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0926절탁M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7-10-11 22:58
조회
151
절탁M 0926후기/<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어둠의 심연>I

늦은 후기를 올려 정말 죄송합니다.

마지막 학기를 맞았습니다. 긴장감을 가지고 정진해야겠지요. 이제 20세기로 왔습니다. 이번 학기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4권의 소설을 읽습니다. 제국주의가 삶의 면면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겠지요. 첫 시간엔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과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읽었습니다. <어둠의 심연>은 말로가 젊은 시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돌아 온 이야기를 회고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줄거리는 아주 심플합니다. 말로가 콩고 내륙 깊숙이 있는 커츠를 유럽으로 무사히 송환할 임무를 띠고 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보고 느낀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미나의 절반은 말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었지요.

말로

말로의 시선: 말로는 어둠의 심연을 관통하는 전달자입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가장 잡히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고 작가 콘래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도 보기를 좋아했고, 지도의 빈 곳을 다녀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자였지요. 그는 돈 많은 숙모의 도움으로 콩고로 가는 작은 배의 선장으로 취업을 합니다. 콩고 내륙에 있는 커츠라는 자를 유럽으로 데려가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알게 됩니다. 말로는 많은 담론을 제공합니다. 우선 말로는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유럽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인의 기준을 지키는 한에서입니다. 작품에서 ‘검둥이’들과 식민지의 모습은 모호하게 그려지거나 아예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원주민을 향해 총을 쏘는 프랑스인과 중간교역소의 주재원과 엘도라도 탐험대와 커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유럽 변방의 러시아인을 그리는 것이 조금 다른 정도입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차등적으로 작용합니다. 백인과 흑인사이, 남성과 여성사이,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 사이를 작동하는 다른 기준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전자 우월한 시선이지요. 선민샘은 말로가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대상들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지점을 계속 환기시켜 주며, ‘나’란 사람의 시선으로 건설한 것이 제국주의라고 하셨죠. 말로는 자신의 입장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여행: 또 그는 여행을 떠난 사람이지요. 자신의 돈도 아닌 돈 많은 숙모의 도움으로, 그가 비판하던 제국주의 상선에 올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행’은, 자신의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떠남이 있었고 돈 많은 유럽인이어야 떠날 수 있습니다. 그가 가고자 한 곳은 “태초”라고 불리어진 콩고의 심연입니다. 그는 인간을 보기 위해 태초까지 거슬러 갑니다. 샘은 여기서 존재를 따질 때 근원이 필요한가 질문하셨죠. 동시대의 인간을 보지 않고 과거까지 소급해 가 보고자 한 것이죠. 당시 유행한 학문도 모두 기원을 묻는 방식이지요. 인류학, 고고학등이 과거 소급적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당성을 과거로까지 소급해 찾는 것 또한 제국주의적 관점이지요. 태초까지 거슬러 가는 여행에서 말로가 본 것은 커츠입니다. 제도, 군대, 규칙등 시민사회의 문법이 없는 자연 상태에 놓여 있던 커츠입니다. 그곳엔 동물도 다른 환경도, 유럽인 커츠가 아닌 식민지인들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여행에서도 말로의 관심은 유럽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하는 자: 여행의 끝에 말로는 커츠가 남긴 자료를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자료는 본국에 보낼 보고서와 체험을 적은 것들입니다. 말로는 커츠의 자료를 나름대로 절단 채취하여 제출하거나 보여줍니다. 커츠의 지식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단하는 것이지요. 말로는 커츠가 글로 적어 놓은 지식을, 런던으로 돌아와 말로 전달합니다. 원경험자와 전달자 사이엔 간극이 생기고 전달자의 관점이 개입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는 자에 따라 객관과 주관이 달라지고 표본에서 멀어지게 되겠지요. 제국주의도 원본과의 거리와 분석등을 통해 새로운 자료와 기준을 설정합니다. 그것은 유럽의 기준이 되고 계몽의 이름으로 교육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문제는 절대 자신을 문제시하거나 객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은 옳다는 전제되어 있습니다. 특히 말로는 커츠의 지식을 선점한 것이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유럽인이라 커츠로부터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식민지인들이 영어를 배워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게 지식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과 선점한 지식을 재단할 수 있는 지위를 동시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 전달합니다.

거리두기: 말로의 이야기는 무척 관조적으로 들립니다. 늘 한발 물러나 있고 어떤 일에도 개입하지 않습니다. 근대에 레일이 깔리면서 기차 안에서 창밖너머의 풍경을 구경하듯 그의 시선은 거리감을 가집니다. 낯선 땅, 낯선 원주민들의 세계는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게 되지요. 말로는 산책자처럼 현장을 구경하고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안정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말로의 이런 자세는 유럽인의 전형적인 자세인 것이죠. 낯선 땅을 안전하게 만드는 유럽인의 자세란, 거리를 두고 보거나 내가 아는 지식으로 그곳을 바꾸는 것이겠지요. 제국주의의 탐욕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그이지만 유럽인으로서의 한계는 분명해 보입니다. 이 방식은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관리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는데, 본국에 본부가 있고 식민지에 주재소를 두어 현장에 가지 않고도 원격 관리가 가능하게 거리두기를 하는 것과 유사하지요.

커츠: 최고의 상아수집상이었던 커츠는 정복자의 이념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돈이 되는 상아 수집을 위해 원주민을 학대하고 불법적인 채취도 마다 않지요. 돈을 벌어 본국으로 돌아가 약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렸고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죽음을 맞았죠. 그가 마지막 외친 말은 ‘끔찍하다!’였습니다. 무엇이 끔찍하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국의 이익을 명분으로 식민지를 착취하는 현실일수도, 자신을 밀림의 가장 깊숙한 콩고까지 보내 돈을 벌게 하고 독촉하는 인간 자체일수도 있으며, 정복자의 이념을 내면화하고 오지로 들어가 문명과 단절된 채 멈출 수 없는 광기로 미쳐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이 모든 것을 만든 유럽일수도 있습니다. 말로는 커츠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비범한 인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위험을 알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간 모든 지혜와 진실이 있는 곳까지 나아간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샘은 커츠를 한번 더 죽인 자는 말로라고 해석하셨어요. 말로는 커츠를 신처럼 여기는 약혼녀를 만나 그녀가 원하는 말속에 커츠를 가두고, 문건을 재단하며 커츠의 야생성을 소거시켜 버렸습니다. 커츠의 광기는 유럽에 도착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커츠는 말로에 의해 왜곡되어 버립니다.

다은 시간엔 커츠전과 말로전 중 하나를 써옵니다.

<에드워드사이드 자서전>

평범함의 의미

사이드의 자서전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어릴 적 기억을 인명 장소 사건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세밀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사실 전 이 많은 사건과 인명들을 다 읽어야 한다는 것이 좀 지루했어요. 시시콜콜 이런 것까지 적나 싶었거든요. 헌데 수업 중 샘이 이 자서전의 지루함을 ‘평범함’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 사이드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이자 기독교집안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서 시민권을 얻은 까닭에,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인 동시에 미국 시민이기도 했습니다. 사이드는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과 보호 속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가족 전체가 끊임없이 중동지역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이드는 어린 시절 이집트 카이로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 당시 이집트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좋은 학교들은 모두 영국식 교육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 교칙의 첫 번째는 영어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아랍어의 사용은 금지 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 왔고, 사이드도 영어보다 아랍어를 사용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가게 되지요. 그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이주자로 이방인으로 불안정하고 우둘두둘하게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의 자서전은 가족 프레임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많은 부분이 유년 시절에 집중되어 있지요. 이 질문에 대해 샘은 사이드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셨는데요, 유년 시절에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항시 흔들리는 그 자체가 삶이라고 보고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이건 '극도의 평범함을 의미'하는 사이드식의 표현이라는 것이었죠. 낯설고 부유하는 자체를 담담히 그림으로써 언제나 낯설고 정박하지 못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당연시 하고, 단지 그것을 평범하게 말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건과 위험의 순간을 평범한 일상으로 전하는 사이드의 독법에 순간 울컥했었지요.

사이드의 자서전은 시간의 축으로 서사를 전개해가지 않습니다. 전개해 나가던 시간이 다시 과거로 감아들기도 하며 이야기 하는 시점과 과거가 넘나듭니다. 사이드가 의식적으로 단선화시켜 배치한 두 이야기가 있습니다. 줄루에서의 휴가와 빡빡한 학교생활의 비교입니다. 16세가 된 사이드는 가족과 떨어져 미국의 허먼 스쿨로 진학합니다. 미국에서 사이드는 문화와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며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방인으로 학생대표가 되지 못했던 일은 학자가 되어 자신을 이론을 정립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는 가족 친지들과 2달간 줄루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곳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했고, 가까운 친구 친척들에게서 느끼는 동질감과 편안함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잊게 만드는 곳이었지요.

탄생과 존재근거 때문에 결정한 일들의 구현이 어려울 때 ‘나’는 존재를 설명할 언어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공간에 갇혀, 그 말과 그 억양 때문에 거절이 계속 될 때 이제 사이드는 질문합니다. 말과 공간이 누구의 것인가? 말과 공간을 점령한 백인중심으로 구성된 거대한 피라미드는 삶의 모든 공간에 섬세하게 작동하며 순혈주의를 요구하고 정확한 발음을 검사합니다. 사이드는 제국주의 시작은 땅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이드가 비판하는 땅 중심의 정체성은 현존하고 있으며, 순수한 문화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화는 혼종되고 갈마들기 때문입니다.

강의 말미에 샘은 낯선 언어를 배워볼 것을 제안했지요. 외국어는 야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자신에게서 낯설어지는 사유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 내 일, 내 것, 내 생각... 등등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도록 민감해지는 것, 자신 안에 제국을 세우지 않는 길이겠지요.
전체 2

  • 2017-10-11 23:32
    자신 안에 제국을 세우지 않기! 이것이 바로 4학기의 과제입니다. 점차 가열되는 토론과, 겁나게 튀어나오는 우리 각자의 '위치'. 두근두근 절탁 M입니다. ^^

  • 2017-10-12 12:28
    사이드를 읽다보면 내가 제국주의구나, 하게 돠지요. 그건 평소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을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엄청난 기억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