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11월 1일 4학기 2주차 후기

작성자
아비달마
작성일
2021-11-02 10:54
조회
3207
이번 학기에는 「우다나」를 읽고 있습니다. 열반에 대한 감흥어린 시구가 있는 경전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우다나」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우다나(Udana)란 ‘숨을 내쉬다, 발언하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감흥어린 신성한 발언 또는 환희로운 앎에 기초한 시구를 뜻합니다. 그래서인지 경의 끝에 있는 시구들이 문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감흥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달라서일까요? 빨리어로 들으면 소리의 파동으로 내면이 공명하면서 막 제 안의 기쁨이 흘러 넘칠까요? 내공이 딸려서감흥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번엔 2품 무짤린다의 품을 읽었는데, 품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는지 품의 분류 기준과, 품의 제목은 어떻게 붙이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다나는 80개의 경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80개의 경은 8개의 품으로, 8품은 10개의 경으로 나누어 있고, 각각의 경은 산문과 산문시 또는 운문시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품별로 비슷한 주제들끼리 묶어놓긴 했지만, 엄밀한 정확성을 가지고 분류한 것은 아니고 품의 제목도 그 품 전체의 내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 품의 앞에 놓인 경이나 제목에서 선발한 것이므로 품의 제목에서 전체 품의 내용의 일관성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경전을 읽을 때 특별히 품에 신경을 쓰지는 않고 주로 각각의 경 위주로 읽는데,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은 ‘쑵빠바싸의 경’이었습니다.

꼴리야국의 공주 쑵빠바싸는 칠년 동안 임신하고 칠 일 간 산고를 겪습니다. 그녀는 불법승 삼보를 사유하며 고통을 견뎌냅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그녀는 건강해졌고 건강한 아이도 낳았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부처님께 바친 칠 일간의 공양에서 존자 싸리뿟따는 아이에게 잘 지내냐고 묻습니다. 쑵빠바싸의 아들은 “존자여 제가 어떻게 잘 지내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건강하겠습니까? 칠년 동안 저는 피의 가마솥 속에서 지냈습니다.”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이와 같은 다른 아들을 원하는지 묻자 그녀는 부처님께 일곱 명의 아이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습니다. “불쾌가 쾌락의 모습을 하고, 미움이 사랑의 모습을 하고, 고통이 행복의 모습을 하고, 실로 방일한 자를 정복한다.” 아들은 삶을 고통으로 경험하지만, 어머니 쑵빠바싸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으로 일곱 명의 아이를 원합니다. 달콤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고통스러운 것이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축복인 것 같은 모습을 한, 아이로 상징되는 축복에 의해 쑵빠바싸도 정복당합니다.

영원히 내 것으로 갖고 싶은 마음에서 집착이 생깁니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그 대상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하는데도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변화가 너무 빠르고 연속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적으로 감지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쑵빠바싸처럼 우리도 자식, 연인,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해 괴롭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나에게는 의식주에 대한 특별한 욕구가 없는데, 상대방은 특별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들어주려 합니다. 그것이 각별한 노력을 요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내 안에서 긴장과 갈등이 커지고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마음이 나를 불행하게 합니다. 결국 불행한 나로 인해 상대방도 불행하게 됩니다. 이거이 뭡니까? 왜 우리는 이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까요? ‘나는 괜찮은데, 너 때문에’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입니다. 내가 괜찮지 않은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일치하는 욕구를 찾아보면 막상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긋나는 수많은 욕구들 중 내가 들어주고 싶은 욕구. 그것에는 내 욕구가 들어있는 거지요. 내 마음을 판단 없이 맑은 물처럼 말끄러미 들여다볼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원한과 비난은 없겠지요. 소유하지 않는 관계까지는 잘 모르겠고, 암튼 그것이 담백한 관계의 출발점일 것 같아요. 우다나의 경처럼 저도 감흥어린 시구로 끝낼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참으로 행복하다. 최상의 지혜를 지닌 자 아무것도 없는 님이니, 무엇인가 소유한 자들의 고통을 보라. 사람이 실로 사람들에게 묶여 있는 것이다.” (임신한 여인의 경)

질척거리며-후기의 후기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정말 만고의 진리네요. 내 맘대로 듣고, 또 내 맘대로 쓰고. 너무나 주관적인 후기라 죄송한 마음에 질척거려봅니다. 애초에 쓰려고 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날아가 버렸네요. 다음에 읽을 ‘난다의 품’을 미리 땡겨 써봤나봐요. ‘날아라 원더우먼’이 아니라 ‘날아라 토론내용’쯤 되려나.

봄날 같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때에도 불교팀은 어쩜 그리 서늘한 그늘만 찾아 오들오들 떠는 신공을 발휘하는지. 햇볕은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는 보살심인가요? 방금 들어온 카톡 속보에 의하면 날씨가 좋아서 식욕이 땡겨 식탐 많은 제가 밥은 다 먹었다고 하네요. 암튼, 에세이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 도움 받아가면서 각자 고군분투중이고, 나머지 다른 이야기는 미숙 반장님의 공지 사항을 참고하세요. 이상 우리 아부지 닮은 ‘아비달마’였습니다.
전체 3

  • 2021-11-04 10:45
    호정 보살의 후기 쓰는 내공이 점점 홀리하고 촘촘해지고 있습니다 그려. 짝짝짝
    게다가 우리가 늘 칭송해마지않는 그 탁월한 유머감각까지 장착하여 문득 까마득해진 그날의 웃음을 다시 불러옵니다.
    아비달마와 어미달마 이야기로 꽃을 피웠던 그 카페의 정원은 참 따뜻하고 정다웠습니다.
    우리 불교도반들 마음처럼 그랬습니다~~^__________^

  • 2021-11-04 12:10
    앗, 이렇게 부지런히 후기를 올려놓으셨었구나!!!... (낯설...)
    내년엔 아비달마를 공부하고 싶다던 원을 세우자마자.. 내년에는 구사론을 공부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신 고귀한 님...역시 대보살의 선업과보는 격이 다른 것 같아요.....♡

  • 2021-11-08 07:02
    호정대보살님 후기에 절을 드려요. 토론내용이 날아서 어딘가로 전해진 듯하네요!