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사성제 팔정도 세미나 후기> '正命'에 대하여

작성자
배현숙
작성일
2021-06-17 08:29
조회
2556
 

오늘 하루도 매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셨나요? 올바른 방법으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상을 실천하셨나요?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팔정도의 다섯 번 째 덕목인 ‘正命’은 매순간 우리가 실천해야 할 ‘올바른 방법으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는 유익한 말의 업(正語)과 유익한 몸의 업(正業)과 더불어 ‘청정한 생계’를 이르는 말씀이시죠. 청정한 생계, ‘올바른 방법으로 먹고 사는 일’은 우리 삶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아우르는 가르침인 듯 싶습니다. 그래서 팔정도의 다른 어떤 ‘길’보다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가르침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모았죠.


이 부분 발제를 맡았던 호정 도반이 갑자기 허리가 아픈 바람에, 천 년 만에 선뜻 마음을 내어 제가 대신 발제해보겠노라 자청할 때만 해도, 저는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가르침인 줄 생각지 못했습니다. ‘청정한 생계’는 우리가 늘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그런 삶의 방식이 아닌가? 그렇게 ‘만만하게 대애충!’ 생각했던 것이죠. 나중에 발제 준비를 하면서 ‘급 후회(?)’를 하게 되었지만요. ㅎㅎㅎㅎㅎ 그런데 생각해보니 윤지 도반의 ‘페이지수도 작고.... 누구 대신할 분?’ 이라는 말에 제가 하필 낚였던 것이 그냥 우연만은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어쩌면 저같은 사람에게 ‘正命’이라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올바른 방법으로 먹고 사는 일’이란 단지 어떤 일, 어떤 직종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뭇 생명의 하나 된 삶’을 위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계행인 것이죠. 정명의 반대는 사명(邪命)입니다.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 할 때의 그 사명이죠. 삿된 방법으로 목숨을 유지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것이 다른 목숨붙이들의 삶에 결코 유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기술 가지고 내가 벌어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마음이 요즘 시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보통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한에서’ 라는 말을 자주 단순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쉽게 한다는 것은 그것의 무게를 잘 몰라서였을 겁니다. 나의 한 생각, 아주 작은 행위 하나가 다른 뭇 삶들과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 채 살고 있거든요.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다 환경공학이 말하는 ‘지속가능성’에 깊은 회의를 느껴 흔쾌히! 중심을 떠나 변방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청년 도반은, 특히 이  ‘正命’의 가르침이 주는 무게에 대해 생각이 많은 듯 했습니다. 이 청년 도반이 다 하지 못했던 말 속에서 우리들의 ‘맘 편한 소비’와 ‘편리함’과 ‘더 많은 탐욕’과 ‘더 많은 신기술로 더 많은 낭비와 소비를 정당화’하는 우리 시대의 무자비한 삶의 행태에 대한 깊은 고뇌가 무겁게 느껴졌더랬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반 일리치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위기는 상품에 더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덜 의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온다. 상품에 더 의존한다는 것은 자급 활동을 이끄는 규범을 결정해온 문화가 급속히 파괴되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에 덜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장려하여 다양한 사용가치를 꽃피우는 현대의 문화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병원과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구조인 슈퍼마켓 안에서 살아가는 데 이미 익숙해진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선택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계행이란 삶의 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렇다면  ‘正命’의 궁극적인 목표와 기준은 우리의 모든 생활이 ‘직간접으로 내 어머니였던 모든 중생’들을 위한 일이어야 하겠지요.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적 향상을 위한 토대’라고 부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적 행위는 오로지 '정신적 향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어떻게 뭇삶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청정한 생계로서 새로운 존재의 양식을 발명할 것인가? 부처님은 오늘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주셨네요. 우리의 일상 하나하나마다에서 그것이 깨달음에 유익한 일인지, 나의 행복과 행복의 원인을 얻는 일인지를 깨어 알아차리는 수행이 지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체 중생이 행복과 행복이 원인을 얻는 일일테니까요.


다음 시간에는 계정혜의 ‘定’에 해당하는 덕목인 ‘正精進’에 대해 공부하려 합니다. 지영샘께서 발제를 맡아주셨습니다.


모두 올바른 '살림'을 실천하시는 한 주 되시길 빕니다.

전체 3

  • 2021-06-17 14:15
    아이쿠 이번주 후기 폭탄으로 불꽃놀이 지대로 하고 계시는 현숙샘 덕분에 편히 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로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에만 꽂혀있는 편이라 그것의 고귀함은 생각하지 못 했네요.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의 다른 쪽(?)을 생각하게 되네요.

  • 2021-06-17 21:19
    첫 줄에 하신 말씀이 왜이리 가슴에 와 박힐까요?ㅜ^ㅜ.. 쌤..유정란에 이어 노란 통닭과의 분투를 응원합니다!!!

  • 2021-06-17 21:59
    '올바른 살림'! 오, 맞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살림'으로 궁리해 볼 수 있을지!!!
    현숙샘의 2주 연속 발제와 후기 보시 수희찬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