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글쓰기> 4학기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복희
작성일
2021-01-21 11:55
조회
3178
어떻게든 다 같이 만나서 얼굴 보며 1년의 대승불교 공부를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미루게 된 에세이 발표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완전체로 발표할 수 있었다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성희샘과 수늬샘은 참석을 못하셨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도반님들과 샘의 얼굴을 뵈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현숙샘은 화면으로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고요. 에세이 발표가 4주나 미뤄졌기에 채운샘께서 은근 고퀄의 에세이를 기대하신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그 부분이 어쨌든 이번 에세이 발표의 가장 뼈아픈 지점이 아닐까 싶네요. “왜 우리는 해를 넘겨서 에세이발표를 하고 있는가.”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어!”라는 샘의 말씀. 샘,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채운샘의 수행력을 만땅으로 발휘하게 해드리는, 샘께 꼭 필요한 중생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만...^^ 올해에도 또 열심히 가보겠습니다아~라는 부질없는 약속을 드려봅니다.

어이없는 웃음과 한숨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날려주신 샘의 코멘트를 살펴보겠습니다.

# 사유한다는 것은 상념의 나열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풀리지 않는 그 자리, 선불교에서 말하는 은산철벽의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인 지평에 묶여있는 자신의 생각을 깨는 것이 공부인데 상식적인 지평에만 머물고자 한다면 굳이 어렵게 읽고 쓸 필요가 없을 테지요. 상식의 세계에서도 선함, 올바름이 작동하긴 하니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선함, 올바름은 그런 상식적 세계의 선악과는 다른, 상식의 선악을 넘어가는 것인데 상식적인 지평에서만 불교를 사유한다면 결국 자기 위안으로만 작용할 뿐 자기의 생각을 깨는 지점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사실 저는 생각이 막히는 그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면서도 그게 문제인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 간 것만이라도 기쁘게 생각했거든요. 거기가 비로소 시작의 지점인 것을...

# 글을 보면 자신이 붙들려 있는 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각자 1년의 공부과정에서 쓴 글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자신의 습이 무엇인지 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여전히 저 멀리 도달해야할 지점, 도달해야하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내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회의하는 우리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중생이 곧 부처라는 대승불교를 배우면서도 그 핵심내용을 부정하는 꼴이지요. 나 같은 게 어떻게 깨닫겠냐는 마음은 겸손이 아니라 깨닫기 싫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업습에 붙들려 상식대로 행동하고 상념에 끌려다니는 것에 머무는 것은 아직 공부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안주하려는 생각, 타협하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내 안에 타협이 있었구나, 사실은 알면서도 보려고 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미세하게 올라오는 생각들을 더 끝까지 밀고 들어가서 나를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로 까지 확장해서 볼 수 있는 지점까지 밀고 가야 하는 것이구나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업에서, 매번의 에세이에서 많이 언급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들을 때는 다 알 것만 같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네요. 그래도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기억할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타협이고 행을 거부하는 행일 겁니다. 지금 깨닫겠다는 발심을 내는 것, 거기가 비로소 시작점입니다. 대승불교는 먼저 행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언젠가 잘 기억하고 알게 되면 그때는 행하게 될 꺼야가 아닙니다.

# 우리의 글이 너무 대승적이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중생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대승의 보살인데 우리의 글을 보면 온통 자기의 가족 내에만 머물고 있으니까요. 대승이 아니라 소승인 우리들. 우리가 남편, 자식, 부모님 등과 잘 지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닌데 마치 그 관계만이 전부인양 그 속에 갇혀있습니다. 보살은 위없는 평등심, 모든 일체중생에 대한 평등한 마음을 내는 자입니다. 일체 중생에 대한 위없는 평등심을 깨달은 속에서 가족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더 편해진다면 감사한 일이긴 하겠지만 그것만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아님에도 가족이라는 영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라고 조언하셨어요. 자기가 애착하는 것들 속에서는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에 답을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내가 놓지 못하는 지점, 뭘 해도 다시 환원되어 돌아오는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되는 그 지점을 깨지 못한다면 대승은 물론이고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어요.

# 저는 지금 이순간이 전부라는 것에 꽂혀서 지난 4주를 보냈는데요, 이 순간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냐는 샘의 말씀에 에세이가 통째로 사상누각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전제가 사라졌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도 그 순간을 붙잡은 식작용이라는 말씀이셨지요. 불교에서는 시간도 없고, 모든 것이 공하고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도 그렇게 순간, 찰나를 실체화하는 사고를 붙잡고 있었음을 지적해주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긍정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해야할 대상을 출현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죠. 공부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가도 가도 계속 문제가 튀어나오고 모순되는 생각들, 돌파해야할 생각들이 수북하니.. 끝없는 세계에 발을 들였구나 싶습니다.

# 상념에서 시작해서 코믹으로, 원초적 본능에서 허무로, 시누에서 시작해서 동서로 끝난 우리의 에세이 발표였습니다. 써낸 글들에는 도반님들의 고민과 상념과 삶과 사유가 다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미처 고퀄이 되지 못한 에세이지만 몇 주 동안 붙잡고 씨름하셨을 도반님들 고생하셨어요. 지난 1년 동안 대승불교 공부하면서 밀고 당기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올해에도 우리 함께 뚜벅뚜벅 잘 가보아요^^
전체 9

  • 2021-01-21 13:15
    다시 또 새롭네요. 전 텍스트가 붙지 않은 글을 썼는데 고질병이네요. 텍스트에 좀 더 충실해지도록 해보겠습니다. 이번엔 끝까지 함께 못한 도반들이 많아서 좀 아쉬웠어요. 복희샘 끝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작년 한 해 고마웠어요.

  • 2021-01-21 13:31
    와 이렇게 또 한해 마무리했네요~~^^ 전 상념고질병으로 명품상품까지 받고 이 치욕 잊지않으리..ㅋㄷㅋㄷ

  • 2021-01-21 14:10
    다시 뚜벅뚜벅 같이 가보아요~

  • 2021-01-21 16:00
    줌으로 만나는 게 참으로 부질없다는 걸 깊이 경험한 에세이였어요. 게다가 하필 그날 부고까지 받고 얼마나 황망했던지....
    도반들의 글을 혼자 읽으며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오늘 보키샘의 후기를 보며 대강 짐작은 해봅니다만...
    같은 공간에 둘러 앉아 함께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일의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보키샘, 수고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2021-01-21 16:55
    저희 모두 고퀄의 에세이를 써내는 그날까지...!!! 올해도 고고~~! 모두 모두 수고하셨슴당~ 그나저나 방학때 한가하게 후기를 읽으니 아, 좋아랑~ ^^

  • 2021-01-22 10:06
    어찌 되었든 에세이라는 각자의 산고를 넘으신 도반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화엄경부터 섭대승론까지 대승불교의 안내자가 되어주신 채운샘 감사합니다.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저에겐 이 공부로 땅을 디딘 발바닥 힘이 쪼금은 붙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희샘 후기까지 마무리하느라 수고하셨어요.
    저는 또 언젠가 인연이 닿을 때 달려가겠습니다~

    • 2021-01-22 18:35
      샘께서 공부가 하기 싫어 도망친 게 아님을 모두 알고 있으니, 서울 오시는 날, 혹 시간이 비거든, 아무 생각없이 심드렁하게 규문에 한번 들러주세요. 그럼 무심히 차 한 잔 드릴게요!^^

  • 2021-01-22 22:11
    불교팀도 아닌데, 지나가다 뜨끔하게 되는 후기네요. “나 같은 게 어떻게 깨닫겠냐는 마음은 겸손이 아니라 깨닫기 싫다는 말”이라는 말이 콕 박힙니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부처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고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철학자가 되기를(그러니까 철학자로서의 삶을) 실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복희샘의 차분한 후기 덕에 공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2021-01-25 09:39
    불교공부를 시작도 안했는데, 상식적인 수준에서 불교를 가져오면 자기 위안으로 끝나게 될 거라는 말씀이 콕 박힙니다. 상식 규범을 넘어서, 대승적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많은 것을 걸고 내려놓음으로써 부처 혹은 부처 비슷한 것이라도 되겠다는 발심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해넘이 마무리를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2월에 샘들께 끼어서 배워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