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11월 23일 5회 수업 공지

작성자
윤지
작성일
2020-11-21 00:47
조회
3447
공지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대체 한 주가 왜 이리 휙 지나 가는지 아무래도 엔트로피 증가로 노화가 가속되는 듯 합니다. ㅎㅎ

지난 월요일 공통과제 발표 시간이 저는 다른 날과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우선 늘 가장 활발발하게 말씀을 하시는 현숙샘의 빈자리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요사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에 참석을 못하신 수늬샘의 공통 과제를 미숙샘이 대신 발표를 해주었기 때문이었죠. 훈훈하다고 할까... 비록 함께 공부하지는 못하지만 멀리 청주에서 혼자 유마경을 읽으며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계신 수늬샘의 글이 전하는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또 그걸 출력해서 읽어준 미숙샘의 배려하는 마음도요.

저희는 매주 공통과제를 하지만 이 짧은 글 한편을 쓰는 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매 번 과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고도 하시고, 밤 새워 쓰다가 풀리지 않는 글을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시고, 아픈 어머니 병구완을 하며 고향과 서울을 오가느라 못써오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어찌 어찌 써온 매 번의 글에는 저희 나름의 공부와 생각이 때로는 매끄럽게 때로는 울퉁불퉁 녹아 있습니다. 도반들의 조언을 반영해 에피소드를 먼저 풀어보신 미영샘, 글을 길게 쓰고 싶다고 하시더니 한 페이지를 넘겨 차근 차근 생각을 풀어내신 성희샘, 그리고 기존의 앎으로 글을 단정히 마무리 짓지 않고 평소와는 다른 시도를 하신 현화샘의 반가운 글도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이렇게 매번 자신과 마주한 글을 쓰고 읽으며 도반들과 나누는 과정이 저희 나름의 자비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가까운 주위에만 시선이 머문채 마음이 그 자리에 맴돌고 있을텐데 말이죠.

1.

샘께선 수업을 시작하며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놀라운건 그 오만가지 생각 대부분이 어제와 같은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저희가 윤회를 하고 있다는 게 전생을 운운할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날마나 같은 생각을 맴도는 마음 자리만 보아도 알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생각들도 나름의 그럴듯한 논리를 가지고 있기에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이 반복되는 생각의 업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기존의 생각을 깨부술 수 있는 더 치밀한 논리가 필요합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지혜를 닦는 훈련이라고 하는 거겠죠.

이 지혜의 핵심에 공이 있습니다. 이 공의 논리를 어떻게 체화하고 이해할 것인가.,,,! 공을 깨달은 자, 그리하여 모든 존재에게 자비로울 수 밖에 없는 그를 우리는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에 나오는 보살들의 모습은 대단해 보입니다. 아니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인간 같아 보인다고 저희는 감탄합니다. 그러나 샘께선 누군가를 그렇게 완벽하다고 칭송하는 것은 불완전한 나와 대비해 완벽한 신을 상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죠. 우리는 완벽함과 부족함이란 상을 어떤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걸까요. 그건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한계 짓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완벽함에 대한 상이란 지금 내가 하는 행위를 온전히 긍정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긍정이란 먼지 하나에 온 우주가 작동하듯이 나 자신도 나 아닌 모든 것들과의 상호 의존 속에 살고 행위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지금의 행위를 선택하는 것과 연결된 것이 아닐까요. 매 번의 이 능동적 선택에는 지혜 그리고 자비가 바탕이 되어야 할테고요.

샘께선 보살이란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삶의 지평을 살아가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보살이 중생과 다른 점은 공을 깨달은 존재라고 합니다. 공을 깨달았기에 보살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하면서도 그 어떤 것에도 매임이 없습니다. 보살도 깨달은 자도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노병사를 피할수 없습니다. 붓다도 병들어 배탈나고 설사하고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노병사뿐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는 고통등 평범한 인간이 겪는 모든 일들을 겪으셨죠. 다만 붓다도 보살도 공의 깨달음 속에 있기에 상실감이라는 괴로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올라오는 감정도, 나를 떠나는 대상도, 헤어짐 그 자체도 모두 공한 것임을 여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겁니다.

붓다는 말년에 사리불과 목건련 등 자신이 너무나 아끼는 제자들을 먼저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찌 깊은 상실감이 없었겠습니까. 사리불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스승인 붓다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고향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떠납니다. 그런데 그 떠나는 장면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사리불은 두 손을 합장한 채 스승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물러났다고 하죠. 아주 천천히 그렇게 뒤로 걸었을 겁니다.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스승과 제자.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의 정서가 떠오르는 건 제가 아직 공을 체화하지 못한 한낱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상상컨데 부처님과 사리불은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이 생에서 그렇게 만났고 또 헤어지게 되었다는 걸 깨달음 속에서 여여하게 바라보지 않았을까요.

불교에서는 헤어짐, 상실감, 아픔, 배고픔... 등등 삶의 수 많은 고통들이 우리를 깨닫게 해주는 방편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디를 가지 않고 이 방편들을 통해 바로 여기서 깨달음으로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하죠. 42 항하사의 불세계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곳이 술집이든 법당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실이 불국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보다 더 혁명적인 사유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 한량없는 방편의 법문(法門)에도 불구하고 중생의 마음을 조복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생은 지극히 교화하기가 어려운지라 억센 코끼리와도 같아서 채찍으로 뼈에 사무치게 하여 조복시킨다(유마경 206쪽)고 까지 하죠. 구마라즙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을 따르게 되는 계기가 각기 다르다고 했답니다. 가장 훌륭한 근기의 무상사는 인생에 별다른 부침이 없이도 공부를 시작하지만 근기가 낮을수록 자신에게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공부를 할 마음을 낸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근기가 낮은자는 자신이 죽어야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요.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와장창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 정말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 그럴 때라야 비로소 뭐라도 길을 찾아야 겠다는 마음을 내죠. 그렇게보면 나를 죽을 것같이 힘들게 만든 그 대상이야 말로 나를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 고마운 보살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원수가 보살이고 은인이죠.

2.

스피노자 시간에는 정서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들을 주욱 빠르게 공부해 나갔습니다. 스피노자의 정서론이 중요한 것은 그 정서가 어떻게 우리의 행위 역량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가와 연결되기 때문입이다. 가령 슬픔의 정서들은 우리의 코나투스, 즉 행위 역량을 감소시킵니다. 또한 정서는 신체와 직결되지요. “아~ 너무 바빠!”, 하면서 시간에 쫒길 때 이런 정서는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해 노화가 증가하듯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서란 단지 우리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상상의 산물일 뿐 절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스피노자가 정서를 정의하는 방식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해서 이번 정리에는 정서에 관한 퀴즈를 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깜짝 퀴즈 타임! 한 번 맞춰 보시죠~ ^^

=퀴즈=

스피노자가가 <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 정서는 무엇일까요?  빈 칸을 채워보세요.

① 다른 이의 불행에 즐거워하고 다른 이의 행복에 슬퍼함:  _____

②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높게 여기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  _____

③ 다른 사람을 실제보다 더 높게 여기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  _____

④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이유로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노력:  _____

⑤ 시기심과 연결되어 있는, 사랑하는 실재에 대한 미움:  _____

⑥ 예측되는 나쁜 일을 그보다 덜 나쁜 것을 통해 피하도록 만드는 두려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만들거나,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게 만듦: ______

⑦ 미워하는 이에 대해 나쁜 일을 행하려는 노력:  _____

⑧ _____는 원인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며 _____은 원인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⑨ 어떤 대상에서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것을 상상할 때의 정신적 변용: _____

⑩ _____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놀람에서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_____은 우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 하는 것에 대한 무시에서 생겨난다.
_____가 사려깊음에 대한 놀람에서 생겨나듯이 _____은 어리석음에 대한 무시에서 생겨난다.

=정 답=

① 시기심 ② 자만 ③ 과대평가 ④ 암비치오 ⑤ 질투 ⑥ 겁많음 ⑦ 앙심 ⑧ 후회, 자족감  ⑨ 놀람  ⑩ 찬양, 비웃음, 경외, 업신여김

<불교와 글쓰기> 1123, 5회 수업 공지입니다.
  1.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처음~ 97쪽까지 읽고 공통과제 써옵니다.

  2. 「윤리학」: 3부 끝까지 일독해 오세요.

  3. 명상: 자비 명상을 다시 1단계부터 연습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자비의 느낌을 자각해보고 이를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와 연결해 봅니다.


이번 주 후기는 성희샘께서 올려주셨고요, 다음 주 간식은 은주샘, 반찬은 복희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코로나와 거리두기 하시며 주말 잘 보내시고, 담 주 월욜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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