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4.18 첫 시간 후기~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7-04-20 13:36
조회
364
두 번째 학기 첫 시간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단테의 신곡!! 이번엔 지옥편을 읽고 만났더랬죠.

저는 과제를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가 흥미로웠는데요. 하나는 교회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인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인간은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던 단테가 예수 탄생 이전의 위대한 학자들, 시인들, 작가들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는데요.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지옥에 보내면서도 신체적인 고통이 없이 한숨을 쉬는 정신적 형벌,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안 후 그분을 만날 희망을 접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정신적 고뇌만 있도록 했죠. 그래서 지옥 중에서는 가장 처벌이 가벼운 곳, 림보라는 공간에 그들을 둡니다. 이것은 단테의 고민이 반영된 일종의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제외하고 ‘의로운 인간’임을 판단한 근거는 그들의 인품도 아니고, 오로지 그들의 뛰어난 업적들, 작품들일 텐데요. 기독교적 신의 방식, 성경적 방식으로 보면 그것은 의롭다고 칭하는 게 이상할 수 있잖아요. (단테는 지옥의 형벌로 고통당하고 있는 자신의 정적들에 대한 묘사도 많이 하거든요. 토론 시간에는 단테가 너무 자의적이니, 편파적이니 하는 야유를 쏟아냈는데, 사실 형평성을 따지는 그런 식의 비평은 공부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를 역시 듣고 말았죠) 작품의 설정 상으로는 물론 온전하신 신께서 그렇게 합당한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무튼 단테가 각 죄인들을 지옥의 난이도(?)에 맞춰서 그의 판단대로 넣어둔 것이니까요. 어떤 죄를 무겁게 보고 있는지, 어떤 죄는 비교적 가볍게 보는 것인지,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는지, 차가운 시선으로 합당한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작품의 의도나 작가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작가가 놓인 시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다양한 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보는 것, 해석기계인 작가에 대해 염두할 것의 당부도 있었죠!).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것은 그렇게 교회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지옥이, 성경적 요소만이 아니라 그리스신화의 요소가 엄청나게 많이 섞여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심지어 교회에서는 이교도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우스를 비롯해서 페르세포네, 복수의 세 여신들, 온갖 괴물과 반인들 – 케르베로스, 켄타우로스, 미네타우로스, 영웅들 –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등등이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 없이 마구 섞여 등장하는 것이었어요. 성경만이 아니라 문학을 통한 그의 모든 지식과 상상력이 총동원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토론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이번 주는 혼자 읽었을 때보다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이 특히 많이 들었어요. 전체 작품의 구조로 볼 때 지상에서 어두운 숲을 거쳐 지옥, 연옥, 천국을 거쳐 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순서가 중요한 것 같다는 얘길 했는데요. (물론 오늘 지옥편 하나만 봤기 때문에 아직 확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요.) 순례자 단테와, 모험을 마치고 돌아와서 글을 쓰는 화자 단테, 이렇게 두 단테가 설정된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위의 순서를 거쳐 천국까지 다녀온 단테가 다시 글을 쓰면서 같은 순서를 또 반복하게 되는 것, 이렇게 순환이 거듭되는 구조가 재미있다는 얘기가 나왔죠. 이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었고요. 여기서 각 지옥에 붙박힌 것처럼 고정되어 영원한 형벌을 반복해서 받고 있는 자들과 대비되는 단테는 각 지옥의 고리들을 계속해서 이동하는 존재죠. 그가 변한다고 할 때는 아마도 지옥에서 죄인들이 지리멸렬한 고통을 반복하면서(새살이 돋아나는 식의) 달라질 수 없는 시간을 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 어떤 학습을 통해서 변신을 – 그러니까 지옥에서의 경험들을 통해 이제 연옥으로, 그 다음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신체(존재)가 되어간다든가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리고.. 아직 짐작에 불과하지만, 천국이 따로 떨어진 어떤 밖의 것, 도달하거나 쟁취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쓰기나 순환이나 운동이나 변화 같은 오늘 이야기한 것들 중 어느 것을 통해, 구원은 결과가 아닌 과정 중에 있음을 보여주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에세이를 쓴 후에 어떤 완성된 작품(?!!!)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는 과정-일어나는 아이디어와 고심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등등의 과정-중에 이미 얻을 것들을 얻는 중(아.. 표현이 또 납작해져버렸군요. 과정 중에서 배움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였죠)이라는 이야기와도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또 단테의 신곡을 신성한 코메디아, 희극이라고 했을 때 그 어원으로 따지면 그것이 신과 인간간의 소통과 합일, 천국과 지상간의 연결이라는 것에서, 고급지고 성스러운 라틴어 대신에 피렌체 속어, 아녀자도 아는 입말로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들을 풀었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죠. 단체의 지옥행에선 속세에서의 범죄의 내용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어디보다도 더욱 세속적이고 현실적이고, 가장 지상다운(!)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돼요. 그냥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 같았죠. 남녀상열지사나 돈의 분쟁이나 사기꾼과 고리대금업자와.. 그렇게 보면 지옥은 속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이 당연해 지고요. 앞으로 연옥편과 천국편을 더 봐야겠지만, 외재하는 어떤 다른 수단이 아니라 지상의 언어를, 가장 평범한 말을, 인간과 세계, 지상과 지옥과 천국을 잇는 연결어로 선택한 것은 아무튼 매우 의미심장해보입니다! 이 외에도 연옥산에 다다르지 못하고 죽은, 단테가 새로 쓴 버전의 오디세우스 이야기, 가장 큰 죄를 지었다는 유다의 이야기,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직은 첫날이어서 그런지(과연 첫날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통찰이나 해석보다는 짐작과 예감이 많았던, 그래도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역사시간에는요. 다음시간부터 읽을 『봉건사회』를 쓴 마르크 블로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어요. 지난 1학기 역사수업 첫 시간에 들었던 아날학파, 3세대까지로 들었던 그 아날학파의 창시자라고 해요. 단선적이고 공문서나 왕조실록 같은 것으로만 파악되던 역사에, 다양한 사료들을 통해서 훨씬 재미있고 풍성하면서 다양한 역사, 여러 다른 시간대의 역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어요. 이들은 역사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레지스탕스 같은 운동까지도 했다는 얘기와, 역사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도 믿지도 않았던 3세대의 쿨한 누구(앗.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네요.. 후기를 찾아봐야겠.. 흠..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였을까요. 댓글로 찾아서 달아주실 분? 답글이 없으면 제가 찾을게요..)까지 들었던 기억이 흐릿흐릿 남아있네요. 흠흠. 아무튼 아날학파를 통해서 기존의 정통역사서술이 아니라 삶을 가능케 했던 다양한 지리, 경제,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한 새로운 역사학이 대두된 것이에요. 귀족들과 기사들, 민중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시간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 다양한 시간의 상대적 다층성을 강조했고요. 한 문명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가를 고려하는 순간 그 시대의 삶이 입체화되는 것이죠. 푸코도 아날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마르크 블로크라는 사람의 뜨거운 우직함(?)에 감동을 받았어요. 채운샘이 인용해주신 글 몇 줄로 받은 첫인상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물론 귀여운 얼굴탓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프랑스는 자신의 조국이라고 했는데, 뼛속까지 군인인 분위기였는데 전쟁에도 두 차례 참전했다고 하고요. 유태인인 것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용기도 멋있었고요. 인상 깊었던 표현 몇 개만 옮겨 볼게요.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 문화의 샘물을 마셨으며, 그 과거를 내것으로 받아들였고, 프랑스 하늘 아래서만 편히 숨을 쉴 수 있으며,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상한 패배)

 

“역사가는 지겨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업적으로 삶이라는 무대라면 다 흥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에 피렌 선생도 나한테 말한 적이 있다. 만일 골동품상이라면 옛 물건들만 눈에 보이겠지만 역사가는 현재를 사랑한다고. 삶을 사랑하는 것도 역사가이기 때문이라고. 물론 그것을 위해 역사가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아들 에티엔에게 보낸 편지)

 

고문당하고 결국 총살당했다고 하는데, 그때 옆에서 떨고 있는 소년에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는 마지막 장면도 뭉클했지만, 유서에서 보인 몇몇 문장들도 먹먹하게 다가왔어요. 종교의식을 배제한 장례식을, 가족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해주되, 자신이 평생 표현과 정신의 성실함을 위해서 노력해 왔고, 거짓에 대한 영합을 문둥병으로 여기고 살아온 만큼 ‘그는 진리를 사랑했다’는 간단한 묘비명을 부탁한다고 썼어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유태인으로 태어난 것을 확인하고, 자신이 조국을 사랑하는 선량한 프랑스인으로 살아왔고 이제 선량한 프랑스인으로 죽는다고 했고요. 아무튼, 직접 읽어보아야 알 수 있는 그의 말투는 쓸데없이 화려한 수식어들을 다 걷어낸 것 같았어요. 무척 단단하고 정제된, 꼭 필요한 말들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는 표현방식이 정말로 우직한 군인 같은 느낌을 줘요. 솔직히 봉건사회 책이 표지도 좀 그렇고(?) 너무 두껍고 해서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는데,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읽을 것이 기대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 만나 봐야하겠지만요. 니체도, 푸코도, 루쉰도, 소세키도, 좋아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시간이 꽤 들었던 거 같은데, 이분은 처음부터 좋네요. 흐흣.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됩니다~

 

다음 주 발제는 윤순샘이고요.

과제는 신곡은 연옥편 읽고 공통과제, 봉건사회는 1부1책까지 읽어오는 것이라죠.

다른 공지 있으면 올려주십쇼~ 그럼 다음 주 화요일 만나요.
전체 5

  • 2017-04-20 17:04
    마르크 블로크의 우직함이 쉽지않은(?) 언니의 심장을 단번에 겟 했나봐요ㅋㅋㅋ
    (3세대의 쿨한 누구는 제 기억에는 폴 벤느였어요...)

    • 2017-04-20 18:51
      맞다맞다!! 폴벤느♡

  • 2017-04-20 17:51
    <신곡>은 함께 읽으니 확실히 더 재미있네요. 토론 시간에 낭송하고픈 부분 각자 정해서 만나기로 해요^^ 간식은 락쿤쌤께 부탁드렸습니다.

  • 2017-04-21 10:38
    일찍 태어난 게 죄인 사람들은 어쩌나..... 단테에게 자기구원은 없을지 궁금해집니다...!

    • 2017-04-21 17:26
      앗. 배신자닷!! 궁금하면 신곡을 같이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