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4월 26일 10회 수업 후기

작성자
미숙
작성일
2021-04-29 21:04
조회
2706
이번 '10주차'는 에세이가 아닌 에세이프로포잘을 쓰는 것이 과제였지요.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게 가볍게(!) 쓰면 되는 것이었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면서 참으로 어렵게도 프로포잘을 쓴 게 아닌가..싶었어요. 사성제 팔정도를 주인공처럼 떠받들었는데...'불교'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진치! 자신의 고!에 대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는 왜 삶을 긍정하지 못할까"라는 말씀부터 해주셨어요.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요. 전면긍정이 아니고서는 90퍼센트를 긍정하더라도 10퍼센트의 부정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불교에서 삶을 긍정한다는 의미는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는 것'이 되는데... 나는 삶을 전면 긍정하고 있는가? 묻게 됩니다. 부정하고 있다면 그건 어떻게 드러날까요? 선생님께서는 바로 '고'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고 하셨어요. 삶을 긍정한다는 말이 거창하게도 들리지만 생각해보면 단순합니다. 삶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작게라도 있으면 삶을 전면긍정 하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불편함'이라는 말도 선생님 말씀을 듣고보니 참 단순합니다. 신경쓰이는 것, 꺼림칙한것, 뭔가 편하지 않는 것,..그런 것이 불편함이고 바로 苦인 것이에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인간의 삶은 고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 것이 맞네요... ㅜ
그럼 왜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주 우리를 지배할까요? 선생님은 그런 감정을 몸, 신체성으로 설명해주셨어요. 붓다께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였을 때의 경험들-12살때 나무 아래에서 보게 된 작은 벌레와 그 벌레를 낚아채는 작은 새, 그 새를 낚아채는 큰 새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험과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상을 보게되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경험에서 연민심과 출리심이 생겨나고요. 그것은 모두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네요.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에 먹고 먹히면서 돌고도는 삶의 고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무의식에 내재되는 공격성을 보았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것이 붓다께서 출가한 동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하니 우리에게도 그와같은 동기가 있을꺼라는 말이지요. 갑자기 삶이 다르게 보이는 '변곡점'이요. 불교 혹은 어떤 것이든 '공부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변곡점이 각자의 삶에 있다는 거에요. 그 지점에는 자신의 번뇌에 대한 자각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며,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는 번뇌입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뭔가 책임감이 느껴졌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처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번뇌는 해결해봐야 하지 않을까..하고요. 선생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계속 말씀하셨으나 저는 그 부분을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보다도 더 감지가 안되는 사실 같았어요. 다음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힘들고 다시는 이렇게 살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삶을 삐지고 화내고 욕심내는데 허비하며 살다가 죽어도 괜찮은가?... 이 부분을 자각하는 것이 지금 저에게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2학기에 쓸 에세이를 얘기하시면서 자기자신의 고를 보고, 자기 발밑의 번뇌를 보는 글쓰기를 요청하시면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그 번뇌가 자신만의 번뇌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써야'될 필요가 있다"고 하신 부분이에요. 저는 천개의 고원을 읽다가 느닷없이 '써라!', '글을 써라!'하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하곤 했는데..이번에도 그런 기분이었어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듣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ㅎㅎ 책임감이 느껴져요!ㅎㅎ 그리고 요즘 윤지쌤과 함께 하고 있는 자애명상이 떠올랐어요. '당신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을 갖게 되기를!' 저는 누군가의 글을 보면서 평범한 어떤 한문장이 저를 작은 부분에서 구원해주는 경험을 종종 해요.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원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써야'하지 않을까요? 고귀한님들?!^^
우리의 '불편함'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실함이 중요합니다. 내 삶의 고를 본 변곡점은 언제일까요, 불교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내 문제를 다르게 보게 된 건 어떤 것이 있을까,..도반님들도 이번 시간에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잘 이해하셨지요? ^^ 아이참 사부님께서는 진작에 그렇게 말씀해주시지...ㅎㅎㅎ '가볍게!' '편하게!' 쓰는 거 우리 잘할 수 있는데...ㅎㅎ 자기 문제를 자기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고요, 자기 질문을 가지고 아주 구체적으로 불편함, 탐진치를 쓰는 겁니다. 개념으로 풀지말고, '아상'으로 퉁치지 말고..'잘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듯 하면서 가볍게 자신을 바라보라고 하셨어요. 나의 번뇌가 먼저이고 그것을 푸는데 불교에서 배운 것이 필요한 것이에요.
아휴 또 글 쓰려고 생각하니까 조금 걱정이 들지만 가볍게! 써봐야겠어요. 이제 2학기 10주 동안, 1주에 1쪽 쓰는 거 숙지하셨지요? 리듬을 조율해보아요. 자기주도에세이를 항상 일상의 뒷배경으로 깔아놓고 살아봅시다! 아주 잘 아는 그 사람 이야기를 주절주절 써보아요. 방학동안 쉬면서 그 첫페이지를 부담없이 써보도록 해요. 첫시간에 1p를 가져와 사부님께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다음주에는 담마파다를 읽고 즐겁게 공통과제도 해야하니 이번주에 자기주도에세이 1p를 많이 써놓도록 해요~. 그럼 쌤들 방학동안 충전 만땅하시고~~!! 다음 주 초에 수업공지에서 뵈어요~~~^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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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30 22:08
    100년에 한번 바다 위로 내미는 거북이의 머리가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에 쏙 들어갈 확률....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 희귀한 일보다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비유에 '아, 그렇구나!'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잘 감지가 안된다는 미숙샘의 얘기에 저도 다시 한 번 저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과연 그토록 희유한 인간의 삶을 받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 소중한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내고 싶은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