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사성제 팔정도 세미나> 7회 바른 말 후기 및 공지

작성자
키키
작성일
2021-06-02 07:03
조회
2608
불교에는 죄가 없다 다만 업이 있을 뿐

바른 말과 더불어 바른 행위와 바른 생계는 팔정도 중 계율에 속한다. 언어 행위를 잘 단속하고 육체적 행위를 잘 통제하며, 청정한 생계 수단을 강구함으로써 계행을 잘 갖추게 되는 것이다. 계율은 불교의 출발점으로 계율의 토대가 확고해야 변덕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계율과 삼매와 지혜는 언제나 함께 수행해야 하지만 삼매와 지혜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계행을 갖추라고 붓다는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말과 행위에서 자신을 제어하면서 감각기관의 문을 보호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호!!라는 말이다. 6내처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6외처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접촉해 실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괴로움과 불선함을 낳는 이치는 이제 대부분 알 것이다. 이 불선과 괴로움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바른 말과 바른 행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계율이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도록 보호한다고 느끼느냐 아니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압으로 느끼느냐일 것이다. 즉 금지냐 보호냐다. 불교에는 죄가 없고 단지 업이 있을 뿐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다. 심판관에게 벌 벋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인과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불교가 문제 삼는 것은 자발적인 마음이다. 계를 지키는 유일한 목적은 충둥과 나쁜 성향, 잘못된 행동을 제어하도록 훈련하는 데 있다. 계는 모든 악과 괴로움의 원인인 탐진치를 줄이도록 돕는 유일한 길이다. 계는 나를 억업하는가? 나를 보호하는가? 무상, 무아, 공을 얼마나 이해하고 불교에 귀의하겠다는 발심과 수행의 마음에 따라 갈림길에 서게 되는 거 같다. 신발을 자신의 삶에 탄생시키고 신발만 생각하는 자는 신발에 귀의한거라는 말이 무릎을 쳤다. (나는 무엇이 귀의하고 있는가?)

금지하는 계율과 보호하는 계율

재가자의 기본 행동원리인 오계는 1.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계를 잘 배워 지키는 것, 2. 주지 않는 물건을 갖지 않는 계를 잘 배워 지키는 것, 3. 부정한 음행을 하지 않는 계를 잘 배워 지키는 것, 4.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계를 잘 배워 지키는 것, 5.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이나 술을 먹지 않는 계를 잘 배워 지키는 것이다. 생활 속 어디서나 실천해야 한다.  그냥 쓱 보면 별것 없는 도덕같지만, 행동 뿐아니라 생각까지 문제삼는다면 머리가 오싹하다. 신구의로 이 오계를 지킨다는 건 넘사벽이다.(저절로 일어나는 생각도 업이다 ㅠㅠ) 이 오계를 지키지 않으면 탐진치의 길로 가게 된다. 아직 덜 비구인 ‘사미’가 준수해야 하는 십계도 있다. 백일 동안 출가해서 이것들을 가장 오래 지켜본 유일한 인간 호정 인간은 ‘때 아닌때 먹지 않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했다고 전했다.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가장 많이 싸웠다고 한다. 붓다는 계를 지키는 무수한 이익을 이야기하며 이는 금지 조항이 아니라 스스로 훈계하고 격려하면서 따라가는 이정표로 작동시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간단하고 예의 바르며 힘 있는 말하기

바른 말(정어)은 1. 진실을 말하기(거짓말×) 2. 화합을 만드는 말(이간질 하는 말×) 3. 사랑스럽고 예의 바른 말(거친 말과 욕설 ×) 4. 쓸데없는 말 피하기이다. 말은 인간만이 가진 도구지만 이 세치 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도 말의 업장이 많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나는 말을 다루는 일을 하고 말의 유희를 즐기는 편이다. 깐죽거리고 비아냥 거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편이다. (별자리상 나는 동쪽 쌍둥이 싸인으로 룰러인 수성은 절친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하늘에 불화살을 쉴새 없이 당기는 스타일로 말을 쓴다. 말이 끝간 데 없고 그게 내 핵심 페르소나다.) 바른 말을 하면 좀 재미가 없다. 깜짝놀랄 말로 시선을 끌고 조금 더 샤프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의도가 중요하다고 윤지르 보디사트바님이 말쌈해주셨는데, 그 또한 생각해봐야겠다. 자비보다 탐심이 그득하다.) 그것이 바늘이 되어 누군가를 찌르고 있다는 인식이 최근 생겼다.(올해 나의 별자리 운세에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쌍둥이 에너지라 그런듯하다) "좀 더 사려깊고, 온화하게 말하고, 더 정확하고 진실하게 말과 글을 쓴다면 많은 고통과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좀 다른 힘으로 느껴진다.

결국 정견과 정사유로

말을 많이 하는 것, 수다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마음의 고요와 바른 사유, 바른 견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계정혜가 삼발이처럼 하나가 없어도 무너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침묵이야 말로 가장 좋은 것. 침묵할 때 우리는 고요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듣는 것이다. 또 여러 말 중에 많은 말과 잡담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담과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른 말의 지름길이다. 끝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말을 남기며 후기를 마친다. 나는 이것은 ‘아름답고 정확하게’로 바꾸어 이해하고 있다.

마음으로 하는 말, 가슴에서 우러나는 말은 항상 간단하고 예의 바르며 힘이 넘친다. 241p

다음 주는 정업(p246~267)을 읽어오세요! 정업은 우리의 현숙쌤이 입으로 발제해주신답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뱀다리: 일 마치고 30분이나 지각해도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자리와 음식을 마련해주시는 쌤들게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또한 불알못인 제가 대부분의 경전을 마스터한 불교쌤들의 지혜를 엿들을 수 있다는 것도요. 이렇게나마 부처님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제주에 귀의한 제가 달랑 붓다의 옛길 책 하나 들고 백팩하나 메고 갔다가 만난 관음사의 붓다 석상을 남깁니다. 오! 홀리홀리!
전체 2

  • 2021-06-02 21:31
    변화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온단다. 바른 말에도 재미가 있어! 그대가 아직 알지 못할 뿐! 아자자! 야나두!

  • 2021-06-05 12:02
    월요일 저녁, 바쁘게 회사일을 마치고 따릉이를 타고 부처님을 만나러 오시는 반짝 반짝 키키 보살님. 그 열정과 정성이 큰 공덕이 되시리라 믿사옵니다~ ^^

    8정도의 바른 언어를 공부하며 제가 날마다 내뱉는 말에 얼마나 신중하지 못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금 당장 부처님처럼 사려깊고, 온화하고, 정확하고 진실할 수 있는 언어를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말과 표현의 의도, 그 습관을 알아차리는 연습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어를 조금씩 실천해 가 볼 수 있기를!

    그나저나 저 관음사의 부처님은 너무나 자애롭고 따뜻한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8정도에 '바른 표정'이란 것도 있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