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6주차 문화와 제국주의 후기(171107)

작성자
윤순
작성일
2017-11-10 22:19
조회
146
절탁M역사/문화와 제국주의 6주차 후기(171107)/2017.11.10./윤순

이번 시간에는 문화와 제국주의 제3장 저항과 대립 중 저항문화의 주제들/예이츠와 반식민지화/거슬러 오르는 여행과 저항의 대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저항문화의 주제들

반식민지 운동은 제국주의가 원주민 역사에 가한 왜곡을 제거하고 원주민 문화의 의의를 복권하여 “파괴된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식민지 체제에 대항하여 원주민 공동체의 감각과 실체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반식민지화라는 문화적 저항에는 세 가지 거대한 주제가 등장하는데, 첫째, 자국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일관되고 통합적으로 보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저항을 단순히 제국주의에 반발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구상하는 대안으로 본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문화 사이의 장벽을 파괴하고 새로운 인간 역사를 구성하는 대안으로 저항을 정의합니다. 셋째는 분리주의적인 민족주의로부터 명백히 떨어져 나와 인간의 공동체와 인간의 해방에 대해 더욱 통합적인 견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종주국의 담론에 의해 정의되었던 제국주의 질서와 역사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원주민의 저항문화입니다. 이러한 저항문화는 제국주의 종주국에 영향을 주어 종주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지지가 일어납니다.

저항 문화의 구체적인 예로 원주민의 작품인 제임스 응구기의 <강을 사이에 두고>는 콘래드의<암흑의 핵심>을 개작해서 콘래드가 언급한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을 묘사하고, 백인을 주변인물로 처리했습니다. 또한 콘래드의 작품은 아랍의 타예브 살리흐에 의해 그의 작품<북향 이동의 계절>에서 콩고강을 나일강으로 변모시켰고, 아랍어를 사용하고 유럽으로 북향여행을 하는 수단인들을 등장시킵니다. 이들 원주민 작가들은 제국 문화를 재발견하고 이용합니다. 식민지 시대에 상실한 공동체의 권위 회복을 목적으로 한 저항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정신의 반식민화>에서 저자인 응구기는 영어 대신 아프리카 언어와 문화를 더욱 깊게 탐구하고, 해방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아일랜드 민족시인 예이츠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영문학사에서 인정받는 시인이지만, 그의 국적은 영국이 아닌 아일랜드입니다. 예이츠가 살았던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문화영역 속에서 활동했던 예이츠는 종주국인 영국에 대한 의존과 적대관계를 동시에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일랜드는 1150년부터 로마 교황의 승인으로 잉글랜드에 양도되어 예이츠가 살았던 20세기 초까지 잉글랜드의 식민지였습니다. 잉글랜드 제국은 아일랜드를 야만적이고 퇴화된 인종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보는 문화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라는 형태로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제국주의(유럽중심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과정에 기인한 것 뿐 아니라, 문화적 과정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그렇다면 식민지에서는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고 국민들이 노예의 상태로 내몰리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었을까요? 아니요. 저항문화도 제국주의 팽창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이었습니다.

예이츠는 다른 식민지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자기 민족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영국에 의한 아일랜드 분할 계획에 분노하고,(그리고 아일랜드 통일에 정열을 바쳐) 새로운 질서를 초래하는 폭력을 말로 기념하고 축복하며, 민족주의 문맥 속에서 민족에 대한 충성과 배반을 유연하게 사용’(p448)했습니다. 그의 시는 아일랜드만이 아니라 아일랜드성에 대한 시였지만, 예이츠가 자기 정체성만 내세우는 정서적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에는 토착주의를 뛰어넘고자 하는 미래의 여러 가능성도 다수 존재합니다.

예이츠의 초기 작품은 민족주의자의 특색이 짙고, 그것이 넘을 수 없는 경계에 머물러 있지만 유토피아적 해방 사상의 윤곽을 보여준다고 사이드는 말합니다. 그래서 예이츠의 시 전체에 어김없이 드러나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20세기 해방 투쟁의 모델이었고, 예이츠의 작품 최대의 주제는 식민지 투쟁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폭력과,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민족 투쟁의 정치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고, 또 서로 싸우는 여러 당파의 권력 투쟁을 어떻게 이성과 설득과 조직행동을 둘러싼 담론과 시의 요청에 합치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p454)라고 사이드는 주장합니다.

영국의 문인들이 아일랜드인을 말할 때 ‘감자 먹는 사람들’이니 ‘늪지의 사람들’이니 ‘오두막에 사는 사람들’이니 하면서 유형화 시킨 것에 대해, 예이츠는 자신의 시에서 아버지로서, 60세의 미소 짓는 고인으로서, 아들이자 남편으로서, 개인적 경험의 이야기로 아일랜드 민족을 그들의 역사에 참가시켰습니다.

거슬러 오르는 여행과 저항의 대두

식민주의/반식민주의와 제국주의/반제국주의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유럽인이 비유럽인을 통치하는 태도는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입니다. 식민자들은 식민지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원주민을 노예로서 엄격하게 통제하고 혹사시키며 지배했습니다. 이것은 식민주의적인 것이었고, 이것을 정당하게 만들어 주는 다른 인종에 비해 서양인 혹은 백인종이 우월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제국주의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식민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로 식민지인들에 대한 반인격적인 태도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원주민들에 대한 혹사를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식민주의자라도 백인종의 우월함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식민지들이 영토적으로 거의 독립하면서 식민주의는 사라졌지만, 제국주의적 ‘열등한 민족’이라는 표상은 남아있습니다.

그럼 식민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민지에서도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종주국이 이익을 위해 식민지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종주국의 지식인들 중에서도 제국주의에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향력은 미비했습니다. 제국 내에서 의미 있는 반제국주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식민지 출신의 지식인인 프란츠 파농, 에메르 세제르와 같은 ‘혁명적 이상주의’ 움직임이 1950년대 사르트르를 비롯한 종주국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이들은 함께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파농이나 세제르와 같은 식민지역이나 주변지역 출신 지식인들은 제국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 제국에 대한 대규모 저항 운동에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자신에게 종주국 문화의 수정과 비판이라는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20세기부터 ‘서양’문화는 전위적 경향을 띠는데, 거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종주국과의 관계에서 ‘문화적으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문화 출신자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가 서로 개입하면서 역사를 구성한다고 가정하면 몇 가지 요인이 드러나는데, 첫째는 주변지역에서 발전한 반제국주의적인 사상과 학술의 업적이 대부분,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하여 종주국 속에 포함됩니다. 두 번째로 종주국에 대한 이러한 침입이 종주국 중추에 의해 독점되어 온 경험, 문화, 역사, 전통이라는 영역과 관련됩니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종주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에 의해 표상되는 것은, 종주국 문화 내부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모순이나 차이 그 자체이고, 따라서 종주국 문화는 이것을 회유나 회피하면서 인지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로는 거부하기도 한다고 사이드는 생각합니다.

사이드가 제시하는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보여주는식민지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은 식민지 독립 이전을 대표하는 제임스의<흑인 자코뱅>(1938)과 안토니우스의<아랍의 각성>을 식민지 독립 이후를 대표하는 구하의<벵골의 토지 지배>(1963)와 알라타스<게으른 원주민이라는 신화>(1977)입니다. 이 두시기의 작가들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대표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도 있는데 ‘초기의 저자들이 그 시대 정치에 직접 관여한 점에 비해, 후기 저자들은 식민지 이후의 인도와 말레이시아의 학술 논쟁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이후의 역사 그 자체가 관점을, 사실 논의의 성격 그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p474)고 사이드는 말합니다. 알라타스와 구하는 연구에서 억압된 원주민의 소리를 식민지 역사로부터 구출하고,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원주민 사회의 약점 그 자체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통찰을 낳는 시도에 집중했는데, 이런 구하의 연구는 1982년 구하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그의 후원 하에 시작한 공통연구에 의한 <서발턴 연구>의 시발점이 됩니다.

<서발턴 연구>시리즈 서문에서 구하는 ‘비역사적인 역사 서술이 영국 측이 창조한 민족주의자 엘리트를 중시하여 ‘민중의 정치’를 누락시켰다고 말했다. 그 결과 “민족의 자기실현이 역사적으로 실패”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패를 연구하는 것이 식민지 시대 인도에 관한 역사 서술의 중심 주제로 형성되어야 한다.”’(p482)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식민지 저자들의 작품은 분명히 종주국 문화에 개입됩니다. ‘과거 2백 년 동안의 제국 경험은 지구 규모의 보편적인 것이었고,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식민자와 피식민자 쌍방을 연루시켰습니다. 서양이 세계 제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서양인은 자신의 문화적 유산과 학문, 그리고 담론의 세계를 통일적인, 또한 침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세계는 서양의 창턱에서 주의를 끌기 위해 탄원하며 서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문화를 그 배경과의 연대 관계로부터 단절시킴은, 또는 문화를 그 갈등 경합의 영역에서 끌어내는 것은, 또는 문화의 현실적인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문화상을 만드는 것’(p496)이라고 사이드는 믿고 있습니다.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역사가 함께 연구되지 않고 별개로 연구된다면, 제국 지배와 피지배자의 경험은 인위적이고 잘못된 형태로 분리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사이드가 논의한 네 명의 연구자의 선구적 업적-거슬러 올라 여행하기-이야말로, 주변지역의 반제국주의 저항 운동과, 미국과 유럽 내부의 저항 문화 사이에 지금 구축되고 있는 문화적 연합에 기초가 되는 것을 제공했습니다.
전체 2

  • 2017-11-14 09:33
    결석자에게는 넘나 보배로운 후기입니다// 반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운동이 전개되었는지도 명확히 따라가 봐야 되는거군요!

  • 2017-11-14 10:56
    사이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반식민주의와 반제국주의의 주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 주체의 위치가 갖는 잡종성(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경계인)에 주목하면서, 한없이 폭력적인 이분법을 돌파할 가능성을 파헤치지요. 탈식민주의 운동의 민족주의적 측면이 어떻게 '제국주의'적 상상력을 모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적도 중요했습니다. 그럼, 우리 안의 이분법을 깨는 운동을 계속 Go!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