건으로  제대로 인식 가능할 때 비로소  필사적으로 자의식을 고착시키려 하는 이 방어기제도 느슨해질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가 이토록 중요하다~ 라는 모두가 아는 결론을 짓고 후기를 마칩니다. ^^;
전체 1

  • 2016-11-11 16:59
    은하쌤의 '중병'이 어여 치유되기를 바라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